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없이 천 일 동안 살기

플레이보이 2019.03.15 16:37

이렇게 오랫동안 섹스를 끊는 사람이 있을까? 물론 자발적인 선택이다. 몇 년 전이라면 나도 같은 질문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 사람이 바로 나다.

내가 가벼운 성관계를 몇 년간 삼가하고 있다는 얘기를 했을 때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참 재밌다. 나를 이해해주기 바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의외로 이런 라이프스타일은 이유와는 무관하게 많은 사람에게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서야 알았다.

나는 지금까지 자그마치 천 일이나 섹스를 하지 않았다. 그전에는 떠올리지도 못했지만, 아마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성폭행이다.

<안 좋은 추억은 잊도록 하라: 용서와 힐링, 그리고 사랑을 이해하기까지의 여정(Let That Shit Go: A Journey to Forgiveness, Healing & Understanding Love)>이라는 책을 집필하면서 비로소 내가 겪었던 일이 얼마나 심각한 사건이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머리로는 그 상황을 이해하지도 못했는데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이 참 이상하다.

나는 십 대 청소년 시절, 사랑하던 남성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그 후로 수년간 내가 겪은 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했다. 그 일이 벌어진 순간, 그리고 그 이후 사건의 생생한 기억이 떠올랐던 모든 순간, 분명 잘못된 일이라 생각됐다. 하지만 수치심과 무의식적으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부정을 통해 ‘어떤 사건’이었는지 생각하려 들지도 않았다. 15년 가까이 그때 벌어진 일이 정상적이었다고 자신을 설득하며 살아왔다.

“머리로는 그 상황을 이해하지도 못했는데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이 참 이상하다.”

의미없는 관계들로 공허하고 정신적으로 힘들어진 상태의 나는 이토록 오래 섹스하지 않기로 한 내 결정에 성폭력 트라우마가 도화선이 되었다고 믿고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다른 남성이 날 만지는 것을 싫어했다. 나를 진심으로 위해주지 않는 남성에게 내 몸을 맡기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공허함을 느끼지 않고서는 섹스할 수 없었다. 그 누구보다 애정을 갈망했지만, 그것이 나에게 주어졌을 때는 불안감과 의구심에 휩싸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항상 안전하지 않다고 느꼈다.

나는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 성생활을 되찾아야만 했다. 백지의 상태로 돌아가 다시 시작해야만 했다.

여성성과 섹슈얼리티를 받아들이고 자신 있게 표출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에서 심적 갈등을 많이 겪었다. 내 몸에 대한 생각과 남성이 앞에 있을 때의 내 행동에 큰 간극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지하지도 못했지만 남성을 너무 두려워하고 있었다. 사람은 말을 하기도 전에 그 사람이 가진 기운으로 인상을 남기게 된다. 내 경우에는, 누군가를 만날 때 두려움이 엄습해 “시도할 생각도 하지 마”라는 기운을 상대방에게 내뿜었다. 이런 사람에게 반가움을 느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내가 경험한 것이 성폭행이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자, 떠오르는 온갖 감정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도 혼란스러웠다.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들이 응당 보이는 행동을 보이고 있는 것일까? 자꾸 머릿속에 떠오르는, 내 잘못이라는 죄책감을 없애는 방법은 없을까? 언젠가는 이 경험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결국 나와 비슷한 일을 당한 사람들에게는 매우 흔히 드는 생각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바로 이 글을 쓰는 목적이다. 물론 ‘천 일간 섹스 없이 살기’라는 문구가 좋은 기사의 제목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그 때문에 이 기사를 쓰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성적 학대를 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사실이 마음 아프게 한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 중 남성도 많으리라 생각한다. 당신은 이 대화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우리 여성들이 좀 더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게 도움줄 수 있는 핵심 인물인 것이다.

치유 과정에 대해 좀 더 배우기 위해 나는 성 교육자이자 트라우마 치료전문가인 지마네키아 이본을 만났다. 그녀에게 성폭력 트라우마가 어떤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지 또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전문적인 소견을 듣고 싶었다.

“한 사람이 이런 범죄행위를 누군가에게 저지르면 당사자의 나이와는 상관없이 그가 사는 세상과 삶이 변하게 된답니다. 그리고 당사자만이 그 기분이 어떤지, 그 범죄로 인한 트라우마와 슬픔 때문에 얼마나 외로울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죠.”라고 이본은 설명한다. “사건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가능하더라도 무척 힘든 일이 될 수 있어요.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누군가 ‘네 기분이 어떨지 알아’라고 하면 화도 날 수도 있고요. 왜냐하면 그 일은 각자에게 다른 경험이니까요.”

이본은 성폭행을 경험한 후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그것들에는 충격과 무감각,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혼란, 통제력 상실, 세상이 뒤집힌 듯한 느낌, 성폭행이 또 발생할 것에 대한 두려움, 그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본인이 다르게 행동해야 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으로 인한 죄책감과 자책, 타인으로부터의 고립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안전함을 느끼지 못해 생기는 상처받기 쉬운 마음 변화와 불신 등이 있다고 했다.

내 경우에는 내게 벌어진 일을 분명하게 이해하기까지 왜 그렇게 오래 걸렸는지가 가장 의문이었다. 이건 다른 피해자들도 느끼는 것 중 하나였다. 이본에 묻자 그녀는 “우리 몸은 스스로 치유하려고 하는 성질이 있어요. 그래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혹은 감정적으로 우리에게 좋지 않은 기억은 억누르는 경우가 있답니다.”라고 설명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 중 남성도 많으리라 생각한다. 이 대화에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우리 여성이 좀 더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핵심 인물들인 것이다.”

노스웨스턴대학교에서 실시한 연구에서도 “의식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숨겨진 기억들이 특정 사건을 회상하면서 느낄 감정적인 고통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해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결국에는 그런 억압되었던 기억들이 불안과 우울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나 해리 장애 등, 심리적으로 사람을 쇠약하게 만드는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라고 밝혀졌다.

성적 트라우마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한번에 해결되는 마법 같은 대응기제가 있으면 너무 좋겠지만, 이본은 치유과정이 모두 개인에게 달려있는 것이며 당사자만이 어떻게 극복해나가야 할지 알고 있다고 강조한다.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어요. 트라우마를 다루고 처리하는 방법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에요. 심리치료사와 상담을 하거나 자신의 몸과 교감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된답니다.”

온라인 강좌를 운영하고 있는 이본은 성폭행 피해자와 만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조언을 하기도 한다. “당신의 파트너와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세요. 그들은 누구보다 자신의 몸을 잘 알고 있어요. 인내심을 갖고 기다릴 줄 아는 것도 중요하답니다.” 나 또한 인내심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자책감이 많이 든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대할 때는 한없이 관대하게 치유의 손길을 내밀지만 나 자신에게는 그렇지 못한다. 이런 것들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트라우마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지우는 일도 절대 쉽지 않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겪은 그 경험이 당신의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당신에게 가장 맞는 방법으로 이를 치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성폭행이 만연하고 있다는 것은 무척 가슴 아픈 현실이지만,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과 맺는 결속력으로 인해 우리는 강해질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아픔과 고통을 완전히 알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혼자 해쳐나가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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