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차를 마셔보면 사실 뚜렷하게 다가오는 맛이나 향이 별로 없다. 맛으로는 녹차나 홍차, 향으로는 청차를 따를 수 없다고 말하는데 반박할 사람이 있을까? 녹차나 홍차는 중국의 넓은 땅에 차 산지 곳곳에서 내로라하는 향미를 내세우면서 명차(名茶)의 반열에 들어야 한다고 자부심을 내세운다. 그렇게 향이나 맛에서 청차나 홍차, 녹차에 밀리는 게 분명한데 희한하게도 보이차를 마시는 사람들은 다른 차류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래서 그럴지 모르지만 보이차에 관해 쓴 글을 읽노라면 무협지 분위기로 다가온다. 특히 용어에서 어떤 향미를 지칭하는 것인지 도통 알 수 없다. 차기(茶氣), 후운(喉韻), 회감(回甘) 등 알 수 없는 용어를 보통 사람들이 차를 마시면서 음미하는 향미로 느끼기 어렵다. 차기는 차의 기운, 후운은 목 넘김 뒤의 여운, 회감은 쓴맛 뒤에 따라오는 단맛이라는 게 사전에 나오는 설명이다.
차를 마시며 혓바닥이 감지하는 맛, 달고 쓰다는 향미
차를 마시면서 얻게 되는 여러 가지 감각을 특정 용어로 정의하고 있지만 실제로 체감하는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일반적으로 차 맛은 달고 쓰다는 느낌으로 그치지만 맛에는 오미(五味)라고 하는 단맛, 쓴맛, 신맛, 짠맛, 매운맛이 있다. 차를 마시며 달고 쓴맛 이외에 신맛, 짠맛, 매운맛을 느낀다면 미각이 아주 민감하다고 하겠다. 이 중에 차에서 신맛이 난다면 제다 과정에서 문제가 있던지 보관 과정에서 문제가 있다고 본다.
오미 중에 들어가지 않는 맛으로 떫은맛이 있는데 사실은 맛이 아니라 타닌 성분에 반응하는 입안 점막이 수축하는 현상이다. 쓰고 떫은맛이 복합적으로 다가오는 것을 고삽미(苦澁味)라고 하는데 보이차 생차를 마시는데 가장 부담이 된다.
그렇지만 고삽미는 차의 가장 핵심 성분인 폴리페놀-카테킨이 주는 맛이지만 필요 불가결한 성분일뿐더러 적정하게 작용하는 걸 두고 수렴성이 좋다고 한다. 수렴성은 입안 점막을 자극해서 차의 고유한 성분이 미각에 집중해서 작용하는 정도라고 보면 되겠다.
차를 우려서 홀짝 들이켜서 입안에 머금을 새도 없이 후루룩 마셔버리면 그야말로 달고 쓰고 떫다는 정도의 맛만 느끼게 될 것이다. 커피나 위스키를 얼음을 넣어 차게 마시면 향기 성분이 옅어져서 고유한 향미를 음미하기 어렵다고 한다. 최고급 커피인 블루마운틴이나 밸런타인 30년 산을 그렇게 마시는 걸 관련 덕후들이 본다면 얼마나 안타깝게 여길까? 음료 중에 고아한 향미를 음미할 수 있는 커피, 위스키와 차는 혓바닥의 감각만으로는 제대로 느낄 수가 없다는 말이렷다.
후각으로 맡을 수 있는 향은 자극적이어야 하는데 보이차의 차향은 차분하고 은근하다. 그래서 향을 집중해서 맡을 수 있도록 좁고 깊게 만든 잔인 문향배(聞香杯)가 있어도 보이차를 마시는 데 잘 쓰지 않는다. 차의 향미를 혓바닥의 미각(味覺)으로 감지하는 게 충분하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제대로 음미할 수 있는 걸까? 아마도 이런 이유로 차보다 커피, 보이차보다 홍차를 더 많은 사람들이 가까이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차를 입안에 머금어 감지되는 향미, 생진과 회감 그리고 후운
차는 물론이지만 커피나 위스키도 혓바닥으로 감지되는 직관적인 맛으로는 그 향미를 온전하게 음미하기 어렵다고 했다. 일단 입에 한 번에 들어가는 양을 되도록 적게 해서 잠시 머금고 굴리면서 들숨을 쉬면 침이 생성되면서 입안이 촉촉해지게 된다. 혀 아래에서 침이 나오는 걸 생진(生津)이라고 표현하며 특히 샘솟듯 나오는 현상을 두고 설저명천(舌底鳴泉)이라고 쓴다. 또 쓴맛은 단침이 나오게 하며 단맛이 더해지는데 이를 두고 회감(回甘)이라 한다.
잠시 입안에 머금고 있던 차를 넘기면서 들숨을 천천히 삼키게 되면 비강을 통해 차향이 감지된다. 또 목 넘김에서 차가 주는 반응을 느끼게 되는데 자극 없이 편하게 넘어가면 좋은 차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차탕을 넘기면서 목구멍 주변에서 느껴지는 현상을 두고 후운(喉韻)이라고 쓴다. 특별히 향미가 아니라 운(韻)이라고 쓰는 데에 주목해야 하는데 좋은 차의 기준으로 삼는다.
