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각자의 세계에 산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나라는 고유한 섬이 생겨나고, 그 섬 안에는 자신만의 경험과 가치관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작은 세계가 펼쳐진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자주 외롭다. 수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소셜 미디어로 촘촘히 연결된 세상에 살고 있지만, 문득문득 깊은 고립감에 휩싸인다. 나의 섬 풍경을, 내 세계의 상황을 온전히 이해해 줄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그리고 타인의 저 섬 안에 어떤 세상이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단절감이 우리를 외롭게 만든다.
외로움은 종종 부딪힘으로 이어진다. 각자의 섬에서 자신의 정당성만을 외치다 보면, 섬과 섬 사이에는 거친 파도가 일기 마련이다. 가정에서는 사소한 습관 차이로 언성이 높아지고, 직장에서는 서로 다른 업무 수행 방식으로 갈등이 폭발한다. 사회 전체로 시야를 넓혀봐도 마찬가지다. 세대 간의 갈등, 이념의 대립, 수많은 이해관계의 충돌이 매일 같이 벌어진다. 우리는 왜 이렇게 끊임없이 다투고 싸우며 살아야 할까?
데일 카네기는 인간관계의 본질을 꿰뚫어 본 현인이었다. 그가 제시한 타인의 열렬한 협력을 얻는 12가지 원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지혜로 가득하다. 그중 여덟 번째 원칙, "Try honestly to see things from the other person's point of view." (상대방의 관점에서 사물을 보려고 진심으로 노력하라)는 어쩌면 이 모든 갈등의 가장 근본적인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역지사지는 왜 그토록 어려운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말은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하게 들린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역지사지의 중요성을 배워왔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를 실천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특히나 첨예한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 앞에서는 이 원칙이 그저 고상한 이상주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보자. 층간소음 문제로 아래층 사람과 갈등이 생겼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게 하고 싶은 나의 입장과, 조용한 휴식을 원하는 아래층 사람의 입장은 정면으로 충돌한다. 이때 상대방의 관점에서 생각하기란 절대 쉽지 않다. ‘나도 내 집에서 편하게 살 권리가 있다’는 생각이 먼저 들고 ‘아래층이 너무 예민한 것 아니냐’는 불만이 뒤따른다.
회사에서 중요한 프로젝트를 두고 다른 팀과 협력해야 하는 상황도 마찬가지다. 우리 팀의 성과와 일정을 우선시하다 보면 상대 팀의 어려움이나 입장은 부차적인 문제로 치부하기 쉽다. ‘그건 그쪽 사정이고, 우리는 우리 할 일을 해야 한다’는 태도는 갈등의 골을 깊게 만들 뿐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해관계가 부딪히는 상황에서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는지도 모른다. 바로 이 전제 자체가 상대의 섬으로 건너가려는 시도조차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이다. 특별한 이해관계가 없을 때, 가령 길에서 무거운 짐을 든 사람을 도와주거나 공공장소에서 타인을 배려하는 일은 비교적 쉽다. 하지만 나의 이익이 조금이라도 침해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우리는 즉시 방어적인 태세를 취하고 내 세계의 성벽을 더욱 높이 쌓아 올린다.
생각의 경계를 넓히는 첫걸음
갈등을 해결하고 협력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우선 이 완고한 생각의 틀부터 깨뜨릴 필요가 있다. 상호 협력의 가능성과 여지를 넓히는 출발점은 놀랍게도 나의 이익에서 시작한다. 다만, 그 생각의 폭을 나의 이익에만 머무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이익까지도 함께 바라보는 것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이는 내 것을 포기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내가 원하는 것을 더 효과적으로 얻기 위한 가장 전략적인 접근법이다. 나의 입장과 상대의 입장을 하나의 커다란 지도 위에 올려놓고 함께 조망할 때 우리는 비로소 제3, 제4의 대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내 입장이라는 좁은 길만 고집할 때는 보이지 않던 새로운 길이 우리라는 넓은 들판에서는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가령 앞서 언급한 층간소음 문제에서 ‘나는 뛰어야겠다’와 ‘너는 조용히 해라’는 제로섬 게임(zero-sum game) 구도에서는 해결책이 없다. 하지만 ‘아이가 있는 집이니 마음껏 놀 시간이 필요하다. 동시에 아래층은 퇴근 후 저녁 시간에는 조용히 쉬고 싶겠지’라고 양쪽의 필요(needs)를 모두 인정하는 순간 새로운 합의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특정 시간에는 소음 방지 매트 위에서만 놀기’, ‘아래층 이웃에게 작은 선물을 하며 양해 구하기’ 등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안들이 떠오를 수 있다. 시야를 넓혀서 방법을 찾다 보면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나 패배가 아닌, 양쪽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윈윈(win-win)의 대안이 있기 마련이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낡은 신념을 버려라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상대방의 관점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시작할 수 있을까? 카네기의 지혜는 두 가지 실천적 방법으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자신의 어려움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상대의 이해를 구하는 자세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사람은 정반대로 행동한다. 갈등 상황이 닥치면 목소리부터 높이고 상대를 공격적으로 몰아세운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낡은 신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최악의 수다. 공격은 상대방의 마음을 굳게 닫아버리고, 똑같은 크기의 반발과 공격성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대신, 낮은 자세로 나의 곤란한 처지를 솔직하게 털어놓아 보자. “정말 죄송합니다만, 사실 우리 팀이 지금 이러이러한 부분 때문에 굉장히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 부분을 조금만 이해해 주실 수 있을까요?”라고 말하는 순간, 대화의 분위기는 180도 달라진다.
