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전 연재] #3 다정한 학대 : 선의가 모두 옳은 것은 아니다.

[출간 전 연재] #3 다정한 학대 : 선의가 모두 옳은 것은 아니다.

비전비엔피 2019-05-19 07:00:14 신고

온화하고 다정한 사람이란
누군가의 몸과 마음의 아픔을 이해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이다

아들 앞에서 아들의 유치원 친구에게 장난감을 준다. 집을 방문한 손님에게 과자를 준다. 그 모습을 본 아들이 생글생글 웃으며 환한 얼굴로 손을 내민다. 우리 부부에게서 뭔가를 받은 사람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따라 하는 행동이다.
아이는 친구들에게 장난감이나 과자를 주고 아까워하거나 없어졌다고 화내지 않고, 상대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함께 기뻐한다. 우리 부부도 그런 아들을 보고 있으면 덩달아 기쁘고, 신이 나고, 저절로 미소가 피어난다.
 
다른 이에게 뭔가를 해주려면 온화함과 다정함이 있어야 한다. 어른이 되면 의외로 그런 게 쉽지 않다. 암 선고를 받고 나서 뼈저리게 깨달았다. 암 말기라는 사실이 차츰 주변에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이 온화하고 다정한 손내밀어 주었다.
무엇보다 안정이 중요해. 최고의 의료진에게 최선의 치료를 받아 하루라도 더 오래 살았으면 해.”
부모님과 친척, 가족들의 온화함과 다정함은 이렇다. 치료가 아무리 가혹해도, 남은 날을 침대에만 누워 있어야 해도, ‘어쨌든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사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걱정해주는 마음은 나도 잘 안다. 하지만 조금 더 삶을 연명하기 위해 침대에서 천장이나 바라보며 누워 지내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이 치료를 받아보면 어떨까?”
“이 약이 잘 듣는다던대.”
“굉장히 잘하는 기공(氣功) 선생님이 있는데 꼭 만나봤으면 해.”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스틸컷 / 본문과 관계없음

지인과 친구들의 온화하고 다정한 손이 선의라는 것을 알면서도 힘들고 혼란스러웠다. 그런 상황에서 암에 대한 글을 블로그에 올리자 온화하고 다정한 손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내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아냈는지 영적 요법, 대체 의료, 종교를 권유하거나 육체와 정신이 정화되는 장소를 알려주는 문자와 전화까지 걸려왔다. 인터넷 세계는 극단으로 치닫기도 한다. 선의의 충고를 무시하는 순간 건방진 환자로 낙인찍혀 나쁜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내가 죽고 나서 아내와 아들이 치료를 받았으면 살았을지도 모르는데라는 언어폭력을 당할지도 모른다.
 
결국 매일 수없이 걸려오는 수상한 권유 전화와 문자를 견디지 못하고 10년 넘게 사용해온 전화를 해지했다. 프리랜서 사진작가의 전화를 해지하게 만들다니, 서글프다.
          

그러나 이러한 온화함과 다정함은 거의 학대에 가깝다.
내가 내린 결론은 근거 없는 충고는 ‘다정한 학대’라는 것이다.

 
암 진단을 받은 사람 대부분은 현실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피하거나 가족이나 의료진에게 소리를 지르고, 자기혐오에 빠지고, 과거를 책망하며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부정한다.

내가 조사한 결과, 암 환자가 우울증이나 적응장애에 한꺼번에 걸릴 확률은 건강한 사람의 두 배, 자살률은 스물네 배였다. 병원 내 자살자 중 절반이 암 환자라고 한다. 암이란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좀먹는 병이다. 게다가 암 환자는 고령자가 많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온화하고 다정한 손이 내민 기적의 물을 곧바로 받아 마실지도 모른다.
 
온화한 모습으로 다정한 말을 건네지만, 결과적으로 고통을 준다면 잔혹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요컨대 ‘다정한 학대’다.


전립선암에 걸린 사람의 5년 후 생존율은 97.5퍼센트.
췌장암에 걸린 사람의 5년 후 생존율은 7.9퍼센트.
암도 여러 종류가 있어서 동일한 치료법으로 똑같은 효과가 나진 않는다. “저는 이 치료법으로 완치되었습니다라든가 몇 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지만 10년 동안 살아남았습니다라는 문자를 많이 받았지만, ‘다행입니다하는 생각만 들었다. 기적적으로 성공한 사례도 있지만, 유족들이 떠올리기조차 힘든 끔찍하게 실패한 사례도 수없이 많다. 다만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좋은 예만 보여주어 무작정 희망을 품게 하는 것은 위험하다. 희망이 없음을 알게 된 후에는 더 큰 절망만이 기다린다. 일본인 두 명 중 한 명은 암을 앓고, 세 명 중 한 명은 암으로 사망한다. 살다 보면 누구나 암에 걸린 사람과 만났거나 앞으로 만날 것이다. 그럴 때면 부디 다정한 학대를 휘두르지 말았으면 한다. 인스턴트 라면에 물을 붓듯 쉽게 충고하지 않았으면 한다.
 
물론 의료체계가 완벽하진 않다. 암 치료는 사실상 의사, 간호사라면 받지 않을 치료를 환자에게 권유한다. 그렇다고 의사들이 민간요법으로 환자를 돌보는 건 아니다. 적어도 의료인은 전문가로서 위험 부담을 안고 환자를 치료한다. 그러나 안이하게 충고하는 사람들은 과연 자신이 내뱉은 말에 책임질 수 있을까? 의료인보다 암에 대한 공부를 내가 더 많이 했을까?
만약 획기적인 치료법을 알고 있다면 남에게 충고하지 말고 자신이 암에 걸렸을 때 그 방법으로 치료해보세요. 부디 무책임한 충고는 하지 맙시다.” 이 메시지를 웹페이지에 올리자, 무책임한 충고로 고통받는 환자와 가족, 유족들에게서 많은 응원 메시지가 도착했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스틸컷

아들이 다정한 학대를 이해하기에는 좀 이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지금부터 조금씩 알려주고 싶다. 온화하고 다정한 사람이란 다른 이의 몸과 마음의 고통을 이해하는 사람이라고. 남의 고통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무책임한 충고 따위는 하지 않는다.
 
아들에게 알려주리라.
상대를 이해할 수 없다면 먼저 상상해보렴.”
상대가 기뻐하지 않는 일을 기쁘지?’라고 단정해선 안 돼
네가 좋아하는 과자를 상대방은 싫어할 수도 있거든.”

내가 생각하는 온화하고 다정한 사람은 상대를 배려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도움을 준다. 자신의 온화함과 다정함을 통째로 던지기만 한다고 그런 사람이 될 수는 없다.


출간 전 연재 3회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이후부터는, 책과 관련된
더 다양한 이야기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출간 전 연재 이벤트

- 참여방법 : 5월 26일까지 [내가 어릴 적 그리던 아버지가 되어] 포스트 시리즈 중 1개 이상의 포스트를 블로그, 페이스북 및 기타 SNS에 공유해주신 후 댓글로 URL과 도서에 대한 기대평을 남겨주세요.

- 당첨 선물 : 댓글 응원 많이 해주신 5분께 출간 후, 해당 도서 1권을 드립니다.
- 이벤트 발표 : 5월 28일 (화) 오후 5시

Copyright ⓒ 비전비엔피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