나의 버킷 리스트 1순위는 GMA T.50이다. 꼭 무슨 주방기기 제조번호 같지만 차 이름이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차체 가운데에 운전대가 있고 무게는 985kg이며, 12000rpm까지 솟구치는 자연흡기 V12 엔진과 6단 수동변속기로 654마력을 만들어내는 후륜구동 자동차다. 팬 모양의 역동적 공기역학 구조를 갖춰 고속으로 달릴 때 차체를 노면에 찰싹 붙여버린다.
아, 그리고 디자인은 고든 머레이의 작품이다. 남아프리카에서 태어난 머레이는 성인이 된 후 오로지 자동차를 더 좋게, 더 빨리 만들기 위한 고민에 거의 모든 시간을 바쳤다. 그의 아버지인 빌은 바이크 레이스를 했고 경주차를 만들었으며, 머레이는 기술대학에서 엔지니어링을 공부하며 기계설계 제도사로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클럽 경주차를 본인을 위해 제작했다. 1969년 그는 영국으로 넘어가 운 좋게 F1 브라밤 레이싱팀에서 일하게 됐는데, 사장인 론 타우라낙이 워크숍에서 제도사를 뽑기 위한 면접을 보고 있을 때 우연히 들렀다 뽑혔다고 한다.
고든 머레이는 승차감과 핸들링을 위해 놀라운 벤치마킹을 단행했다. 바로 알핀 A110이다. 이 프랑스산 쿠페의 부드러운 승차감과 안정된 주행이 머레이를 사로잡았다
브라밤의 전성기는 1972년이었는데, 팀을 인수한 남부 런던의 젊은 비즈니스맨 버니 에클레스톤은 머레이에게 1973 시즌을 위한 F1 머신을 새롭게 디자인하라고 요청했다. 구동축 부품의 문제만 아니었다면 머레이가 디자인한 BT42는 첫 그랑프리를 차지할 수도 있었다. 1973년에서 1985년 사이 머레이가 디자인한 브라밤 경주차들은 22회의 그랑프리에서 승리했고, 1975년과 1981년에 매뉴팩처러스 챔피언십 2등을 차지했다. 그리고 1981년과 1983년 넬슨 피케가 두 번의 드라이버 챔피언십을 거머쥐었다.
1986년 말 맥라렌의 수장 론 데니스는 머레이에게 페라리로 떠난 디자이너 존 바너드의 자리를 맡아달라고 제안했다. 데니스는 머레이에게 기술파트 관리의 전권을 줬고, 그 결과 머레이와 함께하는 동안 맥라렌은 4회 연속 매뉴팩처러스 타이틀과 1989년 알랭 프로스트의 드라이버 챔피언을 차지했다. 그리고 1990년과 1991년에는 아일톤 세나가 연속 챔피언에 올랐다.
정말 굉장한 기록이었지만 쉴 틈 없이 일해온 머레이는 1989년 말부터 점점 흥미를 잃었다. 레이싱이 더 이상 즐겁지 않았다. 그러던 참에 슈퍼카 맥라렌 F1이 탄생했다. 1988년 데니스와 머레이는 맥라렌 로드카 제작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때 맥라렌의 주주이던 사우디의 억만장자 만수르 오제가 그의 회사인 테크니크 아방가르드를 통해 F1 프로젝트의 메인 투자자가 됐고, 1990년 본격적인 디자인 작업이 시작됐다. 1994년 공개한 맥라렌 F1은 말도 안 되게 빠른 슈퍼카로, 모든 규정을 다시 쓰게 했다. 역사적인 하이퍼카였다.
이후 30년 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 지금 우리에게는 시속 482km에 도달하는 16기통 부가티와 앞으로 등장할 리막, 로터스 같은 하이퍼 전기차들이 있다. 이 차들의 출력은 2000마력 정도까지 올라갈 것이다. 일상적 전기차인 테슬라 모델 S 세단의 0→시속 97km 가속 시간은 F1 머신보다 1초 이상 빨라졌다.
스위치 기어를 포함한 모든 부분이 머레이의 정확한 계산에 따라 디자인 및 엔지니어링 되었다. 모든 인터페이스는 아날로그이거나 기계적이다
하지만 머레이는 숫자만 보다가는 중요한 포인트를 놓친다고 말한다. “저는 아직 F1 머신보다 더 순수하고 온전히 운전자에게 집중한 자동차를 본 적이 없습니다. 요즘의 스포츠카들 중에는 F1 머신보다 트랙과 도로에서 훨씬 뛰어난 차도 많습니다. 하지만 V8 터보 엔진과 특히 하이브리드카에서는 F1 머신이 주는 똑 부러지는 가속 느낌을 받지 못했어요. 그 소리가 나지 않거든요. 컨트롤면에서도 피드백을 받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 다시 타고 싶을 만큼 소름 돋는 느낌도 없죠. 지난 30년간 F1 머신 같은 자동차가 나오지 않았으니 내가 다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머레이의 최신 걸작을 여태껏 운전해보지 못한 게 후회스럽다.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을 것이다. 왠지 GMA T.50이 꺼져가는 내연기관차의 불씨 중 마지막 영광이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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