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심장, 이스라엘에서.

바자 2019.07.12 16:00

JERUSALEM
SYNDROME

황금동 모스크(Dome of the Rock).

중동. 사막의 심장. 텔아비브(Tel Aviv)의 거리를 걸을 때, 나는 마치 유럽의 유명한 대도시를 걷는 느낌이었다. 텔아비브에는 젊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젊은이들은 카페, 레스토랑, 공원, 가로수길 그리고 몇 마일에 걸쳐 펼쳐져 있는 해변 어디에나 많았다. 누가 여행자인지 그리고 누가 원래 살았던 거주민인지 구별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누 재즈 음악과 젊은이들의 대화 소리를 들으니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고 편안한 느낌이 든다. 그들은 인생을 즐기고 역사를 기념하며 기쁨을 추구한다. 그러다 나는 이곳의 가장 큰 즐거움은 음식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곳에 ‘무난’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텔아비브에서 음식을 즐기지 못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텔아비브의 요리는 전 세계의 맛과 향을 포용하면서 그들 도시의 독특한 문화적 다양성을 그대로 반영한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나는 조지아와 스페인, 멕시코, 일본 요리를 맛볼 수 있었다. 아, 그리고 호박파이가 곁들여 나오는 최고의 태국 카레도 빼놓을 수 없다. 이번 여행에서 경험한 후머스나 팔라펠, 각종 절인 야채 같은 신선하고 풍미가 있으면서 단순한 로컬 음식을 잊지 못할 것이다.

 

감람산(Mount of Olives)에 있는 러시아 정교회.

텔아비브의 중심인 디젠고프 스퀘어(Dizengoff Square)의 시네마 호텔에 머물렀다. 원래 영화관이었던 건물이며 1930년대 텔아비브의 바우하우스 스쿨 가이드라인에 따라 지어진 4천여 개의 빌딩 중 하나다. 2003년, 이 빌딩들은 모두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었다. 주변에 걸어서 갈 수 있는 곳들이 많았다. 내가 머무는 곳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텔아비브에서 가장 유명하고 큰 마켓인 캐멀 마켓이 있었는데 정말로 없는 것이 없었다. 키파스(원단)부터 메주자(Mezuzah), 향수, 냄비, 사해의 미네랄로 만든 화장품까지 정말 모든 물건이 있다. 그리고 다채로운 색깔의 채소와 허브, 양념뿐만 아니라 향긋한 꽃이나 동양의 향신료, 케이크, 로컬 간식거리로부터 풍기는 냄새가 여행자들을 끌기에 충분했다. 나는 점심 무렵에 이곳을 찾았고, 도착하자마자 이 지역에서 가장 맛있는 팔라펠을 먹었다.

 

높은 곳에서 바라 본 성분묘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re)와 카톨리콘(Catholicon).

람밤(Rambam)은 로컬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 중 하나다. 앉아서 먹을 수 있는 곳이 없었기 때문에 퍼먹을 수 있는 숟가락을 부탁했다. 그리고 곁들여 마실 신선한 석류 주스를 한 잔 사서 밖으로 나왔다. 해변으로 와서 이스라엘의 지중해를 바라보며 최고로 맛있는 음식을 즐겼다. 텔아비브의 해변은 약 10km에 달하는데 정오쯤 되면 많은 관광객과 로컬 주민이 이곳을 찾는다. 여기에서는 시간이 좀 더 느리게 흘러간다. 지중해의 리듬에 맞춰 인생은 좀 더 고요해진다.

 

자파(Jaffa) 구역의 구시가지에서 나는 화이트 시티의 20세기 중반 역사를 알게 되었다.(텔아비브는 그곳의 건축물 덕분에 화이트 시티로 불린다.) 이곳은 항구 도시였다. 자파에서 유명한 오렌지를 가득 실은 배들이 유럽으로 향했다. 텔 바이브의 변두리 지역이었던 자파는 처음에는 1천90명의 주민밖에 살지 않았다. 아직은 젊은 유대 도시인 자파는 아주 빠른 속도로 발전했고 하나의 지역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좁은 길을 걸으면서 나는 과거의 시대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낮은 석조 건물, 화려한 문, 빨간 타일과 무성한 식물들이 파란 하늘 아래 자리 잡았다.

