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머문 섬으로 여행을 떠나보세요!

예술이 머문 섬으로 여행을 떠나보세요!

노블레스 2019-07-15 00:00:00 신고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

01 섬을 위한 건축, 가파도 Gapado
서귀포 모슬포항에서 여객선을 탄 지 15분 남짓, 멀리 파랗고 빨간 가오리 깃발이 시야에 들어온다. 제주도 남서쪽에 위치한 작은 섬 가파도다. 섬 전체가 덮개 모양이라는 의미에서 ‘개도’, ‘개파도’라 불리는 곳. 하늘에서 보면 가오리가 팔을 한껏 펼친 형상인지라 항구 입구에 가오리 모양 깃발을 세워두었다. 항구에 도착하자 나지막이 자리한 여객터미널이 바다 건너온 낯선 이를 맞이한다. 몇 해 전 새로 지은 여객터미널 콘크리트 구조물에는 서정적 글씨체로 ‘가파도’라는 글자가 새겨 있다.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가파도의 지형과 어우러지도록 건물은 낮고 평평한 형태로 지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사방이 뚫린 널찍한 유리창을 통해 가파도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가파도는 비교적 여유롭고 한적했다. 청보리 축제가 열린 봄에는 이틀 전에 배표를 예약해야 할 정도로 사람들로 북적였다고. 실제로 가파도는 한 철에 그치고 마는 관광산업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섬에 어울리지 않는, 관광객을 위한 상권이 우후죽순 생기고 그마저도 오래 이어가지 못하는 불안정한 발전을 반복했다. 그런데 2013년, 제주특별자치도청과 현대카드가 ‘가파도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변화의 바람이 일었다. 지역성을 잃지 않는 조화로운 건축 철학을 바탕으로 가파도의 문화적 부흥을 도모하는 시설이 생겨난 것. 지역 주민의 지속 가능한 경제활동을 위한 상업 시설과 여행객이 머무는 숙소, 전 세계에서 모인 예술가가 거주하는 레지던스 등 건축가의 시선이 관통하는 새로운 건축물을 통해 문화 예술의 섬으로 거듭나고 있다. 그 변화를 직접 보기 위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먼저 올레길 표시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르기로 했다. 선착장에서 오른쪽 해안 도로를 거쳐 하동포구로 향하는 길이다. 섬에 하나뿐인 편의점과 해녀 쉼터를 지나자 작은 건물 하나가 보인다. 보리빵과 뿔소라, 전복구이 등 가파도 특산품으로 만든 메뉴를 판매하는 ‘스낵바’다. 그동안 가파도에는 마땅한 휴식 공간이 없었기에 섬을 둘러본 여행객이 배 시간을 기다리며 쉴 수 있도록 스낵바를 마련했다. 박공지붕 아래 서까래를 정갈하게 드러낸, 전통적이면서 현대적인 건물에는 제주 바다를 마주하는 소박한 여유가 깃들어 있다. 스낵바 뒤편에는 ‘아카이브 룸’이 자리한다. 가파도가 변화해온 지난 6년의 시간을 기록한 곳. 가파도가 문화 예술의 섬으로 거듭나기까지 사진과 영상, 새로 지은 건축 모형 등을 둘러보니 섬을 바라보는 시선이 더 애틋해진다.




1 가오리 깃발이 휘날리는 항구.
2 가파도 여객터미널은 주변 지형과 조화를 생각해 높이를 낮췄다.
3 여행객의 쉼터 역할을 하는 스낵바.

