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꿀벌은 단순히 꿀을 만드는 곤충 그 이상이다. 꿀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식물의 수분, 즉 화분 매개자 역할을 통해 전 세계 농업과 생태계를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존재다.
미국 농무부(USDA)에 따르면 전 세계 농작물의 약 35%가 꿀벌과 같은 수분 매개자의 도움을 받아야만 수확이 가능하며, 이는 인간 식량 생산의 중추적 역할을 맡고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국내 주요 작물 75종 가운데 52%가 화분 매개에 의존하며, 이 중 80% 이상이 꿀벌에 의해 수분이 이루어진다. 사과, 딸기, 고추, 참깨 등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먹는 농작물 대부분이 꿀벌의 수분 활동 없이는 생산되지 못하는 셈이다. 국립산림과학원은 꿀벌이 제공하는 수분서비스가 연간 약 5조 9천억 원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한다고 추산한다.
하지만 이 중요한 존재가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미국 UC 데이비스 기후연구소는 “기후변화가 꿀벌의 생존을 위협하는 주요 원인”이라고 밝히며, 특히 ‘계절 탈동조(phenological mismatch)’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꽃이 피는 시기와 꿀벌의 활동 시기가 맞지 않아 꿀벌이 적절한 시기에 꽃가루를 수집하지 못하게 되는 현상이다. 극단적 기상이변과 이상기후는 꿀벌의 생태적 균형을 붕괴시키고 있으며, 이는 벌집 폐사로 이어진다.
또한, 유럽연합(EU)이 규제하고 있지만 미국과 일부 아시아 국가에서 여전히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네오니코티노이드계 농약은 꿀벌의 신경계를 마비시켜 방향 감각을 잃게 만들고, 벌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유럽연합 보고서는 “농약 노출이 꿀벌 개체 수 감소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라고 밝혔다.
게다가 꿀벌을 공격하는 병해충, 특히 ‘바로아 진드기(Varroa destructor)’는 치명적이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최근 “미국 벌집의 절반 가까이가 사라졌다”며 바로아 진드기와 이로 인한 바이러스 감염이 집단 폐사의 주요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이 진드기는 약제 내성까지 보여 통제하기 더욱 어렵다.
마지막으로, 도시화와 대규모 단일작물 재배로 꿀벌의 서식지와 먹이가 되는 야생화가 급감하고 있다. UC 데이비스 연구진은 “꿀벌뿐 아니라 수많은 야생벌과 수분 매개 곤충들의 생존 기반이 위협받고 있다”며, “다양한 생물종과 식물종 간의 복잡한 생태계 네트워크가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위기가 현실화되면 농작물 수확량 감소는 물론,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한 과일과 채소의 생산이 줄어들어 전 세계 영양 불균형과 식량 안보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하버드 공중보건대학 보고서는 꿀벌 감소가 전 세계적으로 매년 140만 명의 영양실조 사망자를 증가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근 벨기에의 Apix Biosciences가 개발한 ‘파워 폴렌(Power Pollen)’ 같은 인공 사료는 꿀벌의 면역력을 강화하는 보조수단으로 각광받고 있으나, The Times는 “인공 사료가 자연에서 꿀벌이 수행하는 생태적 역할을 대체할 수는 없다”고 평가한다. 자연 생태계가 가진 복잡성과 다양성은 인간 기술로 온전히 복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대응해 우리나라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을 비롯한 5개 부처는 2023년부터 2030년까지 약 484억 원을 투입, ‘기상이변 대응 밀원수종 개발 및 꿀벌 생태계 보전’ 공동연구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번 7월 11일 심포지엄에서는 스마트 양봉 기술, 꿀벌 질병 진단 및 방제, 밀원 단지 조성 등 다각도의 연구 성과가 발표됐다. 특히 국립산림과학원은 기후변화에 강한 밀원수종을 개발하고 실증 단지를 조성한 성과를 소개했다.
그러나 과학적 기술과 정책만으로는 부족하다. 시민들도 꿀벌 친화적 꽃과 나무를 심고, 독성 농약 사용을 자제하며, 지역 생물다양성 보전에 동참해야 한다. 무엇보다 야생벌 등 다양한 수분 매개곤충에 대한 연구와 보전 노력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꿀벌은 단순한 농업의 도구가 아니라, 자연의 복잡한 네트워크를 잇는 중요한 연결고리다. 그들의 날갯짓이 멈추면, 결국 인간의 삶도 위협받는다. 지금 이 순간 꿀벌의 존재가 우리의 미래를 지키는 열쇠임을 깊이 인식하고, 전 지구적 협력과 실천이 절실한 이유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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