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퀸의 패션은 어떻게 사람들을 매혹시켰나

이데일리 2019.03.13 05:05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알렉산더 맥퀸(1969~2010)은 1990년대 중반 자신의 패션쇼에서 충격적인 의상을 선보인다. 모델의 엉덩이가 노출될 정도로 밑위 길이가 짧은 ‘범스터' 팬츠를 발표한 것이다. 과도한 노출로 논란이 일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상체를 길게 늘여서 보여주고 싶었다. 그냥 엉덩이를 보여주려던 게 아니라.” 이 과감한 패션으로 맥퀸은 세계 패션계에서 주목 받는 디자이너로 떠올랐다.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9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맥퀸의 삶은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다. 가난한 노동자계층에서 태어난 수줍음 많고 특이하게 생긴 소년이 괴기스러운 상상력을 발휘해 패션계의 슈퍼스타가 되지만 그 과정에서 순수함을 잃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그야말로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이었기 때문이다. 한 비평가는 그의 삶을 “그리스 비극의 암울함이 스며든 현대판 동화”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뿐일까. 저널리스트 출신의 저자는 맥퀸의 삶에 감춰진 진짜 이야기가 궁금했다. “살갗 아래에는 피가 흐른다”는 맥퀸의 말처럼 그의 살갗 아래에 있는 천재성의 원천, 그의 음울한 작품과 한층 더 음울했던 삶 사이에 존재하는 연결고리를 밝혀내는 평전을 쓰고자 했던 것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맥퀸의 가족·친구·연인 등 그와 가장 가까웠던 이들을 먼저 만났다. 맥퀸을 ‘천재 예술가' 같은 편향된 시선으로 보지 않고 중립적으로 바라보고자 한 것이다. 덕분에 맥퀸이 어린 시절 당한 성적 학대, 낭만과 갈등으로 점철된 연애사, 그의 컬렉션에 얽힌 뒷이야기 등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에피소드를 빼곡하게 담을 수 있었다.

맥퀸의 어두운 이면도 밝혀낸다. 그가 까다로운 성격과 폭력적인 성향을 갖고 있었고, 디자이너로서 성공한 뒤 인간관계에 소홀했으며, 마약에 심하게 중독돼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맥퀸의 어두운 이면이야말로 그의 예술세계와 깊은 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 받은 성적 학대를 계기로 강인한 여성을 강조한 옷을 만들었고, 죽음의 의미와 상징성을 독창적인 콘셉트로 재현했기 때문이다.

“내 패션쇼는 섹스와 마약, 로큰롤을 다룬다. 흥분을 자아내고 소름 돋게 만들려는 거다.” 1990년대 중반 맥퀸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맥퀸은 자신의 상처와 광기를 밖으로 끌어내 사람들을 매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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