사실 가파도 프로젝트를 처음 알게 된 건 우연히 본 ‘가파도 하우스’ 사진을 통해서다. 빈집을 고쳐 만든 독채에 제주 풍경과 어우러진 모던한 실내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다. 실제로 스낵바 근처에서 만난 가파도하우스는 기대 이상이었다. 신비로운 붉은 자갈밭에 소담히 자리한 모습 자체가 편안한 휴식을 상징하는 듯했다. “가파도의 수평 경관을 보전하기 위해 주변 집과 크기, 높이, 색을 비슷하게 맞췄습니다.” 가파도 프로젝트에 참여한 원오원 건축사무소 강지오 디자이너의 설명이다. 그는 내부 역시 본래 건물의 구조를 유지했다고 덧붙였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 네모반듯한 창문이 커다란 액자처럼 바깥 풍경을 담고 있다. 모든 벽면에 창을 내어 사방에서 자연을 감상할 수 있다. 섬에서 운영 중인 가파도 하우스는 총 6동. 위치에 따라 바다, 제주 본섬, 청보리밭, 돌담 등 서로 다른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
하동포구로 가는 길에는 크고 작은 돌탑이 자리한다. 해녀를 수호하고 가족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는 해신당과 서낭당, 주민들이 신성시하는 보름바위 등 그 모양과 의미도 다양하다. 그들의 정성과 염원이 하나의 풍경이 되어 걷는 내내 왠지 모를 평안과 위안을 느꼈다. 하동포구는 가파도터미널이 위치한 상동포구와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 청록색, 하늘색, 주황색 등 오색찬란한 지붕과 아기자기한 벽화, 까만 돌담길이 줄지은 모습이 이국적 휴양지를 방문한 듯한 착각도 든다. 이곳에는 가파도 경제의 근간이 되는 어업센터가 있다. 창고로 사용하던 건물을 개조해 선주 사무실과 그물을 손질하는 공간, 해녀가 물질한 신선한 해산물을 판매하는 해녀화로구이집으로 꾸몄다. 건물 앞에는 테라스 형태의 너른 지붕을 마련해 날이 좋을 땐 야외에서 먹고 쉬어가는 사람으로 북적인다.
가파도는 제주도와 마라도 사이에 위치한다. 하동포구에서 어업센터를 지나면 저 멀리 마라도의 모습을 선명하게 볼 수 있다. 그리고 마라도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열십(十)자 모양 콘크리트 건물. 전 세계에서 모인 예술가가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하는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로, 버려진 지하 구조물을 리모델링해 만들었다. 오랜 시간의 단절만큼 독립적 느낌이 강해 조경 계획에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돈나무 같은 주변 지역의 자연 수목을 연장하는 과정을 거쳐 기존 풍경과 조화롭게 만든 것이 특징이다.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는 가파도의 여느 건물과 달리 위로 쭉 뻗어 있다. 가장 높은 고도가 20m 남짓인 가파도에서 이런 외형을 갖췄다는 건 좋은 전망을 자랑한다는 뜻이다. 입구 오른쪽 언덕 끝에 자리한 문을 통해 옥상으로 올라가니 쪽빛바다와 금빛으로 물든 보리밭이 아득하게 펼쳐진다. 시야를 가리는 것 하나 없이 쭉 뻗은 광경이 보는 이의 가슴까지 시원하게 만든다. 항구로 돌아가기 전, 레지던스 1층에 자리한 갤러리를 둘러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지난 1년간 레지던스에 머문 11팀의 아티스트가 저마다 시선으로 가파도를 기록한 전시는 방문객에게 색다른 영감을 전한다.
가파도를 한 바퀴 둘러보니 일본의 오기지마섬이 떠올랐다. 외딴곳에 모인 예술가가 ‘온바팩토리’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빈집을 수리하고 도서관을 만드는 등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은 대표적 예술 섬.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를 비롯해 가파도 프로젝트를 통해 탄생한 크고 작은 변화가 이 섬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윤활유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




마을 회관, 어업센터와 근접해 있는 하동포구의 모습.




4 버려진 집을 리모델링해 여행객을 위한 숙박 공간 ‘가파도 하우스’를 만들었다.
5 아기자기한 벽화에서 가파도민의 손길이 느껴진다.
6 하동포구에 위치한 기념품 가게.







탄도항에서 만날 수 있는 풍력발전기와 누에고치 모양의 조형물.

02 문화 예술의 아지트, 대부도 Daebudo
물이 가득 차오른 바다와 진흙 바닥을 드러낸 민낯의 바다, 이 양면적 풍광은 예술가에게 깊은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밀물과 썰물이 드나드는 경기만의 바다는 예술가의 아지트가 되었다. ‘적막한 고요와 짙은 해무’로 대변하는 대부도도 그중 하나. 국내외 예술가의 창작과 연구 활동을 지원하는 국제적 아트 레지던스는 물론 종이·유리 공예를 기반으로 한 국내 최초의 박물관을 지어 문화 예술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 곳. 자연, 사람, 예술이 공존하는 대부도에서 꼭 들러야 할 스폿을 소개한다.




7, 8 경기창작센터 외관과 류정민 작가의 ‘EIN STEIN_생각의 생각’ 작품.

