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남방이 미래다]10명 중 7명 계좌 없어..'금융 불모지' 베트남에 청약통장·핀테크 전파

이데일리 2019.03.14 06:03

[하노이(베트남)=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6일 오전 8시 30분 베트남 수도 하노이 중심부에 있는 ‘랜드마크 72' 건물 25층에서 익숙한 한국말이 들렸다. 지난달 말 개점한 KB국민은행 하노이 지점의 창구 직원 8명이 은행 문 여는 시간에 맞춰 일제히 구호를 외친 것이다. 한국에선 창구 직원의 복장이 자율화됐지만 이들은 모두 국민은행 고유의 회색 유니폼을 맞춰 입었다.

권태두 국민은행 하노이지점장은 “지점 개점 날부터 매일 은행 영업을 시작하고 끝낼 때마다 전 직원이 단합을 위해 한국말로 인사말을 외치고 있다”면서 “‘새롭다'는 모토를 앞세워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 대출을 시작으로 디지털 금융, 지급 결제 등으로까지 차츰 사업 외연을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은행은 2011년 호찌민에 베트남 1호 지점을 개설한 데 이어 8년 만에 하노이에서 2호 지점 문을 열었다. 우리·신한은행 등 국내 다른 은행보다 진출이 다소 늦은 편이지만, 2016년 2호 지점 인가를 신청해 2년 반을 준비해 왔을 만큼 베트남 시장 진출에 공을 들였다.

베트남은 인도·싱가포르·태국·인도네시아·필리핀·캄보디아 등 한국 정부가 경제 협력을 강화하는 신남방 11개 국가 중 한국 기업의 진출이 가장 활발한 나라다. 중국, 미국에 이은 한국의 3위 교역국인 데다 인구 약 1억 명, 지난해 경제 성장률 6.6%(IMF 추정)에 달하는 내수 시장의 성장 가능성 때문이다. 특히 베트남 금융시장에는 해외 먹거리를 찾는 한국 금융회사가 대거 몰려들고 있다.

◇신한은행, 베트남 1위 외국계 은행으로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은 선발 주자다. 국민은행보다 먼저 베트남에 진출해 현지 법인까지 세웠다. 베트남에서 외국계 은행은 지점을 2개까지만 개설할 수 있지만, 법인으로 전환할 경우 보유 지점 수에 제한이 없다.

신한베트남은행은 한국 금융사 사이에서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지난 1993년 한국계 은행 중 처음으로 베트남에 사무소를 설치하고 24년 만인 지난 2017년부터 자산 기준 1위 외국계 은행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개인 신용 대출 등 소매 금융 비중이 전체 대출액의 절반가량으로 베트남 현지인을 대상으로 한 대출 총액은 이미 10억 달러를 넘어섰다. 신한베트남은행은 90만 명이 넘는 현지 고객을 확보해 지난해 1000억원에 육박하는 순이익을 냈다. 올해에는 베트남 최대 관광지인 다낭에 지점을 신설하는 등 현재 30개인 지점 수를 36개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2년 전 법인으로 전환한 우리베트남은행도 이달 말 문 여는 하남 지점을 포함해 현재 8개인 지점을 다낭 등으로 계속 늘릴 예정이다. 김승록 우리베트남은행 법인장은 “베트남은 은행 계좌를 보유한 사람이 10명 중 3명 정도에 불과하고 돈이 생기면 금을 사서 항아리에 보관하라는 말이 있을 만큼 금융 인프라가 잘 갖춰진 상태는 아니다”라면서도 “뒤집어 말하면 이는 그만큼 시장의 발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 금융사들은 국내에서 배운 금융 서비스 노하우를 앞세워 현지 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한국 정부의 주택도시기금(옛 국민주택기금) 모델을 베트남 공공 주택인 사회 주택 공급 정책에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과거 주택은행 시절부터 정부 기금을 위탁 운용했던 경험을 살려 청약 통장 가입자의 예금을 모아 공공 주택 사업 등에 쓰는 방안을 베트남 정부에 제안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베트남은행은 베트남의 고액 자산가를 상대로 투자 자문 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자문 및 성과 수수료를 받는 PB(프라이빗뱅킹) 영업을 시도할 계획이다. 김승록 법인장은 “한국은 금융 규제가 강하기 때문에 PB 영업 같은 다양한 사업을 하기 어렵다”면서 “베트남은 상대적으로 규제에서 자유로운 만큼 한국에서 할 수 없는 사업을 시도해 보고 이를 거꾸로 한국에 수출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은행들은 한국의 선진 ICT(정보통신기술)를 바탕으로 휴대전화를 사용한 모바일 금융 거래, 결제 서비스 등 핀테크(디지털 기술을 결합한 새로운 금융 서비스) 시장도 적극적으로 선점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신한베트남은행은 휴대전화 전자 지갑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모'와 비대면 대출 상품을 이미 출시했고, 한국의 카카오톡과 유사한 현지 메신저 서비스 업체인 ‘잘로'와도 빅데이터를 활용한 대출 상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다른 은행도 현지 핀테크 기업과의 업무 제휴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보험 등 다른 업권 진출도 활발…구체적 성과는 아직

은행뿐 아니라 보험·카드·자산운용·증권 등 다른 금융 업권의 현지 진출 사례도 줄 잇고 있다. 한화생명이 지난 2009년 현지 법인을 설립해 국내 생명보험사 중 최초로 베트남 영업을 시작했고, DB손해보험도 베트남 4위 손해보험사인 PTI의 최대 주주로서 현지 영업을 강화하고 있다. 5위 손해보험사인 PJICO 지분을 인수해 현지 보험 시장에 뛰어든 삼성화재와 다르게 현지 진출을 하지 않았던 삼성생명도 최근 베트남 1위 생명보험사인 바오비엣생명의 지분 투자를 추진 중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은행·보험사 등 국내 금융회사가 해외에 설립한 현지 법인과 지점 총 301개 중 26개(8.6%)가 베트남에 몰려 있다. 미국과 중국(각 40개)에는 못 미치지만, 일본(11개)의 두 배가 넘고 국제 금융 중심지인 홍콩(30개)에 육박하는 규모다.

다만 이 같은 한국 금융사의 베트남 내수시장 진출이 성과로 이어지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전망도 적지 않다. 당장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계 은행의 시장 점유율은 1% 안팎에 그치는 수준이다. 한 현지 금융권 관계자는 “어렵게 베트남 기업 지분을 인수했다가 베트남 직원들에게 왕따를 당해 사업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지분을 되파는 사례도 있다”면서 “현지 진출에 성공하려면 단순 경영권 확보가 목적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업 계획과 현지화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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