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우의 오버타임] 프로야구 감독으로 산다는 것은?

[정재우의 오버타임] 프로야구 감독으로 산다는 것은?

스포츠동아 2019-05-20 05:30:00 신고

성적 책임지고 사퇴한 김기태 감독.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KIA 타이거즈를 이끌던 김기태 감독(50)이 끝내 사퇴했다. 2년 전 한국시리즈 우승을 일굴 당시 돋보였던 뚝심과 소신이 성적부진의 굴레 앞에서 남김없이 소진된 결과다. 4월 중순부터 KIA의 부진이 거듭되면서 일각에서 제기됐던 ‘시나리오’대로다. 극도로 타인에게 폐를 끼치기 싫어하는 그의 성격이 또 한 차례의 물러남을 불러온 것이다.

김 감독의 퇴진을 야기한 궁극적 원인은 성적부진이다. 그 과정에서 일부 팬들은 그의 선수기용과 경기운영에 대해 거센 비난을 가했다. 또 지난 시즌을 마친 직후에는 베테랑 투수 임창용(43)을 자유계약선수로 방출하자 집단행동에 나선 이들도 있다. 어쩌면 김 감독의 사퇴는 임창용과 결별한 그 순간부터 잉태됐는지 모른다.

프로야구 감독에게는 막대한 권한이 주어진다. 1군과 2군을 합쳐 60명 넘는 선수들과 20명 넘는 코치들이 감독의 결정을 주시한다. 40명 남짓한 프런트 역시 감독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한다. 프로야구단 안에서 감독은 무소불위의 권력자다. 그러나 권한에 상응하는 책임 또한 막중하다. 기대에 차지 않는 성적뿐 아니라 최근 들어선 구성원과의 마찰 또는 갈등 때문에 지휘봉을 내려놓거나 심지어 빼앗기는 감독조차 나오고 있다. 때로는 ‘파리 목숨’이 프로야구 감독의 숙명이다.

144게임이나 되는 대장정이 프로야구 감독에게는 트라우마에 가까운 직업병을 유발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물론 이기는 일에 익숙한 팀의 사령탑에게는 그 강도가 훨씬 약하다. 반대로 올해의 KIA처럼 패배가 익숙한 하위권 팀의 사령탑은 매일매일 강박증에 시달린다. 시즌 개막과 동시에 ‘불면의 밤’이 이어진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이 있다. 선수단 규모도 작고, 경기수도 적은 타 종목의 사령탑에 비하면 프로야구 사령탑이 감내해야 할 우여곡절은 훨씬 많다. 더욱이 날이 갈수록 선수인권의 가치와 중요성이 커지는 세태에 비춰보면 때로는 묵언수행자가 되어야 한다. 자신은 인격상실의 악플에 심신상실의 고통을 느끼면서도 팀과 구성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때로는 수많은 팬과 취재진의 시선을 애써 외면한다.

‘내가 하기 싫으면 남들도 하기 싫다’는 말의 의미를 잘 알기에 남들이 싫어하는 일을 스스로 떠맡는 사람이 종종 있다. ‘팬들이 싫어하는’, 그러나 한편으로는 ‘팬들이 알 수 없는’ 일을 프로야구 감독은 종종 해야 한다. 다른 종목보다 보는 눈이 훨씬 많기에 큰 위험부담이 뒤따르고, 일일이 납득시킬 수 없기에 속이 타들어갈 때도 있다.

선수 한 명을 쓰고 안 쓰고는 그 중 가장 어려운 결정일지 모른다. 더욱이 거대한 팬덤을 보유한 스타급 선수라면 어느 감독도 결코 팬들의 반발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프로야구 감독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지, 떠나가는 어느 감독의 무거운 발걸음을 보자니 새삼 이 같은 의문이 절실해진다.

정재우 기자 jace@donga.com

Copyright ⓒ 스포츠동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