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중석의 싸인(Sign): 삶과 죽음의 진실게임] 4. 겨울, 일상에 침투한 일산화탄소 중독

[서중석의 싸인(Sign): 삶과 죽음의 진실게임] 4. 겨울, 일상에 침투한 일산화탄소 중독

금강일보 2018-11-09 23:25:00 신고

날씨가 세월을 말하는 요즘이다. 기록적인 무더위라는 여름을 견뎌내기 위해 고군분투한 게 엊그제 같은데 제법 찬바람 불고 서리 내리는 날씨가 익숙하게 다가온다. 설악산에는 벌써 눈이 내렸다. 쌀쌀하고 추워진 날씨에 이제 가정마다 본격적으로 난방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 때 조심해야 할 것이 일산화탄소 중독이다. 순간의 방심이 평생의 아픔을 남길 수 있는 일산화탄소 중독을 법의학적 측면에서 파헤쳐본다.


#1. 소외된 사람들, 그 겨울

일산화탄소로 인한 사고는 여름에 오랫동안 난방을 하지 않던 방바닥, 아궁이 쪽에 균열이 생기면서 발생하는 경우가 있는가하면 문제가 생긴 보일러 이음쇠를 방치할 때, 추위에 적응하지 않은 상태에서 야외 활동을 한 뒤 폐쇄된 공간을 난방 하다 치명적 상황에까지 이르는 경우가 많다.

경제 성장과 함께 우리나라 난방시스템에도 많은 변화가 찾아들었다. 그러나 이런 변화를 쉬 체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연탄에 난방을 의존하는 저소득 계층이 그렇다. 이들에게 일산화탄소 중독은 여전한 문제인 것이다.

#2. 일산화탄소 중독, 일상에 숨쉰다

1991년 11월 2일, 필자가 부검을 시작한 첫 날이다. 이날 진행한 4건의 부검 중 40대 남자가 유독 기억에 아른거린다. 그는 연탄으로 난방하던 방에서 변사했다. 부검을 통해 확인한 사인은 일산화탄소 중독. 그도 그랬지만 해마다 10월, 11월이면 적잖은 사람들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유명을 달리한다.

이런 상황은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달 중순, 경남 창원의 한 공터에 세워진 캠핑카 안에서 80대 아버지와 50대 아들이 숨졌다. 일가족이 숨진 캠핑카는 출입문과 창문이 모두 닫힌 채였다. 별도의 환기시설이 없던 캠핑카 화덕에선 타다 남은 숯이 발견됐다.

또 다른 사건은 영산강변 텐트 안에서 60대 부부가 숨진 일이다. 부부는 한 달 전쯤부터 이곳에서 낚시를 하며 지냈다. 경찰은 이들 부부가 부탄가스를 사용하는 온수매트를 깔고 자다 질식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일산화탄소 중독이 일상에서, 대개 사고로 발생한다는 점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3. 유명 배우의 죽음, 베르테르 효과

사고가 아닌 사건도 있다. 2008년 9월, 서울 노원구의 한 주택가 골목에 카니발 한 대가 멈춰서 있었다. 주차된 차량 안에서는 당시만 해도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배우 안 모 씨가 번개탄과 연탄이 내뿜는 자욱한 연기 속에서 미동도 없이 심장의 고동을 멈춘 채 발견됐다. 그러나 이후가 문제였다.

안 씨 사망과정이 언론에 여과 없이 그대로 노출됐고 이를 모방한 ‘연탄불 자살’이 잇달았다. 유명인 자살 수법을 모방,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명 ‘베르테르 효과’가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날로 증폭된 까닭이다.

특히 이 방법은 외국에도 알려져 대만 여가수 리추닝이 자신의 승용차 안에 숯을 피워 자살할 정도로 꽤나 큰 걱정거리로 대두되기도 했으며 2014년 12월엔 국가정보원 해킹프로그램 구입 관련 수사를 받던 경찰 역시 같은 방법으로 세상과 작별했다.


#4. 질식사? 중독사?

필자는 이러한 사건을 직접 부검하면서 얻은 경험으로 일산화탄소 중독사에 대해 세 가지를 언급하고 싶다. 우선 정확한 사인에 대해 질식사보다 일산화탄소 중독사로 하는 것이 타당한지를 짚어본다. 호흡은 공기 중 산소를 호흡기로 섭취해 세포에 공급하고 여기에서 생긴 이산화탄소를 호흡기를 거쳐 외부로 배출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공기가 대기에서 허파꽈리에 이르는 과정을 외호흡, 산소가 혈액에서 세포에 도달해 조직에서 사용하는 과정을 내호흡이라고 한다. 이때 제대로 산소가 공급되지 않는 상황을 흔히 말하는 질식이라 하고 사망하게 되면 질식사로 진단한다.

그런데 사람은 어떤 원인이든 치명적 상황에 이르러 사망할 경우 내호흡이 되지 않는다. 내호흡이 잘못돼 사망했다고 질식사로 표현한다면 모든 죽음이 질식사가 되는 셈이다. 따라서 법의학에서는 외질식에 의해 사망하는 경우에 한해서만 질식사로 본다.

