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교육이 아닌 관계의 교육 - 넷플릭스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 리뷰

성교육이 아닌 관계의 교육 - 넷플릭스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 리뷰

IGN KOREA 2019-01-15 17:32:3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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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티스의 비밀 상담소 리뷰

성교육이 아닌 관계의 교육


예상과 기대를 밑도는 영화나 드라마는 절망감을 들게 하는 반면, 예상과 기대를 훨씬 웃도는 영화나 드라마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짜릿함과 환희를 선사해주곤 한다. 지난 해 전혀 기대치 않았으나 전 세계의 극찬을 받으며 2018년의 새벽을 연 <빌어먹을 세상 따위>가 그랬었는데, 올해는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가 그런 시리즈가 되지 않을까 자신 있게 말해본다.

출처=넷플릭스

주체할 수 없는 호르몬이 넘치는 질풍노도의 나이 열여섯, 무어데일 고등학교 1학년생 모두 여름방학 동안 총각, 처녀 딱지를 떼고 교내 곳곳에서 애정행각에 몰두하는 분위기이지만, 주인공 오티스 밀번(에이사 버터필드)은 그렇지 못하다. 학교에서 가장 인기도 없고 여자친구를 사귀어본 적도 없으니 총각 딱지는 당연히 못 떼었고, 무슨 이유에선지 혼자만의 시간조차 성공해본 적 없는 완전 숫총각이다.

하지만, 성 상담사인 어머니를 둔 탓에 관련된 정보는 물론 페미니즘까지 익히 알고 있는 오티스는 우연히 학교 과제 파트너가 된 불량 학생 애덤(코너 스윈들스)의 성적 문제를 해결해 주게 되고, 오티스의 짝사랑 메이브(에마 매키)의 제안을 받아들여 학교 폐화장실에서 학생들을 위한 비밀 상담소를 개업한다.

출처=넷플릭스

솔직히 2017년 11월 제작 발표 기사가 나왔을 때는 약간의 변형이 있을 뿐 이미 여럿 보아온 '괴짜들의 총각 딱지 떼기 프로젝트'가 주가 된 섹스 코미디가 아닐까 하는 선입견 때문에 큰 기대를 하지는 못했었다. 하지만, 에이사 버터필드와 진지함을 연기하는 배우 질리안 앤더슨의 캐스팅 소식이 들려온 후로는 오히려 '나의 선입견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저런 배우들이 출연한다는 것은 단순한 섹스코미디가 아니라 무언가 또 다른 매력이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하는 기분 좋은 선입견에 빠져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두 배우가 연기하는 인물을 양면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 배우들에게는 너무나 멋진 인물이다.

<휴고>와 <엔더스 게임>에 출연했던 열 살과 열두 살 어릴 적 맑은 눈망울과 귀여운 외모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성인이 된 에이사 에이사 버터필드가 맡은 열여섯 오티스 밀번은 여타 영화,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보다 상당히 복잡한 인물이다. 배려심은 강하지만 동시에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청소년의 모습을 보이면서도, 성적 지식 면에서는 조숙하나 실제 남녀관계에는 상당히 어리숙하며, 성적으로는 편견 없이 개방적이나 본인 스스로에게 억압되어 있는 인물이다. 이혼 이후 관계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 후 남성을 그저 캐주얼한 파트너로 바라보다가도 한 남자에게 반해 어쩔 줄 모르는 소녀 같은 면을 보이기도 하고, 성 상담사로서의 전문성은 있으나 엄마로서 아들 오티스와의 대화에는 미숙한 질 밀번. 질리언 앤더슨 역시 복잡한 인물에 큰 매력을 느꼈을 것이 당연하다.

