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육군 이기자부대의 해체, '불편한 진실'에 맞설 정치인은?

[논&설] 육군 이기자부대의 해체, '불편한 진실'에 맞설 정치인은?

연합뉴스 2022-10-11 17:23:4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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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재현 논설위원 = 군대 얘기만 나오면 '나 땐 말이야' 하며 눈을 부라리는 이 땅의 남자들. 현역 장병과 예비역들 사이에 도는 '핫뉴스'가 있다. 강원도 화천에 있는 육군 27사단, 이기자부대가 곧 해체에 들어간다는 소식이다.

최근 한 방송사 예능프로그램인 '어쩌다벤져스'를 통해 부대 해체 사실이 뒤늦게 인구에 널리 퍼진 것이다. 27사단 대표팀인 '이기자FC'는 남녀 혼성으로 나섰는데도 스포츠스타 출신군단을 상대로 0-0 무승부를 이뤘다. 요즘 군대가 '보이스카우트'라니 '진짜 당나라' 하는 우려를 씻어준 경기였다.

27사단을 두고는 하나의 정설이 있다. '6·25 때 북한군이 남침할 때 사단기(旗)를 빼앗겨서 다음에 반드시 되찾으라'는 뜻에서 부대 이름을 '이기자'로 지었다는 것이다. 부대 창설이 정전협정 두 달 뒤인 1953년 9월이라서 이는 사실과 다르지만. 다만 중공군에게 이승만 대통령의 지휘봉과 깃발을 빼앗긴 수도사단의 일부 병력이 27사단의 모체라고 한다니 관계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독특한 부대명이 말해주듯 27사단은 속된 말로 군기 빡세기로 악명 높다. 사단 내 유격장에 '훈련은 무자비하게'라는 문구가 새겨진 비석이 이를 대변한다. 대성산 등 해발 1천m가 넘는 험준한 산악지대에 있어 겨울이 되면 영하 20도를 오르내린다. 얼마나 추우면 옛 군대 내무반 난로인 '빼치카'(페치카)가 전군 최초로 보급됐을까. 이런 환경에서 천리행군과 야영 훈련을 시도 때도 없이 했으니 '메이커부대'라는 자랑스러운 타이틀이 붙었을 것이다.

격파 시범 선보이는 군 태권도 시범단 격파 시범 선보이는 군 태권도 시범단

(서울=연합뉴스) 29일 충남 계룡시 계룡대에서 열린 제74주년 국군의날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군 태권도 시범단이 격파시범을 보이고 있다. 2022.10.1 [공동취재] photo@yna.co.kr

메이커부대의 연쇄 해체는 'IT 강군'을 내건 국방개혁안에 따른 것이라지만, 저출산이 불러온 예고된 사태라 할 수 있다. 한때 70만명에 달했던 군 병력 규모는 2020년 55만명으로 떨어졌다가 20년 뒤 30만명 수준이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지금도 군대 갈 남자가 부족하다 보니 웬만해선 현역에서 빠지기 어렵다. 작년부터 병역 판정 기준에 학력을 없애 중학교 중퇴자도 현역으로 입대시키는 현실을 국민들은 알기나 할까.

군의 기초인 병력 수급에 큰 구멍이 뚫렸지만 비용 외에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병사 월급 200만원'을 약속했고, 취임 후 새해 예산안에 임금 인상 계획을 구체화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선택적 모병제를 제시했다. 수급 문제를 세금으로 풀어보려는 뜻이겠지만, 간부와의 형평성 문제 탓에 군 내부에서도 여론이 좋지 않다.

2030 남성의 절대다수가 바라는 대로 여성 징병제를 실시하면 어떨까? 여성이 극력 반대하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각종 여론조사에선 '여성도 군대에 가야 한다'는 데 20~50대 여성의 절반 이상이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중장년 남성들의 반대 비율이 높다는 점이다. 1970~1980년대 3년의 청춘을 나라에 바쳤던 사회의 중추 세대가 정작 딸들이 군에 가는 걸 싫어하니 논의가 진척되기 어려운 구조다.

미국처럼 외국인에게 군 입대의 길을 열어주자는 목소리도 있다. 미국은 버락 오마바 정부 때까지 병력 자원이 부족할 때 외국인 유학생에게 군 입대를 조건으로 시민권을 줬다. 하지만 한국은 순혈주의가 워낙 강한 나라라 반발을 뚫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북한이 하루가 멀다고 미사일을 쏘고 있다. 한반도가 다시 핵 리스크에 빠진 이 엄중한 시기에 육군의 군기를 상징하는 메이커부대가 사라진다고 하니 아쉬움을 넘어 걱정이 앞선다. 모병제든 여성징병제든 어떤 대안이라도 정치권이 초당적으로 결단할 문제일 수밖에 없다. '불편한 진실'에 맞설 용기 있는 목소리가 나오길 기대한다.

j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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