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 없는 작가주의 - '우상' 리뷰

타협 없는 작가주의 - '우상' 리뷰

IGN KOREA 2019-03-22 10:29:5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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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 리뷰

불친절한 전개로 둘러싸인 비극 드라마


저예산 독립영화로 상당한 호평을 받은 감독이 단숨에 유명 스타 배우들을 출연시킨 메이저 영화를 연출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옛날처럼 영화감독이 매년 1편 이상씩 연출을 하던 시대라면 쉽지 않은 경우지만, 요즘처럼 몇 년에 한 번씩 영화를 만드는 시대에는 이런 경우가 많다. 이럴 때 감독이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무엇일까?

똑같은 영화지만 '저예산 독립영화'와 '메이저 영화'는 완전히 다른 장르다. 독립영화 잘 만드는 감독이 꼭 메이저 영화에서 성공하지는 않는다. 작은 영화에서 블록버스터 대작으로 점프해서 성공한 대표적 케이스는 피터 잭슨, 샘 레이미 같은 인물이다. 하지만 대부분 자신의 주전장에서 많이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할 하틀리, 존 세일즈, 그리고 뉴요커의 대표인 우디 앨런 같은 인물이 블록버스터 대작을 만드는 것은 상상이 안된다.

'우상'은 '한공주'로 많은 호평을 받았던 이수진 감독이 만든 영화로 '한공주' 이후 극장에서 그의 영화가 걸리는 것은 4년 만이다. 저예산 영화로 천우희라는 배우를 발굴해낸 '한공주'와는 달리 이번에는 한석규, 설경구 같은 거물을 출연시키고 있다. '한공주'의 천우희도 다시 출연하는데 이미 그때와는 다른 위상이다. 메이저 영화인 셈이고, 제작비도 무려 100억 원 가까이 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정도 제작비라면 손익분기점 역시 높아져서 300만 명 정도 들어야 한다. 영화의 손익분기점 여부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당연히 감독이다.

이수진 감독, 그는 과연 '메이저 영화' 감독으로 준비가 되었던 것일까? 저예산 영화였음에도 무려 20만 명이나 관객이 들었던 '한공주'에 대한 호평을 업고 자신감을 가졌던 것일까? '우상'은 저예산 영화 연출 감독의 차기작으로는 너무 큰 영화였다.

예고편 등으로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은 아들을 억울하게 잃은 한 남자가 그 사건과 연관된 위선으로 가득 찬 야망 있는 정치인을 향해서 부모로서의 슬픔과 절규를 가지고 눈물겨운 진실규명을 해나가는 이야기다. 실제로 영화에는 그런 내용이 있다. 도의원이면서 도지사 보궐선거의 유력한 후보인 구명회(한석규)는 대중의 우상 같은 존재지만 아들이 크게 사고를 쳐서 난감한 상황이 된다. 아들은 군에서 휴가 나온 상황에서 구명회의 차를 몰고 달리다 사람을 치어 죽였고, 구명회의 아내는 그 사실을 은폐하려고 하지만 구명회는 자수를 권한다. 어차피 수사하면 밝혀질 수 있는 상황, 차라리 자수해서 감형을 받고 선거를 위한 타격도 최소화시키려는 생각이었다. 피해자는 지체장애인이었고, 피해자의 아버지 유중식(설경구)은 아들의 죽음을 접하고 오열한다. 피해자는 련화(천우희)라는 연변 출신 불법 체류자와 신혼여행 중이었다. 아들은 죽고, 련화는 실종되고, 시체유기를 하려고 했던 사건은 뺑소니 사고로 위장된다.

이 부분까지를 보면 진실을 살짝 은폐하려는 위선적 정치인과 억울한 사건을 당한 힘없는 서민의 처절한 투쟁으로 생각할 수 있다. 보통 이런 유형의 상업영화의 전형적 패턴이다. 하지만 감독이 '한공주'의 이수진이라면 조금 다른 방식일 것으로 예상이 되었다. '한공주'는 기승전결 방식으로 전개되던 친절한 영화는 아니었다. 은근 메타포가 깔린 영화였고, 사건의 직접적인 묘사보다는 암시나 은유 등의 전개가 많았다. 이번 '우상'역시 그런 방식인데, 그게 좀 심하다. 심지어 올해 가장 난해하고 불친절한 영화가 나왔다는 이야기가 벌써 들려올 정도다.

이야기의 전개는 중간 이후부터 예상과 다르게 진행된다. 사건의 진실을 목격했을 수 있는 인물, 피해자와 결혼한 련화라는 인물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교통사고 사건의 진실을 밝히려는 아버지와 적당히 은폐하려는 아버지, 이 두 아버지의 이야기에서 무게 중심이 련화쪽으로 많이 넘어가고 있다. 그리고 련화는 영화 속 대사를 빌리자면 '종자'가 다른 인간이었다. 이 의미는 련화를 꽤 남다른 캐릭터로 설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련화의 예측 불허의 행동에 의해서 영화의 전개와 방향도 상당히 예상과 다른 반전이 보여지고 있다. 어떻게 보면 쉬운 내용의 영화를 이것저것 복잡한 복선을 깔면서 어렵게 만든 느낌이다.

련화는 굉장히 비범한 인물이었다. 처음에는 피해자이자 보호받아야 할 임산부처럼 등장한 련화는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정말 '종자'가 다른 인물이라는 것이 보여진다. 그러면서 어쩌면 유중식이 했어야 할듯한 행동을 련화가 대신 하는 느낌이다. 그러면서 유중식과 구명회의 관계도 전혀 예상을 빗나가는 반전이 벌어지고 있다. 살짝 허무한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그걸 련화가 메꾸어주고 있다. 련화는 굉장히 센 캐릭터였던 것이다. 마치 련화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소설을 구명회를 주인공으로 살짝 각색해서 만든 영화같이 느껴질 정도로 련화는 출연 비중에 비해서 너무 강렬하고 중요한 역할을 부여받았다.