에이사 버터필드의 이미지와 딱 어울리는 인물에 재미를 느끼는 한편, 반대로 질리언 앤더슨의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인물이 주는 충격적인 재미 역시 크다. 코미디 영화에 출연하더라도 그 진지함 만큼은 잃지 않던 질리언 앤더슨이 성교육 비디오에서 성 기구를 진지하게 만지작거리고 아들과 함께 자위에 대해 얘기하며 성적으로 개방적인 질 밀번을 연기할 것이라 그 누가 상상이나 해봤을까? 상상조차 해볼 수 없던 인물로 변화했다는 점이 주는 전율은 급소를 찌른 듯 주체할 수 없는 폭소를 유발한다.

출처=넷플릭스

두 주연 외에 낯설지만 빛이 나는 신예 배우들 역시 눈에 들어온다.

신예 응쿠티 가트와가 연기하는 오티스의 유일한 친구 에릭은 공개적으로 게이임을 선언한 탓에 학교 친구들로부터 놀림당하지만, 언제나 긍정적인 모습과 호들갑으로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들어 주었고, 큰 고통을 겪은 후 급격하게 어두워지며 드라마 분위기를 가라앉히는 진정한 분위기 메이커 캐릭터이다. 신예 에마 매키가 연기하는 오티스의 짝사랑 메이브는 겉으로는 터프한 배드걸이지만 그 안은 A 학점을 거뜬히 받을 수 있는 총명함과 상처를 두려워하는 여린 모습을 함께 갖춘 인물.

이 두 인물은 겉으로는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정반대의 인물이지만, 속으로는 각자의 상처와 시련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단순하고 정형적인 인물을 넘어 다양한 면모를 선보이고 어느 정도 완성된 스토리를 가지고 있어, 각자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를 만들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기분 좋은 상상까지 하게 만들어준다. 그 바탕 위에 오티스와 친구로서, 속마음을 숨긴 연인으로서 상호작용하며 서로를 위로하다가도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기도 하며 성숙해가는 과정은 십 대 성장 드라마가 보여줄 수 있는 제대로 된 재미를 선사한다.

또한, 알리스테어 페트리의 진짜 아들이라고 하면 다들 속을 만큼 많이 닮아있는 코너 스윈들스, 도도한 얼음공주 이미지에서 탈피해 4차원 오로라 공주가 된 타냐 레이놀즈, 항상 시크한 표정의 패트리샤 앨리슨, 토끼를 닮은 에이미 루 우드, 모두 하나같이 각자의 매력을 뽐내며 각자 맡은 십 대 인물을 눈부시도록 아름답고 유쾌하고 가슴 아프게 연기해낸다.

출처=넷플릭스

일단 겉모습은 섹스 코미디이다. 성인 배우가 연기하기는 하나 십 대 인물들의 나체가 보이고 애정씬이 연출되며,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동작이나 각종 성기구, 음란물과 성인 잡지, 성과 관련된 은어와 비하 언어, 그리고 성기까지 가감 없이 화면에 보여지는 등 섹스 코미디에서 쉽사리 볼 수 있는 정형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그래서 일반적인 시선에서 보자면 상당히 선정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그렇기에 이런 얘기를 들은 이들의 반은 초롱초롱한 눈빛과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으며 플레이 버튼을 클릭하겠지만, 나머지 반은 미간이 오그라들고 입꼬리가 올라가는 현상을 겪으며 '싫어요' 버튼을 클릭하고자 하는 욕망에 휩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로 그런 선입견부터 깨야 한다. 이 드라마의 표현 수준은 일반적으로 섹스 코미디에서조차 편집되는 영역 그 이상으로 지나치게 솔직하게 보여준다. 웃음을 주려는 의도도 있지만, 드라마의 성격상 필요한 묘사이기에 반드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의 성교육

논란의 소지를 주지 않으려는 의도에서인지 우리말 제목은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로 순화되었지만, 원제는 성교육(sex education)이다.

