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의눈] '진보는 무조건 선(善)한가'...물음 남긴 文 대통령

더팩트 2019.01.12 00:06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진행한 신년 기자회견은 보는 이에 따라 진보는 무조건 선(善)한가라는 물음을 남겼다. 사진은 문 대통령이 이날 기자회견에서 잠시 생각에 잠긴 모습. /뉴시스

신년 기자회견서 드러난 문재인 대통령 '시각'

[더팩트ㅣ허주열 기자] 진보는 무조건 '선'(善)한가. 같은 행위를 정치적 반대세력이 하면 비판의 대상이고, 본인들이 하면 '문제' 없는가.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청와대에서 진행한 신년 기자회견은 보기에 따라선 이런 물음을 남겼다.

문 대통령은 이날 "현 정부 권력기관에서 과거처럼 국민을 크게 실망시키는 일은 지금까지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청와대의 민간인 사찰을 폭로한 김태우 전 특감반원에 대해 "공직자가 자신의 권한을 남용할 수 있는데, 김 전 특감반원이 한 감찰 행위가 직분을 벗어나는 것인가가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며 "그 부분은 수사 대상이 되고 있어 (검찰 수사에서 시시비비가) 가려질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가 권한을 남용해 왔다고 지목한 김 전 특감반원이 1년 반 동안 청와대에서 일을 한 것에 대한 설명인데, 아쉬운 건 반성이 안 보인다는 점이다. 개인의 일탈이라고 해도, 관리 책임은 있을 터인데 그런 부분에 대한 언급은 없다.

문 대통령은 또 청와대의 KT&G 사장 인사개입 시도, 적자국채 발행 압력을 폭로한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에 대해선 "자기가 경험한, 자기가 보는 좁은 세계 속 일을 갖고 문제가 있다 판단한 것"이라며 "정책은 복잡한 과정을 통해서 결정하고, 최종 결정은 대통령이 하는데, 신 전 사무관이 잘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책의 최종 결정자인 대통령과 청와대 비서진은 얼마든지 정부 부처와 두 사안 등에 대해 협의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인사와 정책은 모두 대통령이 최종 책임자다. 청와대 직원의 비위행위는 개인의 일탈로 책임이 없고, 정책만 책임이 있다는 얘기로 들린다. 문제는 이 논리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수긍할 수 있을까이다.

두 폭로자(?)에 대한 정부 대처도 이중성이 엿보인다. 문 대통령의 '공익 제보자 보호 강화' 공약이 무색하게 김 전 특감반원은 청와대 내부 기밀을 유출한 혐의(공무상 비밀누설)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자살 소동'을 벌였던 신 전 사무관은 기재부 고발로 공무상 비밀누설·공공기록물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를 앞두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당시 공범이었다가 내부고발자로 나선 고영태 전 더블루K 상무와 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 부장을 '위대한 증인'과 '의인' 등으로 추켜세우며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물론 폭로 배경과 개인적 상황은 다르다. 그렇지만 '내부고발자'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나 존중은 보이지 않아 야권의 공격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청와대 본관에서 홍영표 원내대표 등 민주당 원내대표단과 오찬에 앞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언론인의 청와대행에 대해서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발언을 내놨다. 문 대통령은 MBC 출신 윤도한 국민소통수석, 한겨레 출신 여현호 국정홍보비서관, 김의겸 대변인 등의 인선에 대한 지적에 대해 "비판하면 달게 받아야 하지만 언론 영역에서 공공성을 살려온 분들이 공공성을 잘 살려야 할 청와대로 와서 청와대의 공공성을 잘 지킬 수 있게 해준다면 좋은 일"이라고 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과거 정권은 언론에 특혜를 주고, 언론은 정권을 비호하는 '권언유착'이 있었는데, 권언유착을 강화하기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 현직 언론인을 데려오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권언유착 관계가 지금 정부는 전혀 없다고 자부한다. 청와대를 유능하게 할 수 있는 인재들을 영입한 장점이 더 많은 인사"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 기자들과 함께한 북악산 산행에서 "권력과 언론의 관계는 건강한 긴장관계여야 한다"고 말했다. 또, 민주당도 박근혜 정부 시절 민경욱 KBS 앵커와 정연국 MBC 시사제작국장의 청와대행에 대해 "권력의 잘못을 비판해야 할 책무를 가진 현직 언론인이 권부로 자리를 옮긴 것은 매우 잘못된 행태"라고 비판한 바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언론인의 청와대행은 비판의 대상이고, 문재인 정부에서 이뤄진 언론인의 청와대행은 '장점 많은 인사'라는 설명을 납득할 국민이 얼마나 될까. 상황이 달라졌다고 동일한 행위에 대한 평가가 바뀌는 것은 스스로 신뢰를 떨어뜨리는 자충수다.

정치적 적대 세력이 하면 나쁘고, 우리가 하면 괜찮다는 인식은 본인들이 적대 세력보다 우월하다는 '선민의식'을 밑바탕에 두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우리가 하는 것은 절대 선이라는 독선으로 국정을 운영하면 함께 정치를 하는 야당의 협조를 이끌어내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당장 선거제도·사법제도 개혁부터 시급한 민생 현안까지 야당이 동의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게 수두룩하다. 좋든 싫든 야당은 정치적 파트너다. 이들의 비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은 비판을, 적폐세력의 '억지'로만 받아들이는 것 같아 안타깝다.

때로는 억지 같은 요구도 받아들이고, 국정운영에 필요한 것은 요구하면서 정치적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문재인 정부는 남은 임기 내내 야당과 정쟁만 하다 아무런 성과 없이 임기를 마칠 수 있다. 우려가 현실이 되지 않도록 혹시나 선민의식(자기들만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갖고 있다면 버려야 한다.

sense83@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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