단순한 교통사고와 가해자, 피해자, 진실규명, 위선적 정치인의 말로…. 이렇게 전개될 줄 알았던 영화는 다른 복선이 깔리면서 전혀 의외의 전개가 되고 있는데 상영시간이 무려 144분이나 되었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훨씬 복잡해지고 불친절해진다. 이런 부분 때문에 오히려 집중해서 보게 하는 효과는 있지만 이 영화에는 결정적 문제가 있는데, 바로 '대사 처리'다. 대사가 잘 안 들리는 장면이 너무 많다. 한석규, 설경구 같은 발음 좋은 연기파 배우의 대사도 그렇지만 자주 튀어나오는 연변 말은 발음과 무관하게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가 너무 많다. 이 영화를 본 대부분의 관객들이 대사에 대한 지적을 한결같이 하고 있으니 감독이 이 부분을 너무 간과한 것 같다. 심지어 연변말은 '자막 처리'를 했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많다. 가뜩이나 불친절한 영화인데 대사까지 많이 안 들리니. 더구나 천우희의 연변말 연기는 너무 그럴싸할 정도다.

주목할 거리가 꽤 많은 영화이며 이수진 감독이 꽤 비범한 인물임은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런 유사 장르와는 확연히 다른 전개, 한석규, 설경구 등 베테랑 배우들의 무난한 연기, 감독이 발굴해냈던 배우 천우희의 또 다른 면모, 뭔가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장면, 대사 등. 하지만 문제는 이게 100억 원 가까이 들인 메이저 영화라는 것이다. 독립영화야 자기 자유의지로 마음껏 만들어도 되지만 제작비를 엄청나게 들인 메이저 영화는 어느 정도 관객과의 타협이 필요하다. 가령 1,000원짜리 제품을 주문받았는데 잘 만들기 위해서 최고 기술자를 불러와서 5,000원의 원가를 들여서 만들었다면 그건 잘못된 장사다. 영화감독이란 투자자에게 거액을 선불로 빌려서 상품을 만들어내는 역할이다. 그래서 메이저 영화는 어쩔 수 없는 상업성과 흥행을 고려해야 하는 운명이다. 그러면서 자기 색깔을 지우지 않는 것도 능력이다. 이런 역할을 꽤 잘 해낸 인물이 '곡성'의 나홍진 감독, 그리고 박찬욱 감독이다. 아무리 평단의 호평을 받더라도 손익분기점에 턱없이 부족한 결과가 나온다면 다시 투자 받기 어려운 게 우리나라 영화의 현실이다. 그런 것을 거부한다면 계속 작은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우상'을 보고 나서 마치 공부 잘하는 초등학생을 중고등학교 거치지 않고 바로 대학에 입학시킨 결과물처럼 보이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아직 저예산 영화와 100억짜리 메이저 영화의 경계를 확실히 판단하지 못한 감독의 이도 저도 아닌 결과물처럼 느껴진다. 물론 이 영화의 소수 매니아층은 분명 형성될 것 같다. 하지만 메이저 영화에서 역대급 불친절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은 사실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메타포가 많은 예술영화 흉내는 스스로 제작비를 조달하거나 그럼에도 흥행에 자신이 있을 때 시도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 작품을 은퇴작으로 생각한 게 아니라면. 이런 방식 자체가 문제라는 게 아니라 이런 형식의 영화에 거액의 제작비를 들인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다행히 흥행에 크게 성공하면 문제가 안되지만 한석규, 설경구, 천우희 이름만으로 관객을 끌어내는 것은 한계가 있다. 100억이라는 제작비는 난해한 영화의 실험용으로 쓰일만한 금액이 결코 아니다.

'우상'은 개봉 시기도 좋지 못하다. '캡틴 마블'을 피하려고 의도했는지 모르지만 지난 추석의 '명당' '협상' '안시성'의 동시 개봉 못지않게 이번에도 '돈' '악질경찰' '우상' 등 제작비를 많이 들인 한국 영화 세 편이 동시에 개봉했다. 지난 추석은 장기 연휴라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렇지도 않다. 이렇게 제살 깎아먹기 개봉에서 '우상'이 살아남기에는 아쉽게도 쉽지 않아 보인다. 영화가 난해하고 내용은 비극적이며 별로 친절하지 않다. 메이저 영화를 연출해서 성공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인데 '우상'은 그런 노력 자체가 많아 보이지 않는다. 다만 천우희라는 배우의 잠재력이 훨씬 더 많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 부분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좋은 배우들을 가져다 나름 잘 활용했지만 그걸 뒷받침해줄 수 있는 대중성이 결여되어 있다. 대중의 '우상'에 대한 허상, 즉 우상을 지우라는 메시지는 강하게 전달된 느낌이지만, 대사의 정확한 전달, 조금 더 친절함을 갖추었다면 훨씬 상품성이 높은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그 경계는 그다지 큰 게 아니고 이수진 감독은 그걸 극복해낼 능력은 충분히 있을 것 같다. 흥행 실패로 또 한 명의 좋은 감독이 묻히는 그런 결과를 낳은 영화 목록에 '우상'이 함께 오를 것 같아서 많이 아쉬운 생각이다. 이 예상이 빗나가면 정말 다행이지만.


Kyuwoong Lee님은 IGN과 함께하는 필자입니다. 직설적이고 명쾌한 Kyuwoong Lee님의 더 많은 영화 감상은 블로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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