성교육하면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신체구조와 임신, 생리, 그리고 피임법 정도이지 싶다. 근래 들어 한 편에서는 성교육이 문란함을 가져온다며 성교육 자체를 금지하자는 주장을 나오기도 하고, 우리나라도 그런 쪽에 속해 30년 전에 했던 것 그대로 유지되는 듯싶다.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오히려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데, 그 핵심은 사람과 사람끼리 감정의 교류부터 가르치는 성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인터넷만 할 줄 알면, 손에 휴대폰만 있으면 너무나 쉽게 음란물을 접할 수 있는 요즘 세태에서 관계가 사라지고 거짓된 성행위부터 익히는 청소년들에게 상대방을 배려하고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며 감정을 교류하고 사랑을 나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출처=넷플릭스

우리말도 성행위와 성관계라는 단어가 따로 있지 않은가? 같은 범주의 행동을 뜻하는 단어이지만, 전자가 단순한 성의 행동 그 자체를 뜻한다면, 후자는 성행위를 통해 사람과 사람끼리,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뜻하는 단어이다.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의 기저에는 바로 이런 관계의 이야기가 깔려있다.

오티스에게 상담받게 되는 청소년들의 고민은 한결같이 오버섹슈얼한 세태가 만들어놓은 어긋난 사회적 기준에 맞추려 하는 것으로, 대부분 학생 본인의 문제에서 나왔다기보다 외부 요인에서 영향을 받은 것들이다. 그런 고민을 들은 오티스가 학생들에게 제시하는 해결법은 자기 자신을 찾아라, 상대방을 좋아하게 된 이유를 찾으라, 상대방의 이유를 이해하라 등으로 관계의 해결법이다. 그런 해결법을 통해 감정을 나누고 서로의 관계를 회복해나간다.

출처=넷플릭스

그런데, 관계의 해결법은 단순히 성적 고민을 해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이들과 부모의 관계를 회복하는 방법으로도 함께 제시되고 있다. 일단, 오티스와 어머니 질의 관계부터 불편하다. 처음에는 단순히 성 상담사인 어머니를 둔 탓에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처럼 묘사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오티스의 압박된 심리와 질의 문제가 같은 문제에서 기인하였다는 것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또한, 에릭이 게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버지, 아들에게 엄격한 규율을 강요하는 잭슨의 어머니와 애덤의 아버지, 세상에 홀로 남겨진 외톨이로 희망보단 절망에 익숙한 메이브 등 인물들 모두가 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관계의 해결법으로 대화를 제시하고 일부는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해나가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즉, 관계의 성교육을 먼저 보여준 후 부모-자식 간의 인간관계까지 그리며 긍정적인 방향 역시 함께 제시하고 있는 속 깊은 드라마이다.

그래서 넷플릭스에게 아쉬움의 꾸짖음을 해주고 싶다. 순화된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 말고, 드라마 속 진정한 메시지가 담긴 원제 그대로 <오티스의 성교육> 정도로 지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출처=넷플릭스

넷플릭스에서 서비스되는 대다수의 영국 코미디 시리즈는 영국 '채널 4'에서 제작, 방영된 것들이다. <데리 걸스>, <인비트위너스>, <미스터 쿠쿠>, <프레쉬 미트>, <연애의 부작용>, 심지어 <빌어먹을 세상 따위>, <블랙미러> 마저도 채널 4의 것이다.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는 채널 4의 자회사 중 하나인 ‘일레븐 필름스’에서 제작했고, 연출 벤 테일러, 케이트 헤론을 비롯해 수많은 제작진의 필모그래피에 앞서 열거한 영국 코미디가 포함되어 있다. 그중에서 특히 음악을 맡은 맷 비파와 시아라 엘위스는 <빌어먹을 세상 따위>, <데리 걸스>, <연애의 부작용> 등을 함께 했던 콤비여서 이를 본 시청자들은 감각적인 음악이 상당히 귀에 익을 것이다.


Ukchol Joung님은 IGN과 함께하는 필자입니다. 신속하게, 그리고 다르게. 언제나 신선한 Ukchol Joung님의 드라마와 영화 감상은 블로그에서 더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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