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포럼 행사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같은 테이블에 합석한 적이 있다. 서로 명함을 주고받고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었는데 유독 한 사람이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이었다. 그는 내 옆으로 자리를 옮겨서 포럼 시작 전까지 아쿠아리움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는 모 대학교 문화컨텐츠학과 교수였고 당시 나는 코엑스아쿠아리움 부사장이었다.
며칠 후에 그로부터 전화가 왔다. 학생들을 데리고 아쿠아리움 관람을 가고 싶다고 하면서 학생 수는 40여명이라고 했다. 아쿠아리움과 관련이 있는 문화컨텐츠학과 학생들이라 마케팅 부서와 협의해서 50% 할인을 해 드리겠다고 했더니 그 교수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러더니 돌연 관람을 다시 생각해 보겠다고 하면서 금액 대비 만족도가 충분한지 묻는 것이었다.
분명 그는 무료 관람을 염두에 두고 나에게 전화한 것임이 틀림없었다. 그러면 정식 금액을 내고 관람하고 나서 그만한 돈을 지불할 가치가 있는지 평가하라고 했더니 그 교수는 아쿠아리움에 오지 않았다. 문화시설에 대해 그런 사고를 가진 사람이 문화컨텐츠학과 교수라는 것이 씁쓸했다.
압구정동에서 중국집을 크게 하는 지인이 있었다. 내가 속한 단체모임은 늘 그 중국집을 이용했으므로 매출에 제법 기여했다. 어느 날 그로부터 부탁 전화가 왔다. 주방장을 새로 뽑았는데 주방장 부부에게 아쿠아리움 관람을 시켜주고 싶다고 했다.
문제는 공짜로 입장을 시켜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코엑스아쿠아리움의 부사장이 공짜로 입장시켜 주면 자기의 위상이 올라간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어이가 없었다. 가령 우리 직원들을 그 중국집에 보내면서 요리를 공짜로 대접하라고 하면 그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고 그와의 관계가 소원해졌다.
아쿠아리움에서 부사장으로 있는 동안 여기저기서 공짜 입장을 부탁하는 전화를 많이 받았었다. 대부분 나를 이용한 자기 과시의 목적으로 판단되었다. 아무리 하찮은 물건이나 저렴한 가격의 음식이라도 공짜로 요구하는 사람은 없을 텐데, 각종 공연도 그렇지만 문화시설은 공짜로 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런가 하면 문화시설을 이용할 기본 소양을 갖추지 못한 사람도 많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 온 순간부터 왕갑 행세를 하는 진상 고객이 그중의 하나다. 한번은 관람객들이 다니는 동선 한가운데에 대형 유모차를 세워두고 물고기를 감상하는 젊은 부부가 있었다. 관람객들이 지나가는데 매우 불편해했다.
내가 유모차를 살짝 옆으로 치우자 왜 남의 유모차를 함부로 만지느냐고 남자가 짜증을 냈다. 비싼 유모차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황당했다. 목에 직원 명패를 걸고 있는 나이 많은 나에게 이렇게 무례한 반응을 보이는 이런 유형의 고객들은 젊은 여직원들에겐 행패에 가까운 무자비한 반응을 보인다.
집에서 키우다가 처치 곤란한 생물들을 가져와서 몰래 큰 수조에 넣고 가는 고객도 있다. 먹던 우유나 음료수를 물고기가 사는 수조에 부어버리는 고객도 있다. 금지 안내문을 붙여두었는데도 이빨이 있는 어류 수조에 손을 넣어 손가락을 물렸다고 배상을 요구하는 고객도 있다. 아크릴에 흠집을 내는 고객도 있다. 마감 시간이 지났는데도 퇴장하지 않고 더 보겠다고 버티는 고객도 있다.
가장 곤란한 경우는 아쿠아리움에서 생물들을 전시하는 것 자체를 항의하는 사람들이다. 활동 영역이 넓고 지능이 높은 해양 포유류를 좁은 수조에 가두어놓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러나 아쿠아리움 자체를 동물 학대 시설이라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의 논리라면 동물원도 전부 폐쇄해야 한다. 해양생물을 보려면 바다로 들어가야 하고, 야생동물을 보려면 아마존이나 아프리카 평원으로 가야 한다.
이렇듯 좀 특별한 고객들로 인해 마음이 상하기도 했지만, 아쿠아리움에서 근무하는 동안 늘 행복했다. 아침에 일찍 출근해서 아쿠아리움을 한 바퀴 돌면서 수많은 생물과 눈을 맞추곤 했는데, 분명 그들도 나를 알아보는 듯했다.
그동안 몇 개의 아쿠아리움을 설계하면서 생물마다 살아가는데 가장 좋은 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아무리 자연에 가까운 환경을 만든다고 해도 자연과 비교할 수는 없으니 그것이 마음 쓰이는 일이다.
여성경제신문 손웅익 건축사·수필가 wison7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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