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일의 공익광고 제작사 힐링브러쉬

국내 유일의 공익광고 제작사 힐링브러쉬

노블레스 2019-04-19 00:00:00 신고

지난가을, 서울 어린이대공원. ‘플라스틱 데이(PLASTIC DAY)’라고 쓴 붉은 옥외 광고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한데 오후 1시쯤 이 단어의 ‘P’자가 사라지더니, 오후 2시엔 ‘I’마저 사라진다. 오후 4시가 되자 ‘C’까지 사라져 완전히 새로운 단어 ‘LAST DAY’가 완성된다. 글자 속을 빨간 비비탄으로 채우고 ‘P’, ‘I’, ‘C’ 자에만 구멍을 뚫어 그것이 흘러내리게 해 ‘PLASTIC DAY’가 ‘PLASTIC DAY’가 되게 한 것. 플라스틱을 많이 쓰다 보면 최후의 날이 곧 올 거라고 말하는 이 광고는 어린이대공원을 찾은 많은 이에게 환경에 대한 ‘아주 강력한’ 경각심을 심어주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광고를 만든 이는 힐링브러쉬 대표 김요셉이다. 어쩌면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2012년 서울 지하철 안국역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일본 정부의 사죄를 촉구하는 대형 광고를 설치해 화제가 된 인물이기 때문. 당시 대학에서 광고를 전공하고 광고 회사를 차려 2년 동안 운영하던 그는 돌연 회사를 정리했다. 그리고 얼마 후 우연히 라디오에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인터뷰를 듣고 사안의 심각성을 느껴 자비로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하지만 광고는 오래가지 못했다. 예산과 홍보 부족으로 ‘한 달 광고’로 끝나고 말았다. 당시 느낀 것? “포털 사이트 메인에도 나오고, 좋은 일 한다고 응원도 많이 받았어요. 하지만 실제로 도움까지 연결되진 않았죠. 그때 광고의 힘을 몸소 느꼈고, 홍보의 중요성을 알았어요. 그러다 보니 욕심이 생기더군요. 이 일을 제대로 해봐야겠다는.”




2018년 그린피스와 함께 전개한 지구온난화 예방 캠페인.

이듬해 그가 설립한 회사가 ‘힐링브러쉬(Healing Brush)다. ‘누군가를 치유하기 위해 붓칠을 한다’는 뜻을 지닌 이 회사는 아동 학대, 지구온난화, 교통안전, 노인문제 등 사회문제를 널리 알리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광고만 제작한다. 국내 유일의 공익광고 전문 제작사라고 할까. 주요 클라이언트는 공공 기관과 국제기구, 비영리 단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환경보호 단체 그린피스와 기후변화에 대한 광고를 만들었는가 하면 환경부와 보건복지부, 국제아동인권센터,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등과 다수의 광고를 제작했다.




1 2015년 광화문광장에서 공개한 아동 학대 방지 캠페인 ‘You Can Stop It’.
2 2018년 환경부와 함께 제작한 미세 플라스틱 오염 예방 캠페인.

