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가 시작되면서 불면증을 겪기 시작했다. 잠들기 힘든 것도 고통스러웠지만, 설핏 자다 깨서 온밤을 새우는 일이 잦아졌다. 새벽 1~2시경에 거실에 다시 나와 멍하니 앉아 있노라면, 순리대로 착착 노화의 순서를 밟는 몸이 서글프면서도 이러다 다른 병이라도 생기는 건 아닌지 불안하기도 했다.
결국 이런저런 약의 도움으로 잘 자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못 자기도 하면서 갱년기를 겨우겨우 지나고 있을 즈음··· 할머니의 황혼육아가 시작되었다.
세상일이란 게 가장 적절한 시간과 상황에서 일어나 주지 않지만, 중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는 위태위태한 몸 상태였다. 불면증을 나만 겪는 것도 아니고, 잠 못 자서 죽었다는 사람도 못 보았기에 산후조리원에서 나온 손주를 의기양양 데려왔다.
아시다시피 신생아는 밤에도 서너 번 깨서 먹기도 하고 기저귀를 갈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약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고, 다시 잠들기가 너무 힘들어서 쪽잠으로 많은 밤을 지내야 했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그런 날이 몇 달쯤 계속되자, 몸 상태가 확연히 나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가 자는 낮에라도 함께 자면 좋겠는데, 왠지 낮잠도 못 자는 생활이 이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깊이 잠들면 안 된다는 강박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던 것 같다. 그즈음 느낀 것은, 체력이 정신을 조종하는구나···.
평생 정신력으로 버티면 못할 것이 없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음을 깨달았다. 체력이 달리면 마음도 힘들고, 의지도 약해지고, 그러면 다시 힘이 달리고··· 이러다 황혼육아의 종착점까지 못 가는 건 아닌지···.
다행히 10개월쯤에 유아원에 입학하게 되어 낮에 조금씩 쉴 수 있게 되었고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육아 3년쯤 후, 딸 가족이 아파트 옆 라인으로 이사를 오면서 데리고 자는 육아에서는 해방되었다. ‘죽음 같은 잠···’이랄까.
손주를 보내고 맞이한 첫날 밤. 부스럭 소리에 깨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살짝 놓아준 밤. 온몸이 침대 매트리스로 빨려 드는 순간, 눈 떠보니 아침이었다. 황혼육아의 굽이굽이 산 중 하나를 넘은 날이다.
여성경제신문 이수미 전 ing생명 부지점장·어깨동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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