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레나 파라다 김, 독일에 중심에서 한국을 외치다

헬레나 파라다 김, 독일에 중심에서 한국을 외치다

바자 2019-05-16 15:00:33 신고

가장 오래된 예술 매체인 회화는 급변하는 시대적 맥락에도 흔들림 없이 현대미술 속 가장 큰 영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평면의 캔버스에 작가의 직접적인 붓질로 그려지는 색채와 이미지들은 독창성을 갖고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에게 무엇인가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가 전해지면서 공감의 즐거움은 그 풍미를 더한다. 시대를 아우르던 모든 화가들이 자신만의 색깔로 많은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존재했고 숭고한 행위를 지속해왔다.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젊은 화가 헬레나 파라다 김 역시 그들의 연장선에 서서 독일 미술 애호가들에게 섬세한 표현으로 시각을 만족시키는 동시에 스토리텔러의 역할을 하며 세대를 이어가고 있다. 그녀가 캔버스에 펼쳐놓는 이야기들은 독일과 한국의 시대가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조금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독일 쾰른에서 태어난 헬레나 파라다 김은 스페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라며 세 나라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습득했고, 화가가 된 지금은 어머니의 나라인 한국의 정서와 이미지를 캔버스에 가득 채우고 있다. 남루한 차림의 뻥튀기장수 할머니가 등장하기도 하고 이국적 외모를 가진 누군가가 한국의 전통의상인 한복을 입고 등장하기도 한다. 독일 페인터가 그린 동양적 분위기에 대한 궁금증뿐만 아니라 사실적이면서도 인위적이지 않은 세련된 올드마스터 화풍에 감탄을 자아내고 그림 속 인물들이 가진 스토리와 사실에 독일인들은 주목하고 있다. 최근 독일 중부에 위치한 글라드백 시립미술관에서의 개인전으로 또 한 번 독일 미술계의 주목을 받은 그를 베를린의 아틀리에에서 만났다.

‘Two Sisters’, 2009, Oil on linen, 170×250cm, Courtesy the artist and CHOI&LAGER Gallery Cologne/Seoul.

얼마 전 글라드백 미술관에서의 전시를 성황리에 마쳤다. 젊은 작가로서 명성 높은 기관에서 개인전을 가진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이곳과의 인연에 대해서 듣고 싶다.

근래에 있었던 전시 중 가장 큰 규모의 전시였다. 특히 독일에서 가졌던 가장 큰 개인전이라는 것이 의미 있고 매우 영광스럽다. 이 전시가 나에겐 하나의 도약의 계기가 된 것 같다. 약 10년 전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 전체 학생들이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인 ‘룬드강(Rundgang)’에서 글라드백 미술관장인 게르트 베겔(Gerd Weggel)을 만났다. 당시 피터 도이그(Peter Doig) 교수 반에 재학 중이었던 나의 그림을 인상 깊게 본 게르트는 언젠가 함께 전시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었다. 졸업 후 초이앤라거 갤러리를 통해 작품과 전시 활동이 활발해졌고 초이앤라거 갤러리의 최진희 대표와 인연이 있던 그가 갤러리와 함께 가진 여러 차례 회동 끝에 신뢰와 믿음을 바탕으로 2019년 첫 전시를 결정해주었다.

전시의 제목인 ‘물, 초상, 그림자’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번 전시에서는 그 동안 작업한 모든 테마를 한자리에 선보였다. 파독 간호사로 독일에 정착한 나의 어머니와 이모가 당시 한국에서 가져온 한복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했던 한복 초상화 작업, 그리고 지난해 서울 초이앤라거 갤러리에서 처음 선보인 식물 시리즈 작업을 전반적으로 아우르는 제목에 대해 고민했다. 꽃과 나뭇잎들을 그리며 살아 있는 모든 자연에 대한 의미를 진지하게 되새겼고 그중 가장 중요한 상징인 ‘물’을 떠올렸다. 또, 나의 한복 초상화 시리즈에서 삭제되거나 흐릿하게 표현된 그들의 얼굴보다는 내면의 ‘초상’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두 테마와 함께 그림 속에 전개되는 그림자 같은 그들의 사적인 이야기들을 상징하고자 ‘물, 초상, 그림자’의 세 단어에 함축적으로 담아내게 되었다.

