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자라서 OO이 되어야 한다…정보라 신작 『아이들의 집』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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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자라서 OO이 되어야 한다…정보라 신작 『아이들의 집』을 읽고

독서신문 2025-07-07 06:00:00 신고

부모에게 둔기로 맞은 일곱 살 남자아이와 열 살 여자아이. 죄목은 밥을 늦게 먹고, 거짓말을 했다는 것. 법원은 우발적인 범행이라는 점과, 아이들이 부모를 용서한다는 의사를 밝혔다는 점을 참작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그리고 그 후는? 아이들은 다시 그 집으로 돌아갔겠지. 그 부모와 함께. 이 사건이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반복해서 고통을 받는지에 대해서는 알겠다. 이 가족과 함께 사는 “집”은 아이들에게 대체 어떤 공간을 의미할까.

여자는 물을 주었다. 시체는 바짝 마른 채 움직이지 않았다. _7쪽

작가 정보라는 한 아이가 집에서 죽는 사건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무정형이라는 이름의 조사자는 “아이의 장례식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는 죽어서는 안 된다. 자라서 어른이 되어야 한다. 어른이 되어 오래 살아서 노인이 되어야 한다. 그 당연한 권리가 지켜지지 못하는 세계, 그 기본적인 생존이 위협받는 사회라는 점은 소설 속이나 현실이나 똑같다. 정보라는 묻는 것 같다. 아이를 지키는 장치는 왜 이토록 느슨한가? 그것보다 안전한 ‘가능한 세계’가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지어진 가상의 세계에는 한 가지 규칙이 있다. 모든 시민은 한 달에 하루, 돌봄노동을 수행해야 한다. 누군가를 보살피는 데 무리가 없는 사회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수행해야 하는 돌봄의 의무다. 이 사회에서 돌봄노동이 행해지는 기관 중 하나, 소설의 중심이 되는 공간이 바로 ‘아이들의 집’이다. 부모가 아니어도, 아이를 키우지 않아도, 누구나 어떤 아이의 삶을 함께 책임질 수 있다.

아이들의 집은 국가가 운영하는 시설이지만, 사회와 격리되지 않는다. 시민은 자라면서 누구나 이곳을 거친다. 현실 사회의 의무교육기관과도 비슷한 장소다. 이곳에는 인간과 협력하는 로봇 ‘앨리스’가 있다. 아이들은 그를 ‘깡통’이라 부르기도 하고, ‘동글이’라 부르며 놀리기도 한다. 표면이 매끈한 플라스틱 재질, 어설프게 삐걱대는 몸짓. 하지만 아이들을 안내하고, 문을 열어주고, 어른에게 돌봄의 의무를 상기시키는 것쯤은 문제없이 해낸다. 앨리스는 무정형의 뒤를 따른다. 인간의 불완전함을 비추는 거울처럼, 때때로 기우뚱거리며 아이들의 침대 사이를 순찰한다. 인간과 로봇은 그렇게 한 팀이 된다.

[사진= Unsplashnote thanun]

『아이들의 집』은 가족에 대한 다수의 믿음을 흔든다. 혈연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과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말한다. 다만 “가족의 불운이 아이의 인생 전체를 지배할 필요는 없다”는 것도 중요한 사실로써 강조한다. 부모가 없어서, 부모가 가난하거나 신체적·정신적으로 병들었거나 아이를 감당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아이가 불행해지는 것은 옳지 않다.

“아니, 양육자가 자기가 당한 게 학대라는 걸 모른다고. 그게 문제라니까. 그래서 아이는 원래 이런 식으로 훈육하는 거라고 믿고 똑같은 짓을 저지르는 경우도 있는 거야. 자기는 이렇게 올바른 사람으로 잘 컸는데 아이가 너무 약해서 그 정도도 견디지 못한다, 혹은 요즘 애들은 영악해서 어른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꾀를 부린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거지.” _173쪽

작가는 해외 입양, 유기 아동, 아동학대, 국가의 무책임한 대응 들을 떠올리며 소설을 썼다고 했다. 소리 없이 사라진 아이들은 어디론가 끌려가 학대당하고 억울하게 죽어 나갔다. 예컨대 ‘부랑아 선도’를 명목으로 한 형제복지원과 선감학원 같은 곳. 조직적으로 가해진 물리적 폭행 말고도 아이들이라는 약자는 얼마나 손쉽게 폭력의 표적이 되고 마는가.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폭력은 얼마나 더 많고 처참할까. 아이들의 몸에 새겨진 상처는 얼마나 더 깊을까.

아동을 대상으로 한 반복되는 폭력은 사회가 얼마나 오랫동안 돌봄의 책임을 방기해 왔는지를 말해준다. 아이들이 점점 더 적게 태어나고 있다고 한다. 일본의 그림책 작가 사노 요코의 상상처럼 ‘태어나고 싶지 않아서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이런 것 아닐까. 이미 ‘태어난 아이’들을 책임지고 길러낼 수 있는 사회가 당연해지는 것.

아이는 죽어서는 안 된다. 아이는 자라야 한다. 살아서 어른이 되어야 한다. 어른이 되어 오래 살아서 노인이 되어야 한다. _225쪽

[독서신문 이자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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