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에 본 적 없는 신기술과 디자인 요소가 들어간 전기차는
새로운 자동차 문화를 경험하고 비전을 가늠케 한다.
▼신기술의 집합체, 전기차의 모든 것▼
2년 전 홍천에서 열린 시승 행사에서 아우디의 첫 번째 순수 전기차 e-트론을 만났다. 그간 타 브랜드의 전기차를 여러 번 시승해봤지만 e-트론을 처음 탔을 때의 감흥은 남달랐다. 낯선 익숙함을 느꼈달까. 내연기관차에서 이어져온 부드럽고 경쾌한 주행 감성이 전기차 특유의 이질감을 덜어준 반면, 처음 마주한 버추얼 익스테리어 미러는 생경함 그 자체였다. 이는 사이드미러 자리에 소형 카메라를 장착하고 실내 도어 안쪽의 OLED 디스플레이를 통해 외부를 확인하는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이다. 외관상 얇실하게 바뀐 사이드미러는 미래적 이미지를 연출한다. 실제로 운전해보니 기존 사이드미러 쪽으로 시선이 가는 바람에 적응할 시간이 조금 필요했지만 사각지대가 없어 넓은 시야를 제공하고, 흐린 날이나 어두운 밤에도 선명하게 외부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능성과 효율성을 차치하더라도 새로운 차원의 사이드미러는 전기 모빌리티의 특별함을 경험하게 했다.
전동화 시대로 진입하면서 자동차 브랜드의 전기차 생산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는 분위기다. 그리고 새롭게 출시하는 전기차를 보면 이처럼 내연기관차에서 본 적 없는 신기술과 디자인 요소를 담아 차별화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친환경을 추구하는 전기차의 컨셉에 맞게 식물성 소재를 대거 적용하거나 기술혁신의 정점을 보여주듯 얼굴·지문 인식 같은 생체 인증 방식을 도입하기도 한다. 전통적 자동차 형태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디테일에 차이를 두는 이유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소비자는 ‘전기차=미래차’라는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더 확고히 하기 위해 회사에서 개발한 신기술을 먼저 적용하는 거죠. 기존에 이런 역할을 플래그십 모델이 해왔다면 지금은 전기차로 넘어간 셈이에요. 이를 테크니컬 플래그십이라 부르기도 하고요.” 이동희 자동차 칼럼니스트의 설명이다. 여기에 완전히 새로운 디테일을 더하면 신차의 주목도가 올라가고, 상대적으로 높은 전기차의 가격을 커버하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고 덧붙인다. 새로운 모빌리티의 패러다임을 주도하기 위해 내연기관차를 만들어온 노하우와 기술력을 총동원해 전기차를 생산하고 있는 자동차 브랜드들. 최근 출시한 전기차를 기반으로 어떤 신기술과 디자인 요소를 담았는지 살펴보자.
기발한 아이디어로 가득한 전기차
전기차의 외형에서 확실하게 변화를 줄 수 있는 부분은 전면에 위치한 그릴이다. 내연기관차에서 그릴은 고열 엔진을 식히는 역할을 했지만, 엔진 대신 배터리를 품은 전기차에선 그 기능을 상실한다. 전기차도 배터리 발열이 있지만, 이는 냉각장치만으로도 관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테슬라의 주요 모델이나 현대자동차 아이오닉 5가 과감히 그릴을 없앤 이유다. 하지만 내연기관차가 주는 감성이나 디자인 연속성을 부여하기 위해 그릴을 남겨두기도 한다. 대신 내연기관차처럼 뚫린 형태가 아니라 폐쇄형으로 바꿔 미래적 느낌을 살리고 새 기능을 부여한다. BMW에서 새로 출시한 iX가 그중 하나. 기존의 키드니 그릴과 비슷하나 폐쇄형으로 바뀐, 수직으로 더 길고 거대해진 그릴을 장착했다. 피라미드 패턴을 새긴 금속 패널처럼 보이지만 센서, 레이더, 카메라를 부착해 운전자 주행을 보조하는 일종의 지능형 패널 역할을 한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전기차 라인인 EQ 모델도 블랙 패널 라디에이터 그릴을 적용했다. 중심에 삼각별 엠블럼을, 양옆에 작은 별 패턴을 촘촘하게 더한 하이글로시 그릴은 공상과학영화에서 튀어나온 듯 그래픽적이고 미래적인 느낌을 준다. 이 그릴 역시 초음파, 카메라, 레이더 등 운전자 보조 시스템을 위한 다양한 센서를 품어 기능미를 살렸다.
