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녕 작가 '상실감, 소설 쓰며 달랬죠'

이데일리 2019.02.12 08:45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며칠전 어머니 49제여서 책 속에 편지를 써서 묘비 앞에 두고 왔다. 앞으로도 세상에 빚을 갚은 마음으로 글을 써 나가려 한다.”

2014년 4월 16일 이후 ‘작가인 나의 죽음'을 경험했다. 다시는 글을 쓸 수 없으리라는 예감에 사로잡혀 뿌리치듯 한국을 떠났다. 그러나 망명지인 북미에서 더욱 사나운 꿈에 쫓겨 다녔다. 한국에서의 기억들이 매 순간 괴롭혀댔다. 낯선 도시의 병원에 누워있는 동안 ‘단 한편의 소설'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자기 박물관' 이후 5년 만에 여덟번째 소설집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문학과지성사)를 펴낸 윤대녕(57) 작가가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었던 건 역시 ‘글'이었다. 이번 책엔 북미에 체류하는 동안 쓴 ‘서울 -북미 간'을 비롯해 세월호 참사 이후 저자에게 나타난 변화를 담은 8편의 작품을 수록했다.

윤 작가는 1990년 ‘문학사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은어낚시통신' ‘눈의 여행자' 등을 펴냈고, 이상문학상(1996), 김유정문학상(2007) 등을 수상했다. 현재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윤 작가는 “세월호는 내 자신의 정체성을 뒤흔든 사건이었고 작가로서 다시 태어나는 계기가 됐다”며 “우리가 어떤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환기시키고 싶었다”고 집필계기를 밝혔다.

△세월호·삼풍백화점 아픔 소설로

소설의 각 작품에는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이들의 ‘여행'이 그려진다. 불의의 사고로 딸을 잃은 K는 세월호 침몰 후 밤마다 아이들이 물속에서 아우성치는 꿈을 꾸다 밴쿠버로 떠난다. H는 삼풍백화점 붕괴로 남편을 잃은 후 한국을 떠나 혼자 딸을 키우며 살아간다.

“세월호 사건 이후 글을 쓴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 건지 고민을 많이 했다. 가슴 아픈 사건이 터졌을 때 작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게 괴로웠다. 글을 쓰면서 그때의 괴로웠던 장면이 떠올라서 호흡 곤란으로 병원에 입원도 했었다.”

지금까지 쓴 작품과는 다르게 이번 작품엔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이 눈에 띈다. ‘총'에서는 폭력과 억압으로 가족에게 군림하는 국가주의자 아버지를 향한 분노를 표출하고,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에서는 가부장적인 폭력과 피해를 당한 여성들의 동료애적 연대를 그려 보이기도 한다.

윤 작가는 “작가는 글로 이야기하면서 사회적 존재로 거듭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소설로 커다란 사회변화를 일으킬 순 없어도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고자 했다”고 말했다.

△어머니 여읜 ‘상실감' 글로 달래

특히 지난해 어머니를 여의고 난 후 느낀 상실감은 펜조차 들지 못할만큼 큰 고통이었다. 마지막 표제작인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를 쓰는 동안 어머니의 말기암 소식을 듣고 한동안 글을 쓸 수 없었다고 한다.

“작년에 특히 일이 많았다. 당장 어머니가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데 소설을 쓰고 있는 게 맞는건지 자괴감도 들었다. 외아들이라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다. 문학을 하는 게 어머니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생각했지만 돌아가시고 나서 생각해보니 내가 말하고 쓰는 모든게 어머니에게서 받은 거였다.”

앞으로도 세상에 대해 진실하고 좋은 글을 쓰겠단 생각이다. 힘이들 때도 위로가 된 건 결국 문학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직접 겪어보니 세상에 모든 상실감을 떠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가 나를 작가로 만들어주셨으니 계속 이 길을 가겠다고, 더 열심히 쓰겠다고 다짐했다. 사실 아직도 상실감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다. 비록 상실감은 영원히 가더라도 글을 쓰면서 남은 생을 버티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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