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하늘의 빗방울이 걷히자 새로운 셀린느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이클 라이더가 첫 번째 쇼를 통해 던진 메시지는 명확했죠. 화려함 대신 미니멀리즘, 트렌드보다 실루엣에 집중한 컬렉션 사이로 조용하지만 분명한 셀린느의 변화가 시작됐으니까요.
과거 유수의 하우스에서 구조적인 균형미에 능한 면모를 보여주며, 디자이너보다는 건축가에 가까운 감각을 뽐내던 마이클 라이더의 진가가 드러나는 순간이었습니다. 마이클 라이더는 익숙한 버버리, 조셉, 보테가 베네타 등을 거치며 실루엣과 구조에 대해 뚜렷한 시각을 쌓아온 인물이죠. 조용하지만 강한 손길로 클래식과 컨템포러리를 넘나 들어온 그의 미학은 이번 셀린느 데뷔 쇼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화려한 장식 대신 옷 그 자체의 비례와 균형에 집중했죠. 날카로운 칼처럼 떨어지는 테일러링과 유연한 드레이핑, 차분한 컬러 팔레트에선 그가 10년 간 몸 담아 온 피비 파일로의 셀린느의 유산도 엿볼 수 있었고요.
런웨이 위로는 한껏 절제된 무채색의 향연이 펼쳐졌습니다. 아이보리, 페일 그레이, 머드 브라운처럼 중성적인 색조 사이로 레드, 블루, 그린을 비롯한 원색이 감초처럼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했죠. 실루엣 역시 날렵하면서 동시에 조용했습니다. 과장 없이 단정한 실크 셔츠와 하늘하늘한 슬립 드레스는 몸을 꼭 옥죄기보다 공기 한 틈 정도의 여유를 남기며 흐르는 듯한 실루엣을 그려냈죠. 액세서리에도 마이클 라이더의 정서가 올곧게 반영됐습니다. 쇼의 오프닝을 장식한 실크 스카프에 이어 공예적인 완성도를 한껏 끌어올린 가죽 토트백과 날렵한 메리 제인 슈즈, 손목에 가볍게 안착한 실버 뱅글 등은 룩에 은은한 포인트를 가미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죠. 여유로운 어깨선과 관능적인 스키니진에서는 편안함과 강인함이 동시에 전해졌고요.
마이클 라이더는 소란스러운 이 시대에 그 무엇보다도 절실한 지적 우아함을 뾰족하게 짚어냈습니다. 섬세한 재단과 공예적인 디테일로 진정한 덜어냄의 미학을 전면에 내세웠으니까요. 그는 레터를 통해 "옷은 늘 그 자체로 생명력을 지닌다. 입는 사람의 삶에서 한 부분을 차지하며 순간을 담아내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담는다는 점에서 옷은 그 자체만으로 기억, 환상, 삶이다"라고 밝혔죠. 셀린느의 두터운 유산 위로 마이클이 새 문법을 써 내려가는 지금, 하우스는 다시금 정의되고 있습니다.
셀린느 비비엔느 컬렉션 쇼에 참석한 뷔.
셀린느 비비엔느 컬렉션 쇼에 참석한 수지.
셀린느 비비엔느 컬렉션 쇼에 참석한 박보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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