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엄마 생일 까먹으면 서운해"

"엄마도 엄마 생일 까먹으면 서운해"

베이비뉴스 2019-02-20 17:45:01 신고

“어쩜 얘들이… 올해는 둘 다 멀리 있으면서 전화 한 통이 없니, 바빴니?”

“응? 여기서 바쁠 게 뭐 있어. 안 바빴는데?”

“그런데 엄마 생일에 전화 한 통이 없어? 엄마는 이제나저제나 기다렸는데.”

“으응? 엄마…아, 그랬구나. 그랬네….”

에어컨이 틀어져 있는 데도 땀이 났다. 처음으로 엄마 생일을 정말 까맣게 잊었다. 달력을 보니 무려 5일이나 지났다. 우리 가족은 모두 겨울에 생일이 있는데, 더운 나라에 있다 보니 엄마 생일이 전혀 생각 나지 않았다. 베트남에 처음 왔을 때 올케가 여기는 날짜며 요일이며, 계절이며 시간 개념을 모르고 산다고 한 말이 실감 났다.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설을 앞두고 2월 1일 베트남에 오는 엄마는 마트에 왔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얼마나 서운했을까. 일터에 있는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랑 같은 반응이었다. 서울에 있는 남편에게 연락을 했더니, 역시 난감한 반응이다(핸드폰 알람아, 왜 올해는 울리지 않은 거니… 원망을 해봐야 소용이 없고). 나랑 통화하기 직전, 엄마와 통화했다는 올케는 나보다 더 했을 거다. 엄마는 별 말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딸인 나한테만 서운한 마음을 직접 말한 거였다. 올케가 말했다.

“어머니 너무 서운하셨겠어요. 어떻게 이런 일이… 어머니 오실 때 공항에 플래카드라도 걸어야겠어요.”

웃었지만, 속이 아팠다. 평소 잘하지 않던 전화를 그날만 세 번을 했다. 그만큼 미안했다. 그러고도 찔려서 시어머니에게도 안부 전화를 드렸다. 애들도 나도 건강하게 잘 있다고. 갑자기 그러고 싶었다. 부모님 마음은 다 같지 않을까 싶어서. 다음날, 공항에서 전화한 엄마.

“뭘 사갈까? 하도 뭘 사 오지 말라고 해서, 진짜로 아무것도 안 사간다.”

“응, 여기 다 있어. 그럼 엄마, 면세점에서 김치 좀 사 와.”

“그래. 고추장도 좀 살까?”

“작은 거… 아니 남으면 올케 주고 가면 되니까 아무거나 사와.”

예쁘게 사진 좀 찍어보라며 포즈를 잡는 엄마의 아이같은 모습. ⓒ최은경 예쁘게 사진 좀 찍어보라며 포즈를 잡는 엄마의 아이같은 모습. ⓒ최은경

새벽에 도착한 엄마는 오빠 집에서 3시간 남짓 자고 일어나 아침에 내가 사는 집으로 오셨다. 김치를 들고. 껄껄 웃으면서.

“야, 김치 맛 좀 보자. 세상에 내가 이렇게 비싼 김치는 처음 먹어본다야.”

“무슨 말이야?”

“아가씨, 왜 어머니에게 김치를 사 오라고 했어요? 면세점에서 파는 김치는 비싸요. 여기서 나도 샀는데….”

사실 올케에게 재촉하기가 뭐해서 엄마에게 부탁했던 거였는데 이게 웬일… 언니도 김치를 사고, 엄마도 산 거다. 그런데 세상에 김치 3개에 고추장이 4만  원이란다. 김치 풍년이다. 이걸 다 먹고 갈 수는 있으려나. 

“엄마, 비싸면 사 오지 말지!”

“딸이 먹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샀지. 얼마나 먹고 싶으면….”

“아니, 꼭 그런 건 아니었는데…. 내가 헛똑똑이었네. 아니 왜 그걸 몰랐지?”

엄마에게 미안한 일을 또 만들었다. 엄마에게 들었던 ‘헛똑똑이’라는 말이 내 입에서 나올 줄이야. 이뿐만이 아니었다. 엄마는 꼭 미숫가루를 직접 만드는데, 일하는 데 바빠서 콩가루만 만들어 가져왔단다. 그런데 내 것도 한 통이나 가져왔다. 응? 난 곧 한국으로 돌아가는데?

“그렇게 됐어. 엄마 생각에 하루라도 빨리 주고 싶어서… 일단 먹고 남으면 도로 가져가.”

“뭘 가져가. 그냥 오빠네 다 먹으라고 하지.”

“둘 다 먹어야지. 꼭 가져가라. 엄마가 어떤 정성으로 만든 건데….”

피곤하실 법도 한데, 주방에 들어서자마자 무나물에 미나리 무침, 도토리묵, 불고기까지 뚝딱 해내는 엄마. 아이들 배고프겠다며가 어서어서 먹으라는 엄마. "뭘 그렇게 하냐?"는 투덜거림이 무색하게 맛있게 먹는 우리. 

식사 후 엄마와 함께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난생처음 받아본다는 전신 마사지에 끙끙 소리를 내다, 쿨쿨 잠들어 버린 엄마. 콩커피 코코넛 커피를 먹어보더니 너무 맛있다며 한 컵 '원 샷 때린' 엄마. 그러더니 사진 좀 찍어 보란다. 콩커피에서 인증샷 찍는 사람들은 다 젊은 애들인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아이 같은 엄마와 나이 든 엄마의 모습을 동시에 체험하는 기분이다. 엄마가 이렇게 저렇게 사진을 찍어달라는 것도 놀랐지만, 이 말에 더 놀랐다.

“커피 두 개 다 찍어라.”

“왜?”

“하나는 외로워 보이잖아.”

“…”

"커피는 두 잔 다 찍어. 한 잔은 외로워 보이잖아"라던 우리 엄마. ⓒ최은경 "커피는 두 잔 다 찍어. 한 잔은 외로워 보이잖아"라던 우리 엄마. ⓒ최은경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신 게 벌써 5년 전이다. 회사 다니면서 애 키우고 살림 하면서 나 힘들고 외로운 것만 생각하기 바빴는데, 엄마도 그랬구나. 어릴 때는 엄마한테 미안한 거 하나 없다 생각했는데… 다 내가 잘해서 이만큼이라도 산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엄마라는 이름의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겠다' 싶을 때가 많다. 나이 들수록 부모님에게 점점 미안한 게 많아진다는 말이 맞나 보다.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펴냈습니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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