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두사의 뗏목, 세월호 그리고 다뉴브 강의 비극

스트레이트뉴스 2019.06.12 23:20

루브르 박물관을 가면 열람관으로 들어가는 출입구가 데농, 실리 그리고 리셀리외 3곳이 있다. 데농관 1층 77번 실에 들어가면 ‘메두사의 뗏목’이라는 대형 유화가 한 면을 차지하고 있다. 길이 7.16 미터, 높이 4.91미터의 이 거대한 유화는 테오도르 제리코라는 화가가 1819년에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은 인간의 사랑과 기쁨, 열정, 고통, 잔인함, 죽음 들이 미술의 세계로 들어오기 시작한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초기 작품이다. 제리코를 비롯한 낭만주의 화가들은 인간의 주관적인 미적 감수성과 근대적 삶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낭만주의는 이성 보다는 감각적 현상에서 인간 본성의 진실을 찾고, 표현하고자 하는 미술 사조였다.     
중세의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지배체제와 권력구조, 정치체제를 타파한 계몽주의의 성과 이면에, 혁명의 과정에서 드러난 인간의 취약한 면, 잔혹함과 피폐함을 목한 낭만주의자 화가들은 혁명 과정에서 나타난 불안전한 인간과 사회를 개인의 심성에서 재생하려하였다.

메두사의 뗏목은 인간의 잔혹한 현실을 승화시킨 대표적인 낭만주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1816년에 실제로 일어났던 메두사라는 함선 침몰 사건을 소재로 한 그림이다.

나폴레옹이 유럽을 제패할 때, 프랑스는 영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해서 1815년 파리 조약에 따라서 식민지 세네갈을 반환 받게 되었다. 메두사 호는 바로 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세네갈로 떠나는 4척으로 구성된 함대의 모함이다. 메두사 호는 다른 3척의 호위함을 이끌고 1816년 6월 17일 세네갈 총독 부부, 군 장교, 과학자, 병사, 탐험가, 예술가, 상인을 비롯해 400여명 실고 세네갈로 향했다. 함장은 쇼마레 남작인데, 대령으로 있다가 불명예 퇴역한 후 20년 이상 배를 타지도 않았던 사람이었다. 그는 식민지에서의 새로운 부를 축적하고 꿈을 위해 관리를 매수해서 선장이 되었다.

꿈에 부푼 함장은 다른 세 함정을 앞질러 먼저 가려고 서두르다 항로로부터 160키로나 이탈해버렸다. 함장의 미숙함과 무능함은 곧 파멸로 이어졌다. 메두사는 7월 2일 아프리카 북부 모리타니아 해변에서 160키로 떨어진 아귄 만에서 암초에 걸려서 좌초하게 되었다. 이 배에 타고 있던 4백여 명 중 고위 관료를 비롯해 223명은 6개의 구명정에 몸을 실었지 만, 나머지 1백 49명의 해군병사와 일반인들은 배의 잔해로 만든 뗏목에 몸을 부지하게 되었다. 구명정들은 이 뗏목에 밧줄을 걸어 육지로 예인하려하였으나 성난 파도에 휩쓸리면서 모두가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자 쇼마레 함장과 장교들은 밧줄을 끊어 버리고 뗏목을 포기해버렸다. 희망은 곧 죽음의 절망으로 변해버렸다. 이 뗏목은 15일 동안 망망대해를 떠돌면서 지옥의 공간이 되어버렸다. 굶주림과 갈증, 질병, 정신착란이 일어나고, 동료가 동료를 물속으로 떨어뜨려 죽이고, 나중에 동료의 썩은 시신을 먹는 일까지 벌어졌다.

42평 너비의 이 공간은 삶과 죽음이 넘나드는 경계선이었으며, 인간의 선과 도덕, 윤리가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메두사의 뗏목은 15일 만에 극적으로 구조되었으며, 당시 생존자는 단지 10명 뿐 이었다.

