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아닌 나를 위해

남이 아닌 나를 위해

바자 2019-05-16 16:00:37 신고

NANA-LAND,
BEING MYSELF

지난 2월, 밀라노 패션위크 취재 중 찾은 MM6의 2019 F/W 프레젠테이션 현장. 브랜드의 상징인 화이트 컬러 패브릭으로 천장부터 바닥까지 한 치의 틈도 없이 도배되어 있었다. 그 위에 수줍게 웃으면서 서 있는 모델들 역시 하얀색 옷과 슈즈, 액세서리로 치장하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특히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그들이 전부 백발의 노인이었기 때문. 백인부터 아시안, 흑인까지 인종 또한 다양했다. 주름진 얼굴과 은빛 머리 그리고 살짝 나온 배마저도 정겹게 느껴졌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은 왠지 모르게 평온하고도 따스한 기운을 주고 있었다. 어떤 위대한 미모도 나이를 먹고 나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지 않나. 외모야말로 아주 순간적인 삶의 복장일 뿐이니 말이다.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몇 해 전 시작되어 최근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자기 몸 긍정주의(Body Positive) 운동은 몸무게나 체형에 상관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몸 자체를 사랑하는 것. 피부색이 남과 다르거나, 살이 좀 쪘거나, 나이가 들었거나, 키가 작거나, 장애가 있더라도 부끄러워하지 말고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것은 스스로 자존감을 찾고, 궁극의 행복을 자기 안에서 찾는 삶의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가장 중요하고 나만의 기준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을 말하는 ‘나나랜드’. 트렌드 연구자이자 서울대 교수 김난도가 2019년 10대 소비 트렌드로 꼽기도 했다. 나를 아끼고 사랑함으로써 아름다움의 관습과 편견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타인의 다양성도 존중하는 현상이다. 이기주의에 함몰되지 않고 긍정적이고 지속적으로 ‘나다움’을 찾아가는 이 나나랜더들이 패션계에게도 침투하기 시작했다.

우선 런웨이 위의 풍경부터 달라지고 있다. 패션계의 미의 기준에 변화가 생긴 것. 최근 많은 쇼에는 플러스 사이즈 모델들이 포함되었다. 지난해 5백5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포브스>가 선정한 ‘가장 돈을 많이 번 모델’이자 <바자>를 비롯해 <보그> <맥심> 같은 매거진에서 최초의 플러스 사이즈 커버 모델을 차지한 애슐리 그레이엄이 대표적. 175cm의 키에 XXL 사이즈로 슈퍼모델의 반열에 오르며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그녀는 패션쇼의 프런트 로는 물론 각종 패션 행사에 게스트로 초대되는 셀러브리티다. 최근 나이키의 광고 모델로도 등장하며 대세임을 입증했다. 마이클 코어스와 콤 데 가르송 또한 빅 사이즈를 출시하기 시작했으며 H&M도 일부 라인에서 플러스 사이즈를 선보이고 있다. NPD 그룹의 애널리스트 마샬 코언은 “그동안 플러스 사이즈는 금기어였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틈새 시장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미국의 패션 블로거 가비 그레그는 2년 전 비키니를 입은 자신의 모습을 인스타그램에 올려 화제가 되며 미국 NBC 인기 토크쇼 <투데이 쇼>에 출연하기도 했다. “스타일에 있어 사이즈는 중요하지 않다. 여성들은 몸무게와 상관없이 아름다울 수 있고, 자신이 아름답다고 느낄 자격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현재 칼럼니스트와 플러스 사이즈 브랜드 ‘Premme’의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

점차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있는 흑인 모델들도 마찬가지. 거리의 홈리스에서 일약 슈퍼스타가 된 슬릭 우즈, 대학교 홈커밍 파티에서 찍힌 인스타그램 사진으로 모델 데뷔까지 한 에스티 로더의 글로벌 뷰티 모델이자 2019 F/W 시즌 프라다 쇼의 오프닝을 장식한 아녹 야이가 눈에 띈다. 아프리카 수단 출신으로 2017년 생 로랑을 시작으로 수많은 브랜드의 러브콜을 받으며 샤넬 쿠튀르의 피날레에 선 아두트 아케치, 그리고 1백만 명이 넘는 팔로어를 보유한 디지털 슈퍼모델 슈두(@shudu.gram) 역시 흑인이다. 백반증으로 학창 시절 자살까지 기도했던 위니 할로는 타이라 뱅크스에 의해 발탁되어 <아메리카 넥스트 톱 모델>에 출연하며 맹활약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루이 비통 패션쇼를 마지막으로 종적을 감춘 모델 나탈리 웨슬링은 트랜스젠더임을 고백하며 성전환 수술을 했다. 브라질 북부 어촌 아키라즈에서 성장하며 항상 자신이 소녀라고 느꼈다는 벨린티나 삼파리오 역시 성전환을 하며 패션지의 커버를 장식한 톱 모델로 성장했다.

이렇게 패션계는 인종, 나이, 성별, 장애를 뛰어넘었다. 실용성과 건강미, 편안함이 화두로 옷에 몸을 맞추는 시대와는 이별을 고하는 중이다. 남들이 봤을 때 예쁘냐가 아니라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고 맞는지가 중요해졌다. 2018년 영화 <미녀와 야수>에서 여주인공 벨을 연기한 엠마 왓슨은 드레스를 입을 때 코르셋을 거부했다. 진취적인 여성 캐릭터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여성 억압을 상징해온 코르셋에서 벗어난 탈코르셋, 프리 더 니플(Free the Nipple) 즉 노브라 운동도 유행이다. 켄들 제너도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고 유두를 노출하는 당당한 스트리트 룩으로 화제를 몰고 다닌다. 이와 더불어 와이어리스 브래지어나 브라렛 판매도 폭발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추세라고. 이에 발맞춰 패션계는 지난 몇 시즌간 젠더 뉴트럴(Gender Neutral) 키워드로 다양한 움직임이 있어왔다. 그것도 패션 트렌드를 좌지우지하는 스타 디자이너들에 의해 끊임없이 말이다.

나 스스로를 잃어버리도록 관습과 속도에 저항하라.”

알레산드레 미켈레는 구찌를 통해 성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지속적으로 던지고 있다. 이번 시즌 역시 1970년대 섹스 클럽 룩에서 영감을 가져와 남성과 여성이 혼재된 컬렉션을 선보였다. 발렌시아가의 뎀나 바잘리아는 남성의 전유물인 수트를 여성을 위한 디자인으로 탈바꿈시켰다. 셔츠와 타이를 제외시키고 조깅 수트처럼 편안하면서도 우아한 실루엣의 ‘네오 테일러링’이라는 신개념 수트가 바로 그것. 화제의 인물 에디 슬리먼 역시 “셀린의 새로운 남성복은 남자 모델이 입고 있긴 하지만 모두 유니섹스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새로운 셀린 우먼을 위한 옷이죠!”라며 셀린의 방향성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이번 남성복 컬렉션에서 그 어느 때보다 여성 모델들이 런웨이 많이 오른 것 역시 패션계에서 성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J.W 앤더슨의 여성과 남성 컬렉션에서 공통분모를 많이 찾을 수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파격적인 스타일로 패션 아이콘으로 주목받고 있는 제이든 스미스의 말이 떠오른다. “평소 남성복과 여성복을 나눠서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그걸 두려워하는 사람과 편안해하는 사람이 보일 뿐.” 그의 말처럼 더 이상 타인의 시선에 강요받을 필요는 없다. 그저 내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오롯이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가면 된다. 나만의 세상, 나나랜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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