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한 새벽녘, 영화 '록키'의 주제가인 '빠바∼밤♬'이 경쾌하면서도 비장하게 흐르는 가운데, 실버스타 스텔론은 필라델피아 공장지대를 출발하면서 트레이닝을 시작합니다. 이탈리안 마켓과 공원을 지나 필라델피아 미술관 계단을 뛰어 올라간 후 시내를 굽어 보면서 두 팔을 힘차게 올리는 장면은 백미이지요.
파르테논 신전 모형의 대리석 건물인 필라델피아 미술관을 배경으로 두팔을 벌린 채 빙빙 도는 그의 모습은 마치 월계관을 쓴 승리자를 예고하듯이 힘찹니다. 그곳에서 계단을 내려와 왼편으로 5분 정도 걸으면 로댕박물관이 나옵니다. 입구를 통과하면 박물관 앞 정면에 커다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의 조각이 서 있습니다. 벌거벗은 남자가 앉은 자세로 생각에 잠겨 있어 꽤 괴이하기도 합니다. 힘줄이 불거진 근육질의 남자. 저 두꺼운 목, 강한 근육이 저절로 굵어질 리가 없겠지요. 육체적인 노동을 많이 했거나 운동으로 단련된 듯합니다. 오른 팔을 왼쪽 무릎에 올려 놓고 턱을 괸 아주 불편한 자세, 찌푸린 이마, 악문 입술, 오므린 발가락, 고개 숙인 채 절망적으로 고뇌하는 사람.
'무엇 때문에 이 남자를 로댕은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이름지은 것일까?' 계속 생각하며 쳐다보다가 갑자기 '저 손!'하며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습니다. 손이 주는 강렬한 느낌,움켜진 주먹, 모든 신체가 손으로 모아지며 모든 힘을 기울여 생각 중입니다. 이명옥 사비나 미술관장은 빛나는 한줄로 표현했었지요.
"손이 말보다 먼저 생각을 알려 주는 메신저 역할을 한다."
때로는 입으로 소리내어 하는 말보다 손이 하는 말이 더 감성과 생각을 자극합니다. 로댕은 누구로부터 이 손의 은유를 빌려왔을까요? 그렇습니다. 미켈란젤로입니다.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그린 '천지창조'는 창조주가 아담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순간 신의 검지와 아담의 검지가 맞닿는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는 하고 많은 신체부위 중 손을 신과 인간의 연결고리로 본 것입니다. 600년이 지나 이 장면은 스필버그 감독의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그는 'ET'에서 주인공 엘리엇의 검지가 외계인의 검지 끝에 맞닿는 명장면을 만들어 냅니다. 서로 소통, 교감한다는 영화의 주제를 손이 닿는 것으로 전달합니다. 놀라운 것은 과학적으로도 손은 인간의 진화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입니다. 손은 굉장히 정교한 시계 내부처럼 좁은 공간에 여러 구조물이 지나가고 힘줄과 인대가 정교하게 맞물려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 사람의 손'은 세상에서 가장 정교한 도구입니다. 손은 단순히 물건을 잡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음악을 연주하고 섬세한 제품을 만들고, 정교한 수술까지 수많은 일을 해냅니다. 인간을 이루는 뼈는 모두 206개인데 그중 54개가 손에 집중 투자되었습니다. 하나씩 세어보죠. 손가락 14개 손바닥 5개 손목 8개로 27개의 뼈로 이뤄집니다. 두 손을 합치면 총 54개로 몸 전체 뼈의 26%가 손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특히 엄지는 다른 네 손가락과 직각으로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엄지와 집게의 골이 깊어지고, 다른 손가락과 다른 방향을 향함으로써 신발끈을 묶는다든지, 열쇠를 돌리는 등 고도의 섬세한 감각과 정밀운동이 가능합니다.
엄지는 5개 손가락의 하나가 아니라 거의 절반에 해당할 정도로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진화의 산물입니다. 그래서 칸트는 '손은 눈에 보이는 뇌'라고 까지 했지요. 손에는 살아 온 사람의 인생이 들어 있습니다. 삶의 흔적이 묻어 있어 일상 언어 중 손이 들어간 표현이 많습니다. '내 손 안에 있다', '손이 모자란다', '그의 손에 놀아났다' 등등.
김경일 아주대교수는 '인간은 신체적 느낌(인지)과 자신의 생각을 균일하게 유지하려는 경향을 가진다.'며 손에 관한 사례를 흥미롭게 풀어내며 청중의 공감을 이끌어 냈습니다. 절정의 기량으로 신기록을 갈아치운, 한 수입차 딜러의 사례인데요. 그는 추운 겨울 날 출근해서 동료들이 커피를 마시는 동안 헤어드라이어로 차의 손잡이를 달궈 놓습니다. 딱 사람의 손을 잡은 정도의 온도로 말이죠. 추운 아침 방문한 고객이 달궈진 차의 문을 잡는 순간, 사람과 악수한 듯 온기가 느껴집니다. 결국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게 됩니다. 한번 자동차에 타서 핸들 등을 만지게 되면 구매확률은 두배 이상 높아집니다. 손으로 만지면 연이 닿게 되는 이치입니다.
지금부터 당신의 손이 가장 바쁘고 중요했으면 좋겠습니다. 손으로 기록하고 생각하다 보면 색다른 아이디어가 떠오를 것이고, 정성스런 당신의 손편지가 다른 이에게 용기와 위로를 보낼 것입니다. 사이가 틀어진 사람이나 하기 싫은 일에 당신이 먼저 손을 내밀면 '찌릿찌릿' 마법같은 일이 생길 것입니다. 어느 선사의 일화처럼 우리 손 안에는 위아래로 길게 뻗은 생명선, 가로로 뻗은 애정선, 직업선이 있습니다. 이 선은 어디에 있습니까? 천천히 주먹을 쥐어 보십시오. 바로 내 손안에 있습니다. 운명은 바로 당신 손 안에 있습니다. 로키처럼 두 손을 번쩍 들고 승리의 찬가를 부르는 계기로 만드는 것은 당신의 손끝에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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