전기차 특유의 미래지향적 느낌을 살리기 위해 실내 디스플레이에 힘을 쏟기도 한다. 포르쉐의 순수 전기차 타이칸은 무려 4개의 디지털 화면을 장착한 것으로 유명하다. 계기반과 대시보드 중앙, 동반석 앞쪽 그리고 센터페시아 아래까지 총 4개의 화면을 탑재한 대신 버튼을 모두 없애고 실내를 말끔히 정리했다. 특히 16.8인치 계기반 디스플레이는 다른 포르쉐와 달리 차양을 없애고 화면이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배치해 첨단 분위기를 강조했다. 메르세데스-벤츠 EQS는 MBUX 하이퍼 스크린을 최초로 적용한 모델. 운전석과 조수석, 중앙 디스플레이까지 3개의 디스플레이가 하나로 통합된 MBUX 하이퍼 스크린은 141cm 길이의 곡선형 패널로 실내 전체의 시각적 미감을 완성한다. 디스플레이는 파도처럼 실내 전체를 가로지르며 펼쳐지고, 스크린 상단에 얇게 걸쳐진 에어 벤트와 아날로그 디자인의 송풍구가 대형 스크린과 조화를 이뤄 아방가르드한 느낌을 준다. 특히 중앙·조수석 디스플레이에는 액티브 OLED 픽셀 기술을 적용해 보다 선명하게 색상을 구현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장치의 조작 방식을 ‘신박하게’ 바꿔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전기차도 있다. 제네시스의 순수 전기차 GV60처럼 말이다. 구 형상 전자변속기 크리스털 스피어를 탑재해 센세이션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운전자의 안전을 위한 사용성과 심미성을 모두 만족시키자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됐습니다. 내연기관차에 시동을 걸면 엔진음 때문에 차의 시동 유무를 파악할 수 있지만, 전기차는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기에 시동이 걸렸는지 알기 어렵죠. 이런 상황에서 운전자가 변속기를 부주의하게 조작하면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데, 크리스털 스피어로 이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제네시스 디자인실 강연지 연구원의 말이다. 콘솔에 자리한 크리스털 스피어는 시동을 걸기 전까지는 아름답게 가공한 하나의 오브제처럼 보인다. 그러나 시동을 걸면 구가 반 바퀴 회전하면서 전자식 변속 다이얼로 바뀌는 것. 안전도 안전이지만 크리스털 스피어가 회전하는 모습이 매우 극적이면서 감성적으로 다가온다. BMW iX는 브랜드 최초로 육각형 스티어링 휠을 장착했다. 처음엔 다소 어색하게 느껴지나 주행 중 디스플레이가 손과 핸들에 가려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설계했다는 설명처럼, 시야를 확보하는 데 유리하다. 실내에서 도어 손잡이를 찾을 수 없다는 점도 생소하다. 도어 쪽에 위치한 버튼을 눌러 문을 여닫는 시스템. 버튼의 작동 이상이나 사고 시 수동으로 문을 열 수 있도록 도어 하단부에 문고리를 만든 섬세함도 돋보인다.
전기모터로 달리는 전기차 특유의 주행감과 회생제동 시스템, 충전 방식 등은 내연기관차를 타던 운전자에게 새로움 그 자체일 것이다. 하지만 자동차 브랜드는 이런 본질적 차이를 넘어 내연기관차와 다른 실험적 기술, 디자인 요소를 담으려고 노력한다. 이는 전기차만의 특별한 감성과 경험을 제공하고, 자동차의 새로운 문화와 비전을 선도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새롭고 놀라운 디테일은 새로운 모빌리티 시대가 열렸음을 입증하며 나아가 더욱 기술 고도화된 미래차를 기대하게 만든다.
에디터 문지영(jymoon@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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