그중 가장 화제가 된 것은 ‘You Can Stop It’(2015)이라는 이름의 아동 학대 방지 캠페인이다. 광화문광장에서 아동 학대 가정의 모습을 빔 프로젝터로 투사해 행인의 그림자가 학대 부모를 막는 영웅처럼 보이게 연출한 것으로, 스크린에 그림자가 생기면 슈퍼히어로를 상징하는 마크와 신고 번호 그리고 “신고 전화로 아이들의 영웅이 되어주세요”라는 메시지가 뜬다. 이 캠페인은 국내 아동 학대 예방 캠페인 사상 유례없는 성공을 거뒀다. 캠페인에 참여한 이들의 사진이 SNS에서 급속도로 퍼져 4주 만에 40만 건 이상 SNS 공유를 기록했고, 정확히 세계 102개 매체에서 자발적으로 이를 기사화했다. 묵묵하기로 유명한 아티스트 뱅크시까지 이 사진을 캡처해 자신의 트위터에 공유하며 “Brilliant”라고 언급했다. 뱅크시가 리트윗한 유일한 광고인 셈.
이런 기발한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오는 걸까? “문제를 겪는 이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거죠. 예를 들어, 아동 학대 문제에 대한 캠페인 의뢰가 들어오면 아이 입장이 되어봐요. 아이는 힘이 없잖아요. 아빠나 엄마가 때리면 누가 그걸 막아주면 좋겠다고 기도하죠. 그게 이루어지려면 실제로 누가 와서 도와야 하고요. ‘You Can Stop It’에선 지나가는 행인이 때리는 어른과 맞는 아이 사이에 서야 그림이 완성되게 했어요. 아이에겐 그 행인이 수호천사고, 행인 역시 자신이 아니면 막을 수 없다는 걸 경험하게 했죠.”
광고 얘기로는 이렇게 온정이 넘치지만, 사실 사업까지 이렇게 훈훈할 리 없다. 2011년 대한민국 공익광고제 ‘문화부장관상’부터 2013년 독일 iF 디자인 어워드 ‘위너’ 수상, 2014년 뉴욕 크레스타 국제 광고제 ‘파이널리스트’ 선정, 2016년 대한민국 광고대상 ‘금상’ 수상 등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보고 찾는 이가 많지만, 공익적 광고만 제작한다는 원칙 때문에 굴러 들어오는 수익(?)을 마다한 경우도 적지 않다. 더욱이 공익광고는 상업광고보다 시장 규모도 작고, 제작비도 적다. 상업광고계에 비하면 인재도 부족하다. 심지어 그는 오래전 상업광고 만드는 회사를 차린 적도 있다. 당연히 지금보다 수익이 높았다.
“사실 이 일을 시작할 때 수익은 생각하지 않았어요. 후회는 없지만 성과가 나지 않을 땐 솔직히 힘들죠. 예로, 큰돈 들여 광고매체를 개발했는데 매달 수익이 마이너스일 땐 위기감마저 느껴요.” 그럼에도 계속 회사를 이끌어나가는 이유는? “차별성 때문이죠. 우리같이 규모가 작은 회사는 공익광고의 정통성을 가질 수 있다고 봐요. 광고 질의 차별성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죠. 큰 회사 직원은 1년에 공익광고를 하나만 만들지만, 우린 1년에 10개를 만들거든요. 이렇게 공익광고만 집중적으로 생각하니 질 차이는 분명 있을 거라고 봐요.”
그럼 이런 물음은 어떨까? “공익광고는 왜 죄다 촌스러운 느낌을 주는가?” 덧붙여 ‘젠더 이슈를 건드렸다’거나 ‘세금이 아깝다’ 등 공익광고에 늘 따라붙는 대표적 불만에 대한 질문 말이다. “실은 저 역시 공익광고가 다 옳다고 보진 않아요. 광고를 만든 뒤 비판이 있을 것 같다면 제작자가 미리 그것을 예상해야겠지만, 예상치 못한 비판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봐요. 그렇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공익광고가 촌스럽다고요?(웃음) 그건 동의할 수 없어요. 요샌 공익광고도 트렌드를 따라요. B급 광고도 많죠. 하지만 힐링브러쉬가 추구하는 건 조금 달라요. 설치미술 형태의 공익광고죠. 우리만의 트렌드를 만들고 싶어요.” 공익광고를 만들며 느끼는 보람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아동 학대 광고를 하고 나서, 아동 학대 신고율이 조금이나마 높아졌다는 얘길 들을 때가 가장 보람 있어요. 나의 어떤 행동이 다른 이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죠.”
2019년 3월 중순, 힐링브러쉬는 국내 한 대기업과 해외 CSR 캠페인을 제작 중이다. 이와 별개로 ‘아동 학대 예방’과 ‘졸음 운전 예방’ 공익광고도 제작하며, 곧 배우 이병헌과 함께 만든 ‘아동 주거 빈곤’에 대한 공익광고도 세상에 공개한다. “예전엔 제가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고, 어려운 이를 돕고 있다고 착각했죠.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아요. 그저 일을 꾸준히 하는 사람이고 싶죠. 이 업을 계속 이어가 장인이 되고 싶어요. 그때가 되면 비로소 인생이 참 보람차다고 느낄 것 같아요.”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사진 윤주상(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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