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처럼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될 수 있을까

엄마처럼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될 수 있을까

베이비뉴스 2019-05-17 15:15:30 신고

아이를 키우며 엄마가 떠오르는 순간들이 있다. 깊은 밤 아이가 걷어찬 이불을 잠결에 덮어주다가, 열 감기 앓는 아이의 체온을 잰다고 자다가 몇 번씩 눈이 번쩍 떠질 때, 그리고 잘 익은 고기를 후후 불어 아이 입에 넣어주면서, 생선살을 발라 아이 숟가락에 놓아주면서 문득 엄마 생각을 한다. ‘엄마도 나를 이렇게 키웠을까.’

‘내 새끼 입에 밥 들어가는 걸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는 말을 아이가 뭘 먹을 때마다 느낀다. 원체 입맛이라곤 없는 아이를 키우고 있어서 아이가 무언가 오물오물 먹는 모습이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다. 화가 치솟고 속이 상했다가가도 아이가 식판을 비워내면 마음이 스르르 풀린다. 오늘도 아이 입에 수박 한 조각을 넣어주다가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때때로 엄마 생각이 난다고 해서 내가 엄마에게 잘하는 딸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엄마와 멀리 떨어져 산다는 이유로 방문도 뜸할뿐더러 어쩌다 만나도 툴툴거리는 딸일 뿐이다. 그래도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엄마가 나를, 우리 형제를 키우며 느꼈던 감정과 고단함을 조금이나마 헤아리게 된 건 분명한 사실이다.

엄마가 되어 보니 엄마 마음을 알겠다는 말을 그렇게 때때로 실감한다. 엄마로 살면서 조금은 내 마음 그릇이 커진 것 같다. 이 또한 아이가 준 선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아이에게 무언가 먹일 때 엄마를 자주 떠올리는 건 머릿속에 콱 박힌 사진 한 장 때문이다. 사진 속 주인공은 오래전 엄마와 나. 초등학교 1학년 첫 소풍날로 기억한다. 엄마와 나는 나란히 돗자리에 앉아 있다. 사진 속에서 나는 어딘가를 빤히 쳐다보는데 엄마는 나에게 빨대가 꽂힌 요구르트를 먹여주고 있다.

엄마는 나를 향해 애틋한 시선을 보내지만 어린 나는 엄마가 그러거나 말거나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 있다. 어린 내가 무슨 생각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사진 속 엄마의 눈빛이 무얼 말하는지는 이제 알 것 같다. 사실 사진 속 주인공을 지금의 나와 내 아이로 바꿔 봐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외모도 당연히 닮았지만 내 엄마가 그랬듯 나도 아이에게 똑같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진은 나에게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철없던 꼬맹이가 이제는 엄마가 되어 자식 키운다고 아등바등하고 있으니 신기하다. 그때 엄마 말 좀 잘 들을걸 때늦은 후회도 밀려온다. 사진 속 젊은 엄마의 지나가버린 세월이 야속하기도 하고 다시는 엄마와 그런 시간을 나눌 수 없겠지, 하는 아쉬움도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우리의 외모와 환경은 달라졌지만 서로를 대하는 마음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나도 아이 키우는 엄마라지만 엄마 앞에서는 곧장 아이가 되기 때문이다. 엄마 말 안 듣고 제멋대로 고집 부리는 어린아이.

물론 엄마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런 나를 넉넉히 품어주신다. 내 아이까지도. 덕분에 일곱 살 아이는 할머니 앞에서 더없는 응석받이로 변신하다. 엄마가 아이를 대하는 걸 보면서 엄마가 나를 어떻게 키웠을까 짐작해본다.

그림책 <다시 그곳에> 속 한 장면 그림책 「다시 그곳에」 속 한 장면 ⓒ재능교육
그림책 <다시 그곳에> 속 한 장면 그림책 「다시 그곳에」 속 한 장면 ⓒ재능교육

그림책 「다시 그곳에」(나탈리아 체르니셰바, 재능교육, 2015년)는 한 여성이 버스에 몸을 실으며 시작된다. 도시를 떠나온 여성이 버스에서 내린 곳은 허허벌판. 저 멀리 작은 집 한 채만이 눈에 들어온다. 여성이 찾아온 곳은 엄마가 사는 집. 도시에 살던 자식이 시골에 사는 엄마를 뵈러 온 이야기라서 특별한 재밋거리는 아니다.

그런데 이 여성이 엄마 집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느낌이 확 달라진다. 글 없는 그림책인데 주인공들의 섬세한 감정을 표현한 그림이 매우 인상적이기 때문이다.

여성이 처음 엄마 집에 도착했을 때는 몸집이 어마어마하게 크다. 상대적으로 엄마는 아주 작다. 그런데 어느 순간 여성이 아주 작은 아이로 줄어든다. 엄마 앞에서는 누구라도, 제아무리 나이를 먹었다 한들 아이가 되는 마법이 책에서도 고스란히 펼쳐지는 것이다. 마지막 장, 엄마에게 기대어 안긴 아이와 엄마의 모습이 몹시 평화롭다. 한마디 말도 없지만 엄마와 자식 사이의 사랑을 진하게 확인할 수 있는 그림책이다.

그리고 이제 나에게는 과제가 남았다. 아이가 일곱 살이니 앞으로도 한참 더 해야 하는 과제인 셈이다. 내 엄마처럼, 그림책 속 엄마처럼 아이를 향해 아낌없이 사랑을 베푸는 엄마가 되어줘야지 하는 것이다. 이래저래 육아는 갈 길이 멀다. 이로써 오늘도 엄마의 다짐이 하나 더 생겼다.

*칼럼니스트 한희숙은 좋은 그림책을 아이가 알아봐 주지 못할 때 발을 동동 구르는 아기엄마이다. 수년간 편집자로 남의 글만 만지다가 운 좋게 자기 글을 쓰게 된 아기엄마이기도 하다. 되짚어 육아일기 쓰기 딱 좋은 나이, 일곱 살 장난꾸러기를 키우고 있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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