 

 

The Sun and The Moon’, 2018, Oil on linen, 200×300cm.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신작 ‘태양과 달’에서 그림 속 뻥튀기장수 할머니와 대조되는 화려한 뒷배경이 매우 인상적이다. 구도적으로 의도한 것인가?

그리면서도 스스로 흥미로웠던 작품이다. 2015년 한국 여행 중 부산에 들르게 되었는데 마을 시장에서 한 할머니의 모습이 눈길을 끌어 사진에 담아온 적이 있었다. 일명 ‘몸빼바지’ 바지라 불리는 강렬한 색의 꽃무늬 바지를 입은 왜소한 할머니가 자신의 몸보다 몇 배 큰 수레에 담긴 뻥튀기 봉지들을 팔기 위해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장면이었다. 한 눈에도 녹록지 않은 삶을 지내온 것이 그대로 느껴졌다. 눈에 선한 그 모습을 내 캔버스의 안에서는 가장 중요한 존재로 세우고 싶었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아이러니하게 뒷배경에는 옛 왕좌의 뒤쪽을 장식해 위엄을 더하던 화려한 병풍을 그려 넣었다. 우연히 본 그 할머니의 평안과 장수를 바라는 내 개인의 감정이 일월오봉도 속의 태양과 달, 그리고 다섯 개의 봉우리들의 상징적 요소와 일치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대조적인 구도가 연출된 것 같다.

 

Nurses and Cranes’, 2017, Oil on linen, 180×250cm.

당신의 한복 초상화에는 낱낱의 인물도 있지만 작가 자신도 내포된 것 같다.

초기의 한복 그림들은 엄마와 같은 이민 1세대의 스토리를 많이 담았다. 꼭 한복뿐만 아니라 파독 간호사들의 간호사 유니폼, 평상복을 그리며 그들이 만끽하는 타지에서의 자유, 그럼에도 한편에 자리 잡은 공허한 향수의 감정을 의복 안에 표현하고 싶었다. 그동안의 한국적 모티프의 그림 속 인물들은 타인이었지만 결국 나의 한국적인 정체성의 격렬한 집합체와도 같았다. 개인의 성향이 잔뜩 담긴 한복을 그리며 그 인물에 집중하고 각기 다른 그들 내면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면서 파독 이민자 2세대가 되는 나의 정체성 또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09년 작품인 ‘Two Sisters’가 그 고민을 뚜렷하게 말해준다. 당시 알고 지내던 자매의 모습을 그렸는데 언니는 캐주얼한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소파에 편하게 앉아 있고 동생은 신부가 입을 법한 색동저고리의 한복을 입고 그 앞에 서 있는 구조이다. 이국적 외모를 가졌지만 어쩐지 이방인이 되는 듯한 그들 자매와 나 자신의 오묘한 혼란이 그대로 담겨 있다.

최근에는 식물 시리즈를 많이 선보이고 있다. 당신의 관심사가 이동하고 있는 결과물인가?

2017년 서울 초이앤라거 갤러리에서의 전시를 준비하면서 그 영역의 범위를 조금 넓히고자 고민하던 것이 식물에 닿은 것이다. 개인의 삶의 영역과 뗄 수 없는 자연을 떠올리면서 인간이 가진 외면과 내면이 살아 있는 식물과도 매우 닮아 있음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 기존의 한복 초상화에서 인물과 의복을 공간 속에서 깊이감 있게 표현했던 것과는 달리 식물 시리즈에서는 거의 묘사와 가깝게 작은 디테일을 모두 그려넣어 잎사귀 하나와 꽃잎 하나에도 몰입하도록 표현하고 싶었다. 어떻게 보면 관심사가 이동한다기보다 연관성을 유지하면서도 확장된다고 보고 싶다.

 

 

앞으로 보여주고자 구상하고 있는 소재나 테마가 있다면?

기존에 계속 해왔던 한복 초상화 시리즈에 조금 더 집중하고 싶다. 주변 인물들을 더 자세히 들여다 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그저 재미있다. 한국적 모티프와 인물에 대한 호기심이 계속되는 한 나를 설레게 하는 범위 안에서 자유롭게 생각하고 움직이고 싶다.

화가로서 당신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영원한 숙제인 회화의 본질에 대한 도전과 흐름을 유연하게 하여 사각의 캔버스 안에서 더 많은 공감과 감동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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