이렇게 차탕을 머금고 있을 때와 목 넘김의 상태에서 감지되는 생진, 회감, 후운은 사람마다 다르게 다가온다. 같은 차를 함께 마셔도 사람마다 다른 반응이 나오는 건 체질, 차를 마신 이력과 그때의 커디션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후운은 차맛을 감지하는데 민감한 사람일수록 느껴지는 감도가 강할 것이다. 후운을 얼마나 세심하게 느끼게 되는지는 평소에 차를 어떻게 마시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차 생활에서 생진과 회감, 후운을 음미하고 있는 사람이 선택하는 차는 어떨까? 특히 후운이 풍부하게 다가오는 차의 산지는 생태 환경일 것은 분명할 것이다. 그리고 차나무의 수령도 고차수일 것이며 찻잎을 따는 시기도 이른 봄일수록 좋지 않을까 싶다. 입안과 비강에서 감지되는 차 맛의 느낌은 쓰고 달다는 직관적인 향미와는 차이가 있다. 같은 차를 마셔도 생진과 회감, 후운을 음미하며 마시는 차 생활의 습관에 따라 다른 향미를 음미하게 될 것이다.
차기(茶氣)는 차의 기운, 차를 마시고 난 뒤의 몸 반응
차가 가지고 있는 기운이라니 얼마나 추상적이며 목 넘김 뒤의 여운은 또 어떤가? 하지만 내가 느끼지 못한다고 해도 어떤 사람은 후운에 빠져 한참 동안 차향을 느낀다고 하며, 차기가 강한 차라서 단전이 따뜻해져 온다고 하는데 이 표현을 빈말로 넘겨 버리면 안 될 것이다. 차기를 느끼는 초기 몸 반응으로는 차기가 좋은 차를 마시면 등줄기가 따뜻해지고 목 넘김 뒤에 속이 시원한 느낌이 오는 것이다.
차를 마시면서 혓바닥 감각만 가지고 쓰고 달다는 맛으로만 차를 판단하면 마실 수 있는 차가 너무 많다. 그렇지만 입안에서 느낄 수 있는 생진과 회감, 비강에서 감지되는 후운까지 살핀다면 마실 만한 차가 상당히 제한될 것이다. 여기에다 차를 목 넘김하고 난 뒤에 몸으로 감지되는 열감과 속이 시원한 느낌까지 다가오는 차를 찾는 건 더 어려워질 게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도 혀는 달고 쓰다는 직관적인 입맛보다 몸이 느껴서 반응하는 기운을 더 믿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보이차를 마시는 초기에는 쓰고 단맛으로 구별해서 혀로 느끼는 미각(味覺)으로 차를 마시게 된다. 그래서 생차보다 쓰고 떫은맛이 덜하며 찻값도 저렴한 숙차를 선호하게 된다. 그러다가 생차를 마시게 되면 입안에서 일어나는 생진과 회감, 목 넘김과 함께 감지되는 후운(喉韻)을 느끼게 된다. 여기서 '지극한 맛은 맛이 없다'는 지미무미(至味無味)의 의미를 받아들이기 시작하게 된다. 이 단계가 무르익으면 몸으로 감지되는 차기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이다.
'호흡이 트이고 위장에서부터 뜨끈한 뭔가가 치솟아 오르는 기운이 느껴진다. 관절이 부드러워지고 배변이 잘 되고 손발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차기 때문인가?' 어떤 차를 마시고 나니, 혹은 그동안 보이차를 마시면서 느끼지 못했던 몸 반응이 이런 느낌으로 다가오면 비로소 차와 내가 긍정적으로 소통하고 있다고 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차와 내가 겉모습이 아닌 내면으로 만나게 되는 상태가 바로 차기(茶氣)와의 조우임을 알면 되겠다.
차기(茶氣)를 영어로는 'tea spirit, tea energy'라고 쓸 수 있는데 주관적이며 추상적이고 모호한 개념인 건 분명하다. 차를 마시는 레벨로 보면 최상위로서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감각인데 수동적인 영향과 능동적인 반응으로 나눌 수 있겠다. 차의 성분과 함께 차나무의 기운이 몸에 미치는 영향이라서 '어떤 차'라는 게 중요하겠다. 또 차를 마시는 사람마다 체질이나 차력(茶歷), 몸 상태에 따라 반응이 다르게 나타날 건 분명하다.
차기에 대한 몸 반응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나겠지만 감각을 깨우지 못하면 잘 느낄 수 없을 것 같다. 차기를 느끼는 반응은 등줄기나 손발에 전해지는 열감, 속이 트이는 느낌과 함께 트림이 가장 많다고 한다. 특별한 느낌으로는 뭐라고 표현하기 어렵지만 몸 안에서 기운의 흐름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꾸준하게 감각을 살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차기로 인해 몸 반응이 일어나고 있는데 의식하지 않아서 느끼지 못한다면 내가 마시고 있는 차의 진면목을 보지 못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여성경제신문 김정관 건축사·도반건축사사무소 대표 kahn7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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