일산화탄소는 무색, 무미, 무취의 비자극성 기체인데 공기보다 약간 가벼워 보통 연탄 연소 가스나 자동차 배기가스, 도시가스에 많이 포함돼 있다. 이밖에 큰 산불이 일어날 때 주위에 산소가 부족하게 되는 상황에서 발생하기도 하고 담배를 태울 때 연기 속에 함유돼 배출되기도 한다.

인체에서 일산화탄소의 작용은 그 자체로 독성이 있는 건 아니다. 폐의 혈액 중 헤모글로빈과 결합해 체내로의 산소공급능력을 방해하는데 이 때 헤모글로빈과 결합하는 힘은 산소보다 무려 250∼300배에 달한다. 이를 흡인하면 산소운반능력이 떨어져 치명적 상황에 놓이게 된다.

고장 난 보일러가 설치된 조그만 욕실에 들어간 후 수초 내에 쿵하고 쓰러져 사망한 사례가 있다. 일산화탄소에 중독돼 순간적으로 치명적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필자는 이런 경우를 질식사라 하는 것보다 일산화탄소 중독사라고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물론 통계청에서는 사인분류를 중독사로 하곤 있지만 중독사라는 게 일반인들로 하여금 더욱 경각심을 가질 수 있게 할 수 있고 국가기관 역시 요즘처럼 초겨울로 접어드는 환절기에 예방프로그램을 만들어 적극적인 예방책을 강구할 수 있다.

#5. 번개탄, 씁쓸한 관심

일산화탄소 중독사에 대해 필자가 말하고 싶은 또 다른 부분이 있다. 앞서 언급한 베르테르 효과다. 유명 연예인이 갑자기 사망하면 언론의 관심은 매우 뜨겁다. 사소한 것까지 일일이 보도하고 그런 과정에서 번개탄과 연탄 사용이 노출된다. 특히 또 다른 유명배우 사건에서 알려진 탄력붕대로 목을 매 사망하는 것처럼 지금까지 번개탄 사용은 모방자살의 주된 도구로 이용돼왔다.

필자 경험상 이런 사건 이전엔 번개탄이나 탄력붕대가 이렇게까지 자살에 흔히 사용되진 않았다. 언론에서 보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글을 쓰면서 인터넷 검색어로 ‘번개탄 사용법’, ‘번개탄 자살법’을 검색해봤다. 여전히 이 같은 내용을 다룬 블로그가 많았고 조회 수 역시 높았다. 안타까움을 쉬 접을 수 없는 씁쓸함을 안겨줬다.

#6. 타살 의혹, 허위조작정보의 덫

각종 자살 사례 가운데 특히 타살 가능성을 제기하며 소위 허위조작정보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일산화탄소 중독사인 경우 가장 흔하게 접하는 잘못된 상식 중 하나는 시신에서 선홍색 시반을 보게 되는데 이를 멍으로 해석, 타살의 근거로 삼는 경우다.

또 어떤 경우는 사람이 중독되는 과정에서 질식할 때 “고통스러워 손가락에 손상이 생기거나 자동차 문, 그리고 실내에 흔적들이 남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시신에 이런 현상이 없거나 보지 못했다는 이유로 “살해 후 시신을 옮겨 중독사로 위장한 것이 아니냐”고 의심의 눈길로 바라보는 이들이 종종 있다. 법의학적 이론을 참고해 전문가 판단을 오해하거나 왜곡하는 것을 경계해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실 오늘날 경찰의 과학수사기법은 너무나 발전돼 번개탄을 구입하거나 공기접촉을 차단하기 위해 테이프를 구입하는 과정을 차량 블랙박스나 CCTV 기록으로 직접 확인하고 있다. 특히 테이프 등에서 지문이나 유전자를 확보하기도 하고 현장에 법의관이나 현장조사요원(경찰 검시관)들을 파견, 세간의 오해를 불식시키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다.

#7. 자살예방, 필요충분조건

번개탄 등이 자살에 쉽게 이용되는 상황을 막기 위한 체계적인 사용법 정립이 절실하다. 법의학적으로 메르스 만큼 우리 사회에 치명적 영향을 주지 않을지는 몰라도 실제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자살하는 경우가 그에 못지않게 많을 것이라 추정되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글을 쓰면서 번개탄을 구입해봤다. 승용차를 타고 양복을 입은 채 아주 부자연스럽긴 했지만 아무런 질문도, 제약도 없이 번개탄을 손에 넣는 일은 쉬웠다. 그저 가까이 있는 물품이고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는 이유로 구입마저 손쉽게 한다면 훗날 감당해야하는 사회적 손실은 감내하기 어려울 정도로 클 것이다. 정부 주도로 우리 사회 내부의 면밀한 검토를 거쳐 자살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될 때가 온 것 같다.

 


◆ 서중석 소장은
-1957년 1월 3일 전남 여수 출생
-서울 양정고, 중앙대 의과대학 졸업,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 취득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관·중부분소장·법의학부장·원장 (1991년부터 2016년까지 25년 재직)
-연세대·고려대·경찰대 외래교수, 대한법의학회·아시아법과학회 회장, 세계과학수사학술대전(WFF) 의장 등 역임
-대전보건대 14대 총장
-금강일보 제2기 독자권익위원회 위원장(現)
-수상: ‘유한의학상’, ‘서울시의사회 의학상’, ‘외교통상부장관상’, ‘대통령 표창’(과학수사대상), ‘홍조근정 훈장’, ‘몽골정부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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