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디어뉴스] 김상진 기자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 최진영이 자신만의 글쓰기 여정을 담은 창작 노트, 『내 주머니는 맑고 강풍』을 출간했다. 『구의 증명』, 『이제야 언니에게』, 『단 한 사람』 등으로 독자들의 깊은 공감과 지지를 받아온 그는 이번 책을 통해, 한 편의 소설이 탄생하기까지 견뎌야 했던 사적인 시간과 치열한 감정의 흐름, 일상을 기록하며 견고하게 축적해온 창작의 풍경을 나직이 풀어낸다.
이 책은 단순한 작가의 집필 뒷이야기를 넘어, “소설가 최진영”이라는 한 사람의 삶 그 자체에 대한 기록이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소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질문을 넘어서, ‘소설을 쓰는 삶이란 어떤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그렇게 최진영은 단 한 장의 소설을 써내기까지 작가가 겪는 수많은 고독과 충만, 망설임과 환희를 담담하고도 치열하게 펼쳐 보인다.
고독하지만 단단한 창작의 순간들
“소설을 쓰는 삶은 날마다 실패와 충돌하면서도 반드시 살아내는 일”
『내 주머니는 맑고 강풍』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사이 99개의 짧은 창작 노트로 이루어져 있다. 글을 쓸 수 없어 허우적거리는 날, 자신도 모르게 한 문장을 마감한 날, 사소한 기억에서 영감을 받아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떠올린 날들…. 그 모두가 이 노트 속에 차곡차곡 담겨 있다.
최진영은 때론 고백하듯, 때론 자기 자신을 타이르듯 노트를 써 내려간다.
“스물다섯 살의 나는 알았을까? 왜 글을 쓰고 있는지?”
“의미를 찾지 말고 일단 살아야 한다.” (p.75)
작가로서 자신을 끊임없이 되묻고, 다시 나아가기 위한 기초를 다지는 문장들. 이것이야말로, 단단하면서도 유연한 글쓰기의 본령일 것이다.
사랑이라는 감정,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이야기
“사랑은 공포이며, 상실이며, 끝없이 이어지는 감정의 파도다”
『내 주머니는 맑고 강풍』에서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는 ‘사랑’이다. 소설을 쓰는 행위는 그 자체로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듯, 최진영은 삶의 여러 조각들 속에서 사랑을 감각하고 끄집어내고, 문장으로 응고시킨다.
“사랑하는 사람이 외로워하면 말하자. 미안해. 내가 너와 다른 사람이어서 정말 미안해. 하지만 너와 내가 다르기에 우리는 사랑할 수 있어.” (p.23)
“슬픔을 껴안은 거대한 사랑을 조롱하고 파괴하는 사람들. 잡아먹힐 것이다.” (p.105)
이처럼 그의 문장은 섬세하면서도 강렬하며, 개인의 감정과 시대의 정서를 동시에 꿰뚫는다. ‘눈부신 사랑’이라는 표현은 단지 낭만적인 감정을 넘어서, 존재 자체를 끝까지 지탱하게 하는 근원적 에너지로 사랑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드러낸다.
창작이라는 ‘연패의 시간’을 견디는 법
“글을 쓰는 일도, 야구처럼 언젠가는 흐름을 타게 된다”
책의 또 하나의 흥미로운 특징은 ‘야구’라는 소재가 곳곳에 등장한다는 점이다. 연패를 거듭하는 한화이글스를 보며 최진영은 자신과의 싸움인 글쓰기 역시 “오늘은 지더라도 내일은 이길 수 있다”는 희망으로 견뎌나간다.
“연패에도 끝은 있다. 그 사실이 매번 새삼스럽고 놀랍다.” (p.207)
“오늘은 소설이 잘 안 풀려도, 내일은 오늘보다 잘 쓸 수 있기를 바란다.” (p.17)
0에서 100까지, 아무것도 없던 소설이 점점 단단한 형태를 갖춰가듯, 창작 또한 작고 충실한 반복의 연속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마주하며 독자는 문득 깨닫게 된다. ‘나도 이렇게, 하루를 살아낸다’는 사실을.
한 사람의 마음이 담긴 주머니
“이 작은 책 한 권이, 어쩐지 나를 일으켜 세운다”
『내 주머니는 맑고 강풍』은 단지 소설가 최진영의 노트를 엿보는 즐거움을 넘어서, 독자의 삶에 닿아 조용한 위로와 용기를 건네는 책이다. 사랑이 필요할 때, 실패했을 때, 나를 다시 믿고 싶어질 때, 우리는 이 책을 꺼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쓰고 싶다. 쓰고 있다. 완성했다. 세 문장으로 삶을 채우고 싶다.” (p.228)
맑고, 강풍이 부는 날. 작가의 말처럼 이 노트에 담긴 가장 사적이고 내밀한 기록은 결국 우리 모두가 언젠가 넘어질 그 순간에 맞닿아 있다. 그리고 그렇게 거듭 넘어질 나를 위해, 우리는 이 책을 미리 읽어둘 필요가 있다.
책 정보
도서명: 『내 주머니는 맑고 강풍』
저자: 최진영
출판사: 문학동네
장르: 창작 에세이 / 작가 노트
판형: 포켓북, 사철 제본
구성: 프롤로그 + 창작 노트 1~99 + 에필로그
출간일: 2025년 봄
“이 노트는 다시금 휘청이더라도 마침내 괜찮아질 거라는 예언이다.”
― 최진영, 『내 주머니는 맑고 강풍』 에필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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