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확대경] 세종대왕도 통곡할 여야의 막말 올림픽

[생생확대경] 세종대왕도 통곡할 여야의 막말 올림픽

이데일리 2019-05-20 06:00:01 신고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정치는 말이다. 정치행위 하나 하나가 말에서 시작해 말로 끝난다. 말 한마디로 불리한 상황을 일거에 역전시킨다. 때로는 말 한마디로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장인의 좌익활동 비판에 “그러면 마누라를 버리라는 말이냐”며 정면 돌파했다. 성공이었다. 정반대의 사례는 수없이 많다. 2004년 17대 총선 당시 여당의 압승 구도를 뒤흔든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의 ‘노인폄하’ 발언이 대표적이다. 2006년 당시 최연희 한나라당 사무총장이 여기자 성추행 논란 이후 “술에 취해 음식점 주인으로 착각했다”는 변명은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킨 대표적 막말이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말들이 거칠어지고 있다. 여야가 따로 없다. 특히 5월에 접어들면서 정치권의 막말은 유난스럽다. 구체적인 표현을 하나하나 거론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정치뉴스를 도배하고 있다. 일종의 막말 퍼레이드다. 매일매일 새로운 막말들이 쏟아진다. “정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다. 입만 열면 늘 민생경제를 외치던 여야 정치권이 ‘막말올림픽 개최’에 합의한 듯하다. 단순 실언도 없지 않겠지만 거의 대부분은 고도의 정치적 계산에 근거한 의도적 막말이라는 의심을 지우기 힘들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 따로 없다. 내가 하는 독설은 정당한 비판이다. 반면 남이 하는 독설을 ‘저질 막말’이다. △달창(달빛창녀단) △소시오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 △도둑놈 △한센병. 최근 정치권의 막말은 해도 너무 한다. 입에 담기조차 거북한 표현들이 대다수다. 저격 대상은 대통령에서부터 여야 지도부, 일반 국민을 가리지 않는다. 막말의 후유증은 크다. 여야가 민생은 팽겨진 채 죽고살기식 정치공방에 나선다.

더구나 막말은 또다시 막말을 부른다. 이른바 ‘인지도 깡패’가 되기 위한 여야 의원들의 눈물겨운 노력이다. 내년 총선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국회의원에게 ‘인지도’만큼 중요한 건 없다. 대선후보나 여야 지도부가 아닌 이상 내 이름을 알리는 건 매우 어렵다. 막말의 가성비는 크다. “할 말은 꼭 하는 보수(진보)의 전사”, “속이 뻥 뚫린다”며 지지층의 환호를 이끌어낸다. 적어도 사나흘 동안 정치뉴스 메인을 장식한다. 파문이 커지더라도 충분히 남는 장사다. 막말에 대한 비난은 잠시 뿐이다. 내년 총선에서 달콤한 열매로 되돌아올 것이라는 그동안의 학습효과 탓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지난 1995년 중국 베이징에서 “한국에서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고 평가한 바 있다. 무려 24년 전의 일이다.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었다. ‘정치는 4류’라는 평가를 부정할 수 있을까? 어쩌면 4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여야의 막말은 과거보다 훨씬 심해졌다. 스마트폰의 광범위한 보급과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의 영향으로 막말 확산은 5G 수준이다.

막말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여야도 일 년에 딱 한 번은 정신을 차린다. 바로 한글날이다. 매년 10월 9일만 되면 품격있는 정치언어를 쓰겠다고 다짐한다. 올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믿을 수 없다. 총선이 다가올수록 여야의 막말올림픽은 더 격화될 것이다. 민생경제는 뒷전으로 밀린다.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다. 아름다운 한글을 만들었던 세종대왕이 지하에서 통곡할 일이다. 막말을 막는 방법은 단 하나다. 국민이 내년 총선에서 막말 의원을 심판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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