상대방은 당신을 공격해야 할 적이 아니라, 함께 문제를 풀어가야 할 파트너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 곧 패배라고 생각하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진솔함만큼 강력하게 상대의 무장을 해제시키는 무기는 없다.
기꺼이 예스라고 말하는 용기
둘째, 상대방의 요청에 기꺼이 응하는 자세다. 때로는 상대방의 부탁이 피곤하고 힘든 일일 수 있다. 내 시간을 써야 하고, 내 에너지를 소모해야 한다. 하지만 그 작은 수고가 가져올 긍정적인 효과는 생각보다 훨씬 크다.
직장 동료가 까다로운 자료 정리를 부탁했다고 상상해 보자. 내 일도 바쁜데 거절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 마침 나도 비슷한 자료를 본 적이 있으니 함께 찾아보자”고 기꺼이 응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 동료는 당신에게 큰 고마움과 호의를 느끼게 될 것이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즐거운 경험이 될 수 있으며, 무엇보다 두 사람 사이에 협력의 경험이라는 귀한 자산이 쌓이게 된다. 그리고 다음번에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 그는 누구보다 먼저 발 벗고 나설 것이다.
이러한 호의는 일종의 관계 계좌에 저축하는 것과 같다. 당장은 손해처럼 느껴질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더 큰 신뢰와 협력이라는 이자로 돌아온다. 상대방의 관점에서 생각한다는 것은 이처럼 그의 필요에 기꺼이 응답하고 나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가 있다.
서로를 연결하는 기술, 조망 수용
데일 카네기가 반세기 전에 통찰했던 이 지혜는 단순히 마음씨 좋은 사람의 직관을 넘어선다. 놀랍게도 현대 심리학, 특히 발달심리학과 사회심리학의 핵심 연구 주제와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로버트 셀만(Robert Selman)과 같은 심리학자들은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어째서 어떤 아이는 친구를 쉽게 사귀고 갈등을 잘 해결하는 사회적 유능함을 보이는 반면, 어떤 아이는 외톨이가 되거나 잦은 다툼에 휘말리는가?" 그들은 이 차이를 만드는 결정적인 열쇠가 바로 조망 수용(Perspective-Taking) 능력에 있음을 발견했다.
조망 수용 능력이란, 이름 그대로 타인의 관점(조망)을 내 마음속으로 받아들여(수용) 이해하는 인지적 기술을 말한다. 이는 단순히 동정심이나 연민과는 다르다. 상대방의 감정에 그저 감정적으로 동화되는 것을 넘어, '저 사람은 지금 왜 저렇게 생각할까?', '저 사람이 처한 상황은 어떨까?', '저 사람의 목표는 무엇일까?'와 같이 상대방의 생각과 의도, 상황을 이성적으로 파악하고 추론하는 고차원적인 정신 활동이다. 즉, 상대방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기술과 같다.
이러한 조망 수용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어떤 이익을 얻게 될까? 연구 결과는 명확하다. 그들은 거의 모든 사회적 관계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한다.
첫째, 불필요한 갈등을 피하고 관계를 주도한다. 상대방의 의도를 오해해서 생기는 감정싸움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때문이다. 둘째, 최고의 협상가가 된다. 상대방이 진짜 원하는 것과 두려워하는 것을 정확히 꿰뚫어 보기 때문에 양쪽 모두가 만족하는 윈윈 합의안을 손쉽게 설계해 낸다. 셋째,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리더가 된다. 구성원 각자의 입장과 고충을 이해하는 리더에게는 자연스럽게 신뢰와 자발적인 헌신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한마디로 조망 수용 능력은 복잡한 인간관계를 풀어가는 마스터키이자 사회적 성공을 위한 가장 강력한 무기인 셈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섬에 살고 있지만 그 섬에 스스로를 가두고 외롭게 살아갈 필요는 없다. 조망 수용 능력은 타고나는 재능이라기보다 의식적인 노력과 연습을 통해 얼마든지 발달시킬 수 있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오늘, 아주 작은 갈등이나 견해차라도 마주하게 된다면 잠시 멈춰 서서 이 기술을 연습해 보면 어떨까? 목소리를 높이는 대신, 마음속으로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다.
이 질문을 던지는 짧은 순간, 당신의 섬과 상대의 섬 사이에는 이미 단단한 다리가 놓이기 시작한다. 카네기의 지혜와 심리학의 연구가 증명하듯 타인의 관점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우리를 고립된 섬에서 구하고, 관계의 주인이 되게 하는 가장 확실하고 지적인 실천이다. 오늘, 당신의 세계를 넓히는 첫 번째 다리를 놓아보면 어떨까?
여성경제신문 김승중 심리학 박사·마음의 레버리지 저자 spreadksj@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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