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유재동]가상화폐 광풍 후 1년… 상처는 아직 곪고 있다

소다 2019.01.11 09:30

유재동 경제부 차장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는 참고사진 ⓒGettyImagesBank
평범한 30대 회사원 A 씨는 친구의 권유로 약 2년 전부터 가상화폐 투자를 시작했다. 재미 삼아 했다고 보기엔 조금 많은 돈인 1000만 원 남짓으로 출발한 게 금세 억 단위로 불었고, 작년 이맘때쯤엔 가치가 10억 원 안팎까지 올랐다. 주변에서 “서울 아파트 한 채 건졌다”며 부러워할 때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더 큰 욕심을 냈다.

그의 백일몽(白日夢)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 후 1년 동안 A 씨의 자산은 사막 폭풍을 만난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다. 가상화폐 시세가 최고치의 10분의 1, 크게는 20분의 1 수준으로 추락하면서 현재 A 씨의 평가액은 다시 투자 원금 수준으로 쪼그라든 상태다.

본전이라도 건진 A 씨는 그나마 다행인 케이스다. 창피해서 주변에 차마 알리지 못했을 뿐, 광풍에 휩쓸려 생돈을 날린 투자자들이 우리 주변에 많다. 이들에게는 인생역전의 꿈이 처참하게 깨진 지난 1년이 지옥과도 같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특히 절박한 마음에 얼마 되지 않는 돈까지 날린 20, 30대 ‘흙수저’ 청년들이 겪었을 좌절과 고통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경제의 주축이 돼야 할 젊은층이 헛된 욕망의 늪에 빠져 1년을 허송세월한 것은 이들이 실제 잃은 돈의 가치보다 훨씬 더 큰 국가적 손실이다.

이 집단적 상처는 시간이 갈수록 아물기는커녕 계속 곪은 채 방치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오피니언 리더들을 만나 보면 이번 일로 인해 우리 사회의 노동의 가치와 돈에 대한 관념이 허물어져 걱정이란 말들을 많이 한다. A 씨는 “하룻밤 자고 일어나 보면 밤새 내 돈이 1억 원이나 불어난 날도 있었다. 힘들게 직장에 다니는 게 다 부질없어 보였다”고 말했다. 멘털이 무너진 건 300만 명에 이르는 투자자들뿐이 아니다. 이를 옆에서 관망했던 사람들도 ‘누가 수백억 원을 벌었다더라’는 소문에 허탈함을, ‘나만 바보가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불안감을 느낀다. 이런 비정상적인 부(富)의 축적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의 눈에는 자신이 평생 땀 흘려 일궈놓은 모든 것이 어느 순간 의미 없게 보일 수 있다.

보통 이런 종류의 사회 병리 현상은 경제 구조가 취약할 때 더 쉽게 발생한다고 한다. 몸이 피로하고 면역력이 떨어져 있을 때 병에 잘 걸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실제 도박 관련 주식도 불경기 때 더 오른다는 게 증권가의 정설이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꿈을 이루기 어렵다고 느끼는 사회일수록 일확천금의 유혹에 휘둘리기 때문이다. 가상화폐 투기가 만연했던 1년 전은 취업난과 집값 급등으로 계층 상승의 사다리가 빠르게 사라지던 시기였다. 이런 상황이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다르지 않아 보인다는 게 문제다. 갈수록 팍팍해지는 세상에 작은 희망의 싹마저 보이지 않는다면 이런 광풍은 언제든 다시 불어와 우리 사회를 뒤흔들 것이다.

A 씨는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자기 본전이 10억 원이라고 착각하고 이를 만회할 생각을 하고 있다.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해 밤잠을 설치는 것도 1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앞으로 가상화폐 가격은 A 씨 바람대로 또다시 급등할 수도, 오히려 더 떨어질 수도, 이런 수준으로 지지부진하다가 서서히 가라앉을 수도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앞으로 시세가 어찌 변하든지 간에, 이런 데에 인생을 거는 사람이 다시 늘어날수록 그 상처는 더 깊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A 씨처럼 많은 이들이 “1년 전으로 가즈아”를 속으로 외치며 조용히 명예회복을 벼르고 있다. 광풍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유재동 경제부 차장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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