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자들이 여성의 유해에서 주목한 부분은 바로 치아였다. 여성의 치아에는 신기하게도 푸르스름한 치석이 끼어 있었다. 치석을 분석하자 청금석 안료 성분이 나왔다. 청금석은 파란색 물감을 만드는 데 쓰인 돌로 아프가니스탄에서만 산출되었기 때문에 금이나 은처럼 귀한 취급을 받았다. 청금석을 갈아 만든 물감 역시 값진 것이라 종교화 등 특수한 그림을 그릴 때에만 사용됐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미덕이었으며 여성에게는 특히 더 엄격한 자기절제가 요구됐던 중세 시대 분위기상 당시 화가들은 작품에 서명을 남기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증거가 없었던 탓에 그간 학계에서는 중세 여성의 예술적 활동이 극히 제한돼 있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막스 플랑크 연구소 교수이자 이번 연구의 책임저자인 크리스티나 바리너 교수는 “이 여성의 유해를 통해 중세시대 여성도 그림을 그리는 전문적 직업에 종사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며 “역사 속에 묻혀 있는 이름 모를 예술가들이 얼마나 많을지 궁금해진다”고 덧붙였다.
이예리 기자 celset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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