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르익은 술이 더 맛이 나듯 - '라스트 미션' 리뷰

IGN KOREA 2019.03.15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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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미션 리뷰

살아있는 전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신작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주연의 '라스트 미션'. 이 작품은 매우 각별하게 다가온 작품이다. 이 영화가 개봉한다는 홍보가 실렸을 때 어떤 특별한 감회가 느껴졌다. 이 이야기를 하려면 11년 전인 2008년으로 되돌아가 보아야 한다. 나이가 들어도 영화에 꾸준히 출연하면서 감독으로서도 왕성한 활동을 벌이던 클린트 이스트우드, 2004년 '밀리언 달러 베이비'로 두 번째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이후, 그는 영화 출연을 멈추었다. 물론 감독으로서는 작품은 계속 내놓았지만. 그러다 4년 만에 '그랜 토리노'라는 작품으로 다시 배우로서 복귀를 하였다. 2008년 그의 나이 78세, 영화인으로서 황혼기에 이미 접어들었고, 주인공을 연기하기에는 많이 나이가 들었었다. 그런 그가 감독 겸 주연으로 출연한 '그랜 토리노'는, 같은 해 '체인질링'으로 감독으로서만 이름을 올린 이후 원톱 주연으로 출연을 겸했던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었다. 그리고 영화는 대단한 완성도를 보여주었고, 배우로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혼신의 열연을 하였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그는 할리우드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1959년부터 시작된 '로하이드'라는 카우보이를 소재로 한 외화에서 그는 젊은 목동으로 등장하였고, 이 작품은 흑백 TV 시절 우리나라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이렇게 그는 젊고 훤칠한 미남 청년으로 우리나라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인기 TV 시리즈에 출연했지만 영화에서는 잘 풀리지 않았던 그는 이탈리아로 건너가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마카로니 웨스턴"인 '황야의 무법자'에 출연하였고, 이 영화는 세계적인 히트를 하였다. 이후 '석양의 무법자' '석양에 돌아오다' 등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영화에 연달아 출연하면서 이탈리아 서부극의 대스타로 군림하였다. 다시 할리우드로 돌아온 그는 거칠고 무자비한 해리 형사를 연기한 '더티 해리' 시리즈로 강인한 마초 스타로 부상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고, 1971년 첫 감독작인 스릴러 '어둠속에 벨이 울릴때'를 성공적으로 연출한 뒤, 감독 겸 배우로 동시에 활약하는 왕성한 행보를 보였다. 그런 와중에 가장 흥행력이 있는 배우를 선정하는 "머니 메이킹 스타 베스트 10" 목록에 무려 21번이나 선정되었고(역대 2위), 1위에 오른 횟수도 5번이나 된다(역대 공동 2위). 더구나 감독으로서 아카데미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으니 가히 할리우드의 최고 스타이자 거장 감독으로서 오래 군림한 전설이다.

2008년, 연기 활동 4년의 공백을 딛고 출연한 '그랜 토리노'. 이미 서부극의 영웅이자 경찰 액션물의 스타로서 강한 마초적 연기를 많이 보였던 그답게 78세의 고령이면서도 용맹하고 남자다운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기존 젊은 시절 작품과는 달리 영웅이 아닌 현실적인 인물이면서 자기의 실수에 뜨거운 눈물까지 흘리고, 무엇보다 악을 응징하고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결정적인 희생을 하는 비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치 평생 인기를 먹고 살아온 스타의 아름다운 퇴장을 보여주듯이. 당시 이 작품이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배우로서 은퇴작이 될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런데 이후 다시 4년 뒤에 다른 감독의 연출작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를 통해서 다시 주연 배우로 연기했다. 이후 무려 6년, 그가 90세를 바라보는 황혼의 길목에서 '그랜 토리노' 이후에 10년 만에 다시 감독 겸 원톱 주연으로 돌아왔다. 감독으로는 80세가 넘어서도 꾸준히 작품을 발표했던 그가 '라스트 미션'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주연 배우로 복귀한 것이고, 이 영화에서 그는 늙은 마약 운반책을 연기했다.