 

자파에서 바라본 도심 전경.

옛 항구의 가장 높은 지점으로부터 해안가를 따라 도시의 서북부까지 장엄한 전경이 펼쳐진다. 1백 년 된 골동품 시장이 보인다. 식민지 시절의 가구부터 유럽 패션 의류 브랜드의 빈티지 부티크까지 다양한 아이템을 만나볼 수 있다. 텔아비브에서 가장 오래된 올드 자파의 오래된 벽 네브체덱(Neve Tzedek)은 현재 갤러리와 숍, 그리고 워크숍을 운영하고 있는 아티스트들의 손에 의해 지켜지고 있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남쪽에 위치한 지중해안 항구도시 자파에서 석양을 받으며 서핑하는 서퍼들의 모습.

석양 무렵이 되자 자파는 다시 태어났다. 푸아 카페(Puaa Cafe)나 파룩 바슉(Faruk Bashuk) 같은 인근의 바나 커피숍에서 이스라엘 젊은이들이 그들의 밤을 시작하고 있다. 그 후에 그들은 쿨리 알마(Kuli Alma)나 스펏닉(Sputnik) 같은 클럽으로 향한다. 매일 밤마다 자파는 사람으로 넘치고 그곳에서의 파티는 환상적이다. 파티는 24시간 이어진다. 현대의 텔아비브는 자유와 열린 마음, 관대함이라는 키워드로 정의된다.

 

텔아비브에 있는 사노라 마켓(Sanora Market)의 올리브 가판대.

텔 아비브에서 이틀을 보낸 후에 나는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이스라엘은 고된 역사를 보냈지만, 유대인들은 여전히 이스라엘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그곳의 사람들은 종종 역사에 관한 대화를 나눈다. 텔아비브의 젊은이들은 적어도 특정 순간만이라도 과거를 잊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예루살렘의 사람들은 모든 삶 속에서 과거를 기억하고 느끼려 한다. 예루살렘에서 가장 오래된 유대인 지역 중 하나인 메아셰아림(Mea Shearim)에서는 시간이 마치 멈춘 듯하다. 그곳은 하레디즘 유대교의 거주지로 과거 동유럽 전쟁 이전의 폴란드나 우크라이나에 있는 유대인 마을처럼 고대의 작은 유대인 마을 같아 보인다. 테크놀로지가 아직 이곳까지 도달하지는 못한 듯하다. 길거리에는 어떠한 포스터도 붙어 있지 않고, 휴대폰 소리나 텔레비전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메아셰아림에는 한때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에서 거주했던 하시디즘(Hasidism) 신봉자들이 그들의 조상과 같은 방식으로 살고 있다. 남성들은 토라(Torah)와 탈무드를 공부하고, 여성들은 집안일과 아이를 돌본다. 단순하게 걷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의미가 있는 거리였다.

 

통곡의 벽 앞의 이스라엘 국기.

예루살렘의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다양한 것들이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지만, 그 외 뭔가에 홀리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제 나는 파블 스몰렌스키(Pawel Smolenski)가 그의 저서 <Izrael Juz Me Frunie(이스라엘은 더 이상 날지 않는다)>에서 고백했듯 그가 받은 느낌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 “문득 그곳에 서야 한다고 느꼈다. 뜨거운 태양은 나를 건드리지 않았고, 바람은 더 이상 강하지 않았다. 내가 지금 서있는 이 장소는 나에게 강인함을 주었다. 비록 예루살렘의 오래된 돌들밖에 없지만 말이다.” 스몰렌스키는 예루살렘 신드롬에 대해 묘사하기도 했다. 아주 깊은 종교적인 환경 속에서 예루살렘을 찾은 순례자들과 여행자들은 감각을 읽게 된다. 그들은 심지어 성서에 나오는 행동들을 따라 하기도 한다. 이스라엘의 정신과 의사들은 연간 2백여 명의 사람들이 이 신드롬에 시달린다고 말한다. 그리고 예루살렘 신드롬은 도시의 게이트를 나서자마자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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