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학생은 명탐정] 새로운 친구가 왔어요 1-1

베이비뉴스 2019.02.12 10:39

나는 한달음에 인터뷰를 다 읽었다. 내가 했던 얘기들이 빠짐없이 잘 실린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내 기사 밑으로 몇 문단이 더 이어져 있었다. 내 얘기는 여기서 끝인데, 영지가 무슨 말을 더 남겼을까? 얼른 남은 글을 읽어보았다.

‘김영지 기자의 진실 검증 : 사자상은 정말 움직였을까?’

3학년 1반 박용재의 제보를 받고 나, 김영지 기자는 큰 충격을 받았다. 나는 친구들에게 사자상이 밤이 되면 깨어난다는 괴담을 들을 때마다 코웃음을 쳤었기 때문이다. 돌로 만든 사자상이 내가 키우는 강아지 아롱이처럼 네 발로 걷고 학교 이곳저곳을 쏘다닌다는 얘기를 과연 진지하게 믿어야 할까? 몹시 의심스러웠지만 용재의 열띤 말투나 진지한 태도 등을 보면 어느 정도 믿음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었다. 믿을지 말지 결정하기 어렵다면 답은 간단하다.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면 분명한 결과가 나올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제 수업을 마치고 사자상을 보러 갔다. 용재가 말한 것만 들어보면 사자상은 몹시 무시무시할 것 같지만 실제로 보니 눈도 멍하게 뜨고 있었고, 솔직히 좀 멍청하게 생겼더라. 나보다 몇 배는 큰 사자상을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암만 살펴봐도 별로 이상한 곳이 없어 보여 김이 빠졌다. 혹시 세게 밀어보면 움직일까 싶어 두 손으로 힘껏 밀어보았다. 역시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여자인 내 힘이 부족한 게 아닌가 싶어 마침 근처에 있던 6학년 오빠 다섯 명에게 부탁했다. 나까지 여섯 명이 온 힘을 다해 밀었지만 사자상은 1센티미터도 움직이지 않았다. 오빠들에게 감사 인사를 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바로 그날 밤, 아빠와 함께 학교에 갔다. 낮에는 사자상이 꿈쩍도 하지 않았지만, 용재는 한밤중에 움직이는 모습을 봤다고 했으니까. 아빠가 수위 아저씨에게 사정을 잘 설명해 셋이서 사자상에게 가봤다. 사자상 앞에서 무려 한 시간이나 기다렸지만 사자상은 움직이기는커녕 기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두 시간이 지나니 하품이 나오고 잠이 쏟아져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결국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잠자리에 들기 전 괜한 얘기로 아빠를 귀찮게 해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아빠는 웃으면서 뭐든지 의심 가는 걸 직접 확인해보는 것은 좋은 태도라고 오히려 칭찬을 해주셨다. 하지만 아빠와는 달리 나는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용재의 뻔뻔스런 거짓말에 속았다는 게 너무 분했고, 바보 같은 용재가 일으킨 바보 같은 헛소동에 우리 학교 학생들이 나쁜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도 걱정이 되었다.

내가 확실히 말하지만 용재는 용서받지 못할 거짓말쟁이거나 구제불능의 겁쟁이, 둘 중의 하나이다. 만약 처음부터 나쁜 마음을 먹고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면, 너무 심한 겁쟁이라서 그날 밤 두려움에 질린 나머지 사자상이 움직이는 환상을 본 게 아닐까. 어쩌면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병원에 입원한 용재는 겁에 질려 밤마다 쉬를 쌌다고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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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영지의 기사를 마저 읽지 못하고 신문을 구깃구깃 구겼다. 내 물건이 아니라 재호가 산 것이지만 화가 치솟아 나도 모르게 그러고 말았다. 뭐 신문 값은 이따 물어줄 거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내 명예였다. 나는 부모님께 맹세코 진실만을 얘기했는데, 영지는 나를 못된 거짓말쟁이로 몰아가고 있잖아!

게다가 영지는 글 몇 줄로 내 이미지를 겁쟁이 오줌싸개로 만들었다. 어쩐지 애들이 나를 보고 실실 비웃는다 했다. 세영이가 나를 보면서 냄새를 막는 것처럼 코를 싸쥐었던 행동도 그제야 이해가 갔다. 물론 그 일만큼은 입을 다물어달라는 얘기를 깜박했지만 그 정도야 알아서 비밀을 지켜줬어야지. 어떻게 인터뷰까지 해준 나에게 이럴 수가 있을까. 너무도 억울하고 속상해서 눈물까지 나오려고 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따지고 싶었지만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정수연 선생님이 들어오는 바람에 도로 앉을 수밖에 없었다.

산수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전혀 집중이 되지 않았다. 머릿속에서는 오직 영지에 대한 복수심만이 불타올랐다. 그 아이를 보기 좋게 혼내줄 여러 가지 궁리를 하느라 하루가 다 갔다. 6교시가 모두 끝나고 집에 갈 시간쯤에는 영지는 이미 내 상상 속에서 곤죽이 될 정도로 흠뻑 얻어터져 있었다.

막상 상상한 걸 실제로 할 시간이 다가오자 별안간 용기가 사라졌다. 별로 싸워본 적도 없을뿐더러 여자아이를 때린 적은 더더욱 없었다. 아무리 영지가 미워도 때려서까지 분을 풀고 싶지도 않았다. 잠시 고민하다가 복수를 포기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 나는 돌부리를 걷어차면서 괜한 심술을 부렸다. 이 모든 게 다 그 망할 놈의 사자상 때문이다. 그 사자상만 아니었다면 마음 편히 학교를 다녔을 텐데. 사자상과 엮인 다음부터는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나는 이제부터라도 사자상을 싹 잊어버리기로 결심했다. 누군가 사자상 얘기를 하면 귀를 막고, 나 또한 입도 뻥긋 안 할 거다. 지금은 좀 억울하고 슬퍼도 시간이 지나면, 며칠만 더 지나면 아무도 사자상 얘기를 안 할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이 어서 빨리 왔으면 좋겠다, 제발….

*소설가 나혁진은 현재 영화화 진행 중인 「브라더」(북퀘스트, 2013년)를 비롯해 모두 네 편의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조카가 태어난 걸 계기로 아동소설에도 관심이 생겨 '전학생은 명탐정'을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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