실화 영화라고 홍보된 부분도 있듯이, 실존 인물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서 만든 작품이다. 이 작품의 동기가 된 인물은 레오 샤프라는 인물로 원예가이자 훈장까지 받은 참전용사였고, 80대의 고령에 마약 운반책으로 활동하다가 90세에 체포된 인물이었다고 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레오 샤프처럼 원예에 깊은 취미를 가진 인물이자 고령의 나이에 마약 운반일을 하게 된 한국전쟁 참전용사 출신으로 설정된 주인공 얼 스톤을 연기하고 있다.

80대의 노인 얼 스톤은 꽃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고 그와 관련된 여러 가지 대외활동을 많이 하는 인물이다. 이렇게 취미활동에는 깊이 몰두하지만, 정작 가족을 돌보는 가장으로서의 책임은 등한시하고 살아온 무심한 남편이자 낙제점을 받은 아버지로 살아왔다. 딸의 결혼식조차 불참할 정도로 그는 오로지 자기 취미생활인 꽃과 관련된 사교모임 활동만 집중해왔다. 그러던 어느 날, 정원을 압류당해 오갈 데가 없어진 그는 결혼을 앞둔 손녀딸을 만나러 가지만 아내와 딸에게 호된 원망만 듣는다. 그런 그에게 한 청년이 접근하여 어떤 운반 관련 일을 제안한다. 호기심에 그 일에 응하게 되는데, 바로 마약을 운반하는 역할이었다. 얼은 자신의 트럭에 마약이 든 가방을 싣고 장거리를 운전하여 조직에게 가져다주는 일을 하면서 거액의 돈을 받게 된다. 이로 인하여 압류당한 정원도 되찾게 되고, 모처럼 남편과 아빠와 할아버지로서 가족들에게 선심을 베풀기도 하고 재정난으로 어려움을 겪던 참전용사 모임에 큰 도움을 주기도 한다. 전과도 없고, 사고도 없는 고령의 노인이라는 점에서 경찰의 의심을 전혀 받지 않는 그를 마약조직에서는 매우 유용하게 활용한다. 반면 마약 운반책을 잡고자 노력하는 베이츠 형사(브래들리 쿠퍼)는 조직의 끄나풀을 포섭하여 스파이로 심어두기까지 하지만 좀처럼 운반책에 대한 단서를 잡지 못한다. 얼은 매번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며 조직의 신임을 얻지만, 점차 많은 양의 마약을 운반하면서 위험한 임무가 되어간다.

꽃을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씨 좋은 노인처럼 보이는 얼 스톤, 하지만 가족에게는 경멸의 대상이다. 아내와 딸이 모두 그에게 등을 돌리고 사실상 의절하다시피 한 상태. 그나마 손녀딸만이 아직 할아버지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다. 삶을 즐길 줄 아는 멋쟁이였지만 가족을 등한시했던 남자, 그가 80세가 넘은 노인이 되어 시작하게 된 마약 운반책, 호기심으로 시작한 일이 점점 빠져나오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가고…. 그런 와중에 그는 모처럼 가족에게 돌아가서 잠시나마 함께할 기회를 갖게 된다.

90세를 앞둔 노감독이자 노배우가 펼쳐 보이는 인간 드라마다. 자신도 모르게 범죄 조직의 일원으로 빠져들어간 상황, 그렇게 해서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서 그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가족의 소중함을 느낀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가족만큼 소중한 것이 없다는 것을 절감하는 한 노인의 이야기이며, 후반부에 임무와 가족 사이에서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내용도 등장한다. 삶을 돌아볼 나이의 노인에게 가족의 의미가 무엇인지 절실히 되새겨주는 작품이다.

