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학생은 명탐정] 용재, 인터뷰를 하다 1-1

베이비뉴스 2018.12.07 16:24

ⓒ베이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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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쉬는 시간마다 시달리다가 힘겹게 5교시 수업을 모두 끝냈다.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자마자 미친 듯이 뛰어서 교실 문을 빠져나왔다. 운동회 때도 이 정도로 빨리 달릴 수만 있다면 우리 반 1등도 문제없을 거다.

학교 건물을 빠져나와 남쪽의 운동장에 내려서고 나서부터는 걷기 시작했다. 쉬지 않고 뛰었더니 숨이 가빴고 아이들도 전부 따돌려 더 이상 뛸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좀… 뚱뚱한 편이라서 오래 달리면 숨이 많이 찬다. 아무튼 오늘 처음으로 주변에 아무도 없는 상황을 맞이하니 마침내 평화가 찾아온 느낌이었다.

나는 흙바닥 운동장을 터벅터벅 걸어 집으로 향했다. 갑자기 기분이 나빠져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지금 내 모습은 영락없이 싸움에 지고 도망치는 강아지 꼴이 아닌가. 아이들에게 당장 그만하라고 좀 더 세게 말하지 못한 내가 너무 바보 같았다. 아, 나는 이름에 그 멋지고 늠름한 ‘용’도 있으면서 왜 이리 소심하고 겁이 많은지….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애들의 호기심이 잔뜩 달아올랐으니 앞으로도 한동안은 매일매일 시달려야 할 게 뻔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여름방학이 2주 정도밖에 안 남았다는 거였다. 오늘처럼 잘 도망 다니면 어느새 방학일 테고 2학기 때면 애들이 내 일을 싹 다 잊겠지.

고민에 잠겨 무작정 발만 놀리다 보니 어느새 운동장 끝의 정문이 가까워졌다. 정문에 붙어 있는 수위실에서 연세가 꽤 드신 수위 아저씨가 밖으로 나와 학생들의 귀가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수위실 근처에 있는 소나무 뒤에서 웬 여자아이가 홱 튀어나왔다. 나는 심장이 튀어나올 만큼 놀라서 꽥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어머, 덩치도 산만 한 애가 왜 소리를 지르고 난리야! 깜짝 놀랐잖아!”

“미, 미안….”

고개를 숙여 사과하다가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자기가 먼저 놀라게 해놓고 정작 피해자인 내가 사과를 하고 있다니. 나는 샐쭉해져서 갑자기 튀어나온 여자애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검은 땡땡이가 들어간 흰 티셔츠에 파란색 멜빵바지를 입었고, 허리까지 닿은 검은 머리가 찰랑거리는 아주 예쁜 아이. 우리 반은 아니었지만 나는 이 아이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김영지?”

“응? 너, 나 알아? 우리 처음 얘기해보는 것 같은데.”

되묻는 영지에게 답변이 궁했다. 우리 3학년 여자애들 90명 중에 제일 예쁜 아이라서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고 솔직히 답하기에는 어쩐지 쑥스러웠다. 내가 몸을 비비 꼬며 대답을 못하자, 영지는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보더니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용재, 지금 바빠? 할 얘기가 조금 있는데.”

“어? 뭐, 뭔데?”

그러고 보니 영지도 내 이름을 알고 있네? 나는 귀신에 홀린 기분으로 영지를 보았다. 영지는 어깨에 비스듬하게 멘 작은 가죽가방에서 수첩과 연필을 꺼냈다.

“인터뷰를 하고 싶어.”

그 말에 영지가 얼굴 말고도 또 하나 전교에서 유명해진 다른 이유가 떠올랐다. 영지는 신문기자가 꿈이라서 학교를 누비고 다니며 온갖 신기한 이야기들을 취재한 다음 서너 페이지짜리 신문을 발행하고 있다. 집에서도 영지의 꿈을 응원해 신문에 들어가는 비용은 전부 부모님이 내주신다고 한다.

“나하고 인터뷰를? 나는 별로 대단한 아이가 아닌데.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고….”

“물론 그렇지. 평범한 너는 아무런 기사감이 못 돼.”

그렇게 너무 당연하게 인정할 것까지는 없잖아!

“하지만 네 귀신 이야기는 충분히 기사감이 되지.”

영지의 설명을 듣자마자 기분이 팍 식었다. 얘 또한 나를 가지고 유치한 호기심만을 만족하려 하는 다른 아이들이랑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이 무지 실망스러웠다.

“아니, 그냥 기사감이 아니라 특종도 될 수 있어. 우학초등학교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밤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사자상의 비밀!”

특종 생각에 별처럼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영지를 지나쳐 정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부푼 꿈에 빠져 있느라 내 움직임을 눈치채지 못한 영지가 뒤에서 나를 불렀다.

“야, 야! 용재야! 너 어디 가?”

“집에. 나 인터뷰하기 싫어.”

고개를 돌려 짧게 대꾸한 나에게 영지는 눈을 크게 떴다. 학교 최고의 스타 영지의 인터뷰를 거절한 건 아마 내가 처음일 테니 놀란 것도 이해가 갔다. 그래도 싫은 건 싫은 거니까.

“너 진짜 용재 맞아? 용재 아니지?”

그러나 이어지는 영지의 물음에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진짜 용재가 아니라면 난 누구란 말인가?

“그게 무슨 소리야?”

“애들이 그러던데. 진짜 용재는 벌써 죽었고, 지금 학교에 나온 건 귀신이 둔갑한 거라고.”

세상에, 이제 소문이 거기까지 갔구나. 내가 황당해하자 영지는 기회를 잡았다는 듯 얼른 내 쪽으로 다가왔다.

“거봐. 네가 인터뷰를 하지 않으면 말도 안 되는 뜬소문이 절대 가라앉지 않을 거야. 어쩌면 졸업할 때까지 시달려야 할 걸. 그래도 좋아?”

절대 좋지 않다. 지금도 짜증이 나서 죽겠는데 이런 오해를 앞으로도 계속 받는다면 죽어도 버틸 수 없을 거다.

“내가 우리 학교의 모든 아이들에게 진실을 알려줄게. 기자는 진실만을 말하는 사람이거든. 용재, 너는 조금만 용기를 내주면 돼. 네가 용기를 내서 나한테 먼저 진실을 알려주면 내가 책임지고 그걸 전교에 퍼뜨려줄게. 그러면 넌 더 이상 이상한 헛소문에 시달리지 않게 될 거야.”

새까만 영지의 눈동자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인터뷰 어디서 하면 돼?”

<1-2에 계속>

*소설가 나혁진은 현재 영화화 진행 중인 「브라더」(북퀘스트, 2013년)를 비롯해 모두 네 편의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조카가 태어난 걸 계기로 아동소설에도 관심이 생겨 '전학생은 명탐정'을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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