테오도르 제리코, 메두사의 뗏목, 1819-루브르 박물관

 

1817년 11월 22일 제리코는 이탈리아 여행에서 돌아와 생존한 두 사람의 끔찍한 증언록을 접하게 되고, 이 사건을 미술로 표현하고 싶었다. 1818년 그는 두 증인을 찾아가 증언을 듣고, 마침내 1919년 이 사건을 그림으로 성화시켰다. 그 그림의 제목이 바로 “메두사의 뗏목(Radeau de Méduse)”이다. 이 그림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계몽사상, 근대 국가의 합법성과 제도화, 이상적 자유주의를 실현한다는 숭고한 사명이 얼마나 허구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오직 감정과 본능만이 작동하는 생존의 공간에서 절망, 죽음, 고뇌, 희망, 환희가 함께 그려져 있다.  

뗏목의 좌측 전경에는 시체들이 널려 있고, 한 노인이 시체를 안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습니다. 중앙에는 절망으로 스러져 가는 군상과 한쪽 발만 뗏목에 걸려있고, 몸은 바다에 떠밀려가는 시체가 허무하게 널려져 있다. 뗏목 우편에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무리들이 거친 파도위에서 서로를 지탱하며 붉은 천과 흰 천을 흔들어 대고 있다. 그리고 저 멀리 구름사이로 햇볕이 솟아나고, 수평선 저 멀리 작은 점처럼 구조선이 보인다. 뗏목에 힘없이 걸려있는 돛은 곧 날아갈 듯 펄럭이며 검은 구름에 갇혀 있지만 구원의 빛을 향한 열망은 점점 더 커지는 듯하다. 

제리코는 저 멀리 밝아지는 하늘의 모습과 더불어 현실의 죽음의 세계를 그려갔다. 이성적 근대 국가와 권력의 위선, 그리고 윤리와 도덕성, 진리를 잃어버린 인간의 실존이 얼마나 비참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제리코는 이 반인륜적 사건 속에서도 인간 존재에 대한 긍정과 희망을 잃어버리지 않고자 이 사건을 화폭에 담았다.

 

11일(현지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침몰한 허블레아니호가 대형 크레인 '아담 클레인'에 의해 끌어올려져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11일(현지시간) 다뉴브강에서 침몰한 허블레아니호가 수면 위로 드러낸 모습

우리사회는 세월호의 비극을 잊기도 전에 다뉴브 강의 비극을 또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세월호 참사는 선박회사, 정부, 언론, 종교기관 그리고 선장에 이르기까지 우리사회의 치부와 비리, 부조리가 총합된 결과였으며, 304명의 무고한 학생과 시민들이 마치 속죄양처럼 희생되었다. 책임지지 않는 자들의 허언이었던 ‘가만히 있으라’는 말만 믿고 기다리다 희생될 수밖에 없던 상황은 우리사회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다뉴브 강의 비극은 여전히 진행 중에 있다. 12일 현재 침몰했던 허블레아니호가 인양되었고, 22명 사망이 사망하고 4명이 실종되어 있는 상황이다. 아직 사고 원인과 정황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허블레아니호를 침몰시킨 바이킹 시긴호 선장은 부주의로 인한 다중 선박사망 사고 혐의만 적용되어 구속 상태에 있다. 이 사고 뒤편에 숨겨져 있는 또 어떤 이야기들이 드러날지 두려움마저 든다. 여행사의 부조리, 안전 불감증, 거대 선박회사의 탐욕 등등이 무고한 여행객들을 비극으로 이끌어 가지나 안았을까 하는 걱정이다.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재앙은 우연히 발생하지 않는다. 그 속에는 이성과 합리성을 가장한 인간의 탐욕과 기득권자들의 과욕이 자리 잡고 있다. 제리코가 그린 메두사의 뗏목 뒤에 숨은 참사의 정치학은 세월호의 비극과 다뉴브 강의 비극 가운데에도 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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