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수의 책 읽는 아틀리에] 자연의 질서 속에서 살아가는 ‘나무처럼 생각하기’

[천지수의 책 읽는 아틀리에] 자연의 질서 속에서 살아가는 ‘나무처럼 생각하기’

스포츠경향 2019-07-14 09:25: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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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수는 화가다. 로마국립미술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2003년에는 ‘지오반니 페리코네’ 이탈리아미술대전(La pittura 4 edizione ‘Giovanni Pericone’)에서 대상을 받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온 후 그녀는 아티스트로서 갈증을 느낀다. 그러던 2008년, 그녀는 혈혈단신 아프리카로 떠난다. 그리고 탄자니아에서 암석벽화 복원작업에 참여한다. 사자처럼 지낸 그 2년간의 아프리카 생활은 천지수가 예술가로서 자기정체성을 다시 일깨우는 계기가 된다. 천지수에게 아프리카는 ‘맹렬한 생명’ 그 자체였다. ‘천지수의 책 읽는 아틀리에’는 사자의 영혼을 가슴에 새긴 화가 천지수가 ‘책의 밀림’ 속에서 매일매일 미술적 영감을 사냥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서른여섯 번째 책은 <나무처럼 생각하기>(자크 타상 지음 / 구영옥 옮김 / 더숲)이다.

어떤 책은 아주 상식적인 이야기임에도 그 근거를 다시 살펴보고 싶을 때가 있는 반면에 어떤 책은 근거를 전혀 살피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그냥 믿고 싶은 것이다. <나무처럼 생각하기>가 바로 그런 책이었다. 의심 없이 믿는 것이 훨씬 좋겠다는 판단을 하게 만드는, 그런 힘이 있는 책이었다. 나를 전적으로 위해 주는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모성애처럼 느껴지는 과학책이라니! 부드럽고 강력했다. 묘한 책이었다.

프랑스의 식물학자인 자크 타상이 쓴 이 책은 “인간의 몸과 마음에는 나무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말한다. 마치 식물을 의인화해 표현한 시를 읽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책은 과학책이다. 과학적 근거가 없는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인간은 지구상에 태어난 이후 나무를 딛고 성장했고, 그래서 유연한 척추부터 튼튼한 치아, 색을 구별해 내는 시각까지 호모 사피엔스의 육체에는 나무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고 한다. 또 유연하면서도 자유롭게 움직이는 근육이 붙어 있는 인간 육체의 모든 골격은 나무가 생물에 남긴,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며 우리의 감각체계도 나무로 인해 재구성됐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식물을 연구하는 과학자가 ‘시인이자 철학자’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를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예로부터 나무와 함께 살아왔는데, 언제부터인가 인간이 나무를 벗어나면서 많은 괴로움을 겪게 됐다고 한다. 만일 인간이 그 고통을 벗어나고 싶다면 나무에게 다시 가까이 가야 하고, 그러기 위해 우리는 나무처럼 생각해야 한단다.

<나무처럼 생각하기>에 등장하는 나무는 예수 같기도 하고, 청록파 시인들의 문학사상 같기도 하다.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이 책은 ‘과학책’이다. 끊임없이 읽는 이들의 가슴을 향해 문학적으로 스며드는 아주 희한한 과학책이다.

심지어 저자는 “우리가 태어났을 때 나무가 우리에게 세상에 존재하는 방법을 가르쳤다면 세상을 배우는 방법 또한 가르쳤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나는 이 대목을 읽을 때 마음을 정했다. 그냥 ‘경전’처럼 마음 편히 읽자고 말이다. 놀랍게도 그렇게 결정하자마자 엄청난 영감들이 밀려들었다.

‘결핍이 식물들의 다양성을 키운다’고 설명하는 대목이 있다. 실제로 건조한 초원일수록 다양한 색채의 꽃들이 피어난다는 것이다. 풍부한 자양분과 온화한 기후 등 충분한 조건 속에서 식물이 잘 자란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라고 한다. 결핍 속에서 강인해지는 것은 비단 나무만이 아니다. 인간도 똑같지 않은가.

인류가 막 탄생했을 때 나무가 우리에게 세상에 존재하는 법을 가르쳤던 것처럼, 나무는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세상을 배우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고 이 책은 말한다. 우리 인류가 불행과 고통 속에 빠져든 것은 나무를 떠나 나무의 가르침을 잊었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말을… 나는 믿기로 했다.

‘나무처럼 진실하고 올바르게 성장하라’ ‘나무는 서두르지 않는다’ ‘대립 없는 공생으로 보답하는 나무’ ‘다름을 받아들이고 나아가는 나무’…. 책에 적힌 목차 하나하나가 곧 신의 계명처럼 다가온다. 책을 읽으며 그림을 그리는 경우도 있지만 <나무처럼 생각하기>의 경우엔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도 며칠을 더 기다려야 했다. 충분한 사유의 시간이 필요했다.

울창하고 화려한 나무의 모습도 멋지지만, 앙상한 나뭇가지 속에는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강한 생명이 숨 쉬고 있다. 나는 그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고 느낀다. 바로 그 기막힌 생명력으로 나무는 가혹한 결핍들을 견디다가, 따뜻한 봄 햇살을 신호로 새로 꽃을 피운다. 화가로서의 내 의도는 딱 거기까지였다. 하지만 다 그려놓고 보니 화폭 속 나의 나무는 마치 거대한 나방이나 익룡처럼 보인다. 땅을 박차고 오르려는 동물적 생명력이 느껴졌다. 나무는 수억만 년 동안 땅에 뿌리가 잡혀 살아야 했기에, 오히려 우주만큼 커다란 ‘비상(飛上)과 유영(游泳)의 꿈’을 품고 있지 않을까?

<나무처럼 생각하기>는 나에게 ‘비상과 유영의 꿈’을 각성시켜 준 책이다. 아무래도 다시 살아야겠다. 날고 헤엄치면서.

<화가(www.jisoo-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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