최근 할리우드의 왕년의 대스타이자 명감독으로서 활동한 두 거장의 배우 은퇴작이라고 느껴지는 영화가 연달아 개봉된 셈인데 바로 로버트 레드포드의 '미스터 스마일'과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이 작품 '라스트 미션'이다. 두 작품은 많은 공통점이 있다. 70-80년대의 할리우드 대스타가 80세가 넘어서 출연한 작품이며 배우로서 은퇴작이 될 수 있는 작품이고, 두 영화 모두 범죄행각을 벌이다 결국 체포되는 노인의 삶을 다루고 있다. 두 작품 모두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하여 만든 작품이기도 하며, 로버트 레드포드와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모두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인물이다. 두 영화 원제와는 무관한 별도의 개봉제를 임의로 붙인 것도 유사하다. '미스터 스마일'을 통해서 한때 최고의 미남스타였던 로버트 레드포드가 배우로서 작별을 고한 셈인데, 다시 70년대 이후 최고의 흥행배우였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6년 만에 주연 배우로 출연하며 어쩌면 배우로서 마지막 인사가 될 수 있는 역할을 하였다. 88세의 나이에 원톱 주인공으로 출연한 영화. 제작과 연출까지 겸한 이 원로 거장의 작품에 '스타 이즈 본'의 브래들리 쿠퍼가 함께 출연했는데, 두 사람은 '아메리칸 스나이퍼'라는 영화에서 감독과 주연배우로 함께 만난 적이 있다. '더 넌'의 주인공 수녀로 출연한 타이사 파미가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손녀딸로 출연했고, 실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친딸인 앨리슨 이스트우드가 영화 속에서도 딸로 출연하여 오래도록 아버지를 원망하다가 나중에 비로소 마음을 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밖에도 로렌스 피시번, 다이앤 위스트, 앤디 가르시아 등 베테랑 배우들이 전설의 노익장 선배의 작품에 함께 하고 있다.

88세의 나이에 제작, 감독, 주연 1인 3역을 무난히 해낸 클린트 이스트우드. 70년대 그의 출연 작품이 시작할 때 늘 등장했던 '말파소 프로덕션'이라는 문구가 이 영화에서도 여전히 등장할 때 뭔가 남다른 감회가 느껴졌다. 2019년에도 말파소 프로덕션 제작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 작품을 우리나라 극장에서 만나게 될 줄은…. 단지 전설의 원로 영화인의 작품이라는 의미 뿐만이 아니라 영화 자체도 제법 멋지게 만들었다. 비록 왕년의 터프한 모습 대신 구부정한 노인의 모습이었지만, 차분한 연출과 섬세한 연기, 다채로운 출연진이 펼치는 짜임새 있는 내용은 90세를 바라보는 거장의 무르익은 연출 솜씨와 경험이 곳곳에서 묻어 나오는 의미 있는 휴먼 드라마였다. 영웅적 모습도 반전도 없었지만 그 대신 따뜻한 가족애와 삶의 경륜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그렇다고 범죄자를 옹호하는 내용도 아니었고, 실존 인물의 자세히 알 수 없는 이야기에 대한 영화적 상상력도 그럴싸하게 가미된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주연배우로서 오랜만에 다시 등장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연기 자체가 매우 반가운 영화였는데, 그는 1971년에 처음 감독을 시작했지만 거장으로서 인정을 받은 시기는 60세가 넘은 1992년 '용서받지 못한 자'를 통해서였고, 이후에 배우보다 감독으로서 더욱 활발한 활동을 보이며 스타 배우에서 거장 감독으로 거듭났다. 이러한 그의 모습을 보면서 50대의 나이에 접어들면 벌써 한물간 감독 취급을 받거나 더 이상 연출작을 발표하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많은 감독들의 조기 퇴진이 매우 아쉽게 생각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보다 훨씬 나이가 아래인 이장호 감독, 배창호 감독, 장선우 감독 등 한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기 감독들이 흥행에서 삐끗하기 시작하면서 사실상 작품 활동을 일찍 중단하게 된 것이 우리나라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무르익은 술이 더 맛이 나듯 관록에서 우러나는 맛깔스러운 연출의 진가를 원로 감독에게서 기대하기에는 우리나라의 영화 현실은 너무나 비정하다. 그런 의미에서 60세 이후에 감독으로서 전성기를 맞이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최정상에 오른 스타 배우로서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는 노력을 계속 해온 영화계의 가상한 존재다. '라스트 미션'은 2018년 12월 미국 개봉 이후 전미 흥행 1억 달러를 돌파하는 양호한 흥행을 거두고 있다. 과연 이 영화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실제 "라스트 미션"이 될지, 90세를 앞둔 멈추지 않는 원로 감독의 최신작은 이렇게 오랜만에 몸소 연기까지 겸하는 혼신을 바친 휴먼 드라마의 모습으로 찾아왔다.


Kyuwoong Lee님은 IGN과 함께하는 필자입니다. 직설적이고 명쾌한 Kyuwoong Lee님의 더 많은 영화 감상은 블로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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