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에서 팽목항에서… 생명의 시곗바늘을 돌리는 사람들

베이비뉴스 2019.04.16 16:18

지난 11일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에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자료사진 ⓒ베이비뉴스 지난 11일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에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자료사진 ⓒ베이비뉴스

스스로에게 내뱉은 자괴적인 물음은, 마주치는 삶의 고비마다 유효했다. 나 하나 건사하기 고달프던 때 만난, 나를 사람답게 해주는 연인은 존재가 호사였다. 하지만 결혼을 전제로 하지 않은 연애는 연인과 가족들로부터 진지하지 못한 듯 여겨졌다.

나는 ‘가부장적 정상가족’ 틀에서 벗어나고 싶었으나 부모에게 딸의 독립이란 결혼과 다름 아니었다. 지난한 설득이 오간 뒤에도 ‘결혼을 한다면 독립을 허한다’는 모순된 결론이기 일쑤였다.

세대주가 되기로 했다. 내가 원하던 오롯한 홀로서기는 아니더라도 연인과 함께하는 새로운 삶이라면 '그래, 결혼하면 되지' 싶었다. 맞벌이 야근 생활은 계속되었고, 제3의 존재를 고려하기엔 삶이 각박했다. 오래전부터 ‘아이를 낳아야 할까’란 물음에 대한 나의 답은 ‘아니’였다. 세상에 무심했고 우리 둘이면 충분했다.

가습기살균제와 삼성 반도체 피해자들의 소식으로 세상 한 켠이 무너지고 있었으나 어린아이가 없으며, 대기업 노동자가 아니므로,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저 애도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라 여겼다. 섣부른 동정이었다.

각자 몫만큼 살던 중 임신을 했다. 두 사람의 일로 자연스레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서로가 양육동반자로서 숙고해야 할, 삶의 다른 방향이었다.

그렇게 새로운 존재를 ‘봄봄’이라 부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월호 침몰 사건이 일어났다. 가라앉은 아이들이 나 같고, 울고 있는 엄마들도 나 같았다. 생존자 소식 없는 하루하루가 무기력과 공포로 교차되었다. 국가가 사안을 다루는 방식이 선명하지 않았고 극우집단은 '그만하면 됐지 뭘 더 바라냐'며 유가족과 마음 나누는 사람들의 기다림과 애도를 폄하하고 훼손했다. 나는 두려웠다.

정부의 실종자 수색 중단 발표 열흘 뒤 나는 꼬박 하루 진통을 겪으며 아이를 출산했다. 태어난 아이와 함께 봄을 맞이한 지 다섯 해. 촛불혁명으로 정권은 바뀌었으나 여전히 생명이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라는 걸 곳곳에서 목격한다.

기업의 과도한 이윤 추구와 이를 방관한 정부의 소홀로 오염된 먹거리가 유통되어 건강을 잃은 아이들, 성불평등한 교육현장에서 일어난 학교 성폭력을 고발했으나 반복되는 피해로 일상을 잃은 학생들, 사사로운 일로 치부되어 폭력에 무딘 공권력이 방치하는 아동폭력·가정폭력 피해자들, 같은 일을 하지만 여성이어서, 비혼 또는 기혼이어서, 비정규직이어서 차별받는 사람들, 국가로부터 낙태되었어야 할 존재로 취급받으며 온갖 시설로 내몰리는 장애인들.

◇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살리도록 힘써야 한다는 주문으로 나아가야 한다

모두 돌봄의 고리가 끊어진 곳곳마다 신음하는 사람들이며 어리고 약할수록 상처가 깊어지고 있다. 그 치유의 시작은 어디서부터 비롯되어야 할까.

지난 11일 헌법재판소는 낙태죄가 헌법에서 보장하는 여성의 존엄성을 침해한다고 판결하였다. 66년 동안 형법의 굴레로 인해 고통받은 여성들의 사회문화적 존엄성 회복을 위해 ‘여성도 인간’임을 외치고 싸워온 결과이다.

여성의 임신 중지는 모성파괴이므로 죄를 물어야 한다는 낡은 구도에서 벗어나, 그 복합적 결정을 내리는 당사자로서 자신과 태아의 생애주기를 고려하여 임신 시기와 기반을 결정할 권리가 있는 인격체로 거듭났다.

"임신·출산·육아는 여성의 삶에 근본적이고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문제이므로, 임신한 여성이 임신을 유지 또는 종결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스스로 선택한 인생관, 사회관을 바탕으로 자신이 처한 신체적·심리적·사회적·경제적 상황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한 결과를 반영하는 전인적(全人的) 결정이다."(낙태죄 2017헌바 127형법 제269조 제1항 위헌소헌 판결문 일부)

이제라도 여성 역시 돌보고 살려야 할 ‘사람’으로 인정했으니 다행이라 하기엔 판결이 보여주는 양상은 헌법 및 판결 주체가 그동안 얼마나 국가주의적이고 정상가족 중심적이었는지 반증한다. 여성이라서, 성소수자라서, 가난해서, 장애가 있어서, 어려서 차별하던 존재 위계를 부수고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살리도록 힘써야 한다는 주문으로 나아가야 한다.

벚꽃이 피면 괴로워 밤에만 나간다는 세월호 희생자 아버지는 아이의 마지막 모습이 맺힌 팽목항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장례를 치른 뒤 복원된 아이의 핸드폰 사진에서 배가 침몰하고도 하루를 살아 있었던 아이들 사진에 무너졌다. 국가가 구조하지 않아 생명을 잃은 인재가 명백하나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있으니 진실을 밝혀달라, 희생자들은 오늘도 외치고 있다.

사라진 아이들을 살리고 살아 있는 아이들을 돌보기 위하여 멈춰진 생명의 시곗바늘을 안간힘으로 돌리는 사람들이 지금, 여기, 살아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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