예술과 열정이 샘솟는 곳, 경기창작센터
오래된 학교를 개조한 경기창작센터는 타공 패턴과 그래픽 요소를 가미한 외관이 시선을 끈다. 3개의 창작 스튜디오와 강당, 극장, 전시장, 공방 등으로 구성한 이곳은 매해 입주 예술가를 선정해 창작 공간과 전시, 교육 등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블록을 쌓은 듯 서로 다르게 색칠한 계단, 갖가지 타일을 이어 붙여 만든 수돗가 등 발길 닿는 곳마다 작가의 흔적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현재 입주 예술가의 전시도 진행 중이다. ‘수상한 아침’을 주제로 설치미술, 회화, 미디어 아트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여 다시 밝아올 아침과 평범한 일상에 대한 진지한 사유를 할 수 있다.
바다에서 마주한 조형미, 탄도항
대부도에서 누에섬으로 들어가기 위한 거점인 탄도항. 사진가의 출사 명소로 유명한 이곳은 놓치지 말아야 할 스폿이다. 약 100m 높이의 풍력발전기 3대가 하늘과 맞닿을 듯 서 있는데, 해가 저물 무렵이면 붉게 물든 노을과 어우러져 건축적이고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최근에는 풍력발전기 아래 누에고치 모양 조형물도 축조했다. 저 멀리 푸른 섬과 그 섬을 닮은 조형물 그리고 바람을 타고 회전하는 프로펠러가 만나 그림 같은 풍광을 자아낸다.




유리로 만든 연꽃이 가득한 수변 공간.

투명한 물성의 가치, 유리섬 박물관
대부도에도 국내 최초의 유리 박물관이 있다는 걸 아는 이는 많지 않다. 4만3000m²의 넓은 공간에 유리공예의 역사와 제작 기법, 현대 유리 조형물 전시등 유리공예와 관련한 모든 것을 풀어놨다. 유리로 만든 연꽃이 가득 핀 수변 공간을 지나 미술관으로 들어가면 하늘을 나는 새, 바닷속 산호 등 유리로 만든 동화 같은 세상이 이어진다. 극장식으로 꾸민 시연장에선 유리공예 작품을 만드는 과정도 볼 수 있다. 1200℃가 넘는 가마에서 유리를 녹이고 블로 파이프로 숨을 불어넣어 모양을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제부도 바닷길 초입에 들어선 워터워크.

03 자연을 품은 예술, 제부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거리 말인가? / 대부도와 제부도 사이 / 그 거리만큼이면 되지 않겠나 / 손 뻗으면 닿을 듯 그러나 / 닿지는 않고 눈에 삼삼한···.” 이재무 시인의 시 <제부도>의 한 구절처럼 대부도에서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거리에 제부도가 자리한다. 섬 전체를 둘러싼 푸른 바다가 하루 두 번 물길을 열고 사람의 발길을 허락하는 곳. 검붉은 갯벌이 속살을 훤히 드러내면 바닷길을 따라 섬으로 진입하려는 차량 행렬이 이어진다. 그 옆으로 전에 본 적 없는, 바다를 건너 하늘로 향하는 다리 같은 구조물이 들어섰다. 화성시가 ‘제부도 명소화를 위한 문화예술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세운 ‘워터워크’다. 물길이 열릴 때와 닫힐 때 차량 통행을 제한하는 톨게이트를 철거하고 해저에서 4m 이상 높이에 길이 44m인 워터워크를 설치했다. 제부도 쪽을 향해 바다 위에 떠 있는 형태로 일종의 전망대 역할을 한다. “워터워크는 제부도 풍경을 담은 그 자체가 조형적 풍경입니다.” 설계를 맡은 SOAP 건축사무소 권순엽 대표의 말처럼 존재만으로도 미학적 가치를 지닌다. 나무 계단을 오르면 썰물로 드러난 갯벌과 함께 탁 트인 제부도 전체 풍경을 조망할 수 있다. 바닷물이 가득 차면 출렁이는 물결을 바라보며 조용히 사색을 즐기기에도 좋다.
바닷길을 따라 제부도에 입성하면 선착장에서부터 ‘제비꼬리길’이라 불리는 해안 산책로가 시작된다. 등대 주차장에서 출발해 서쪽 해안으로 길게 뻗은 덱과 제부도 해수욕장을 거쳐 나지막한 탑재산 숲길을 걸어 돌아오는 2km 남짓한 코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밀물과 썰물에 따라 풍경이 달라지는 바다를 조망하며 산책할 수 있다. 이 길을 걷는 동안 바다색을 테마로 디자인한 작은 소품이 신선한 즐거움을 준다. 망망대해를 담을 수 있는 아기자기한 프레임을 마련한 포토 존과 커다란 망원경도 흥미롭지만, 군데군데 놓인 독특한 형상의 벤치가 발길을 붙든다. 2017년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본상을 수상한 ‘경관 벤치’다. 유리 난간과 나무 등받이가 둥지처럼 아늑한 쉼터를 만들어주는 둥지 의자, 바다와 갯벌이 만나는 곳에 평상처럼 놓인 그늘 의자 등 10여 종류의 의자는 산책길에 마주하는 아름다운 설치 작품 같다. 가던 길을 멈추고 편안하게 앉아 갯벌 위를 날아 다니는 갈매기와 드문드문 솟은 바위, 뭍 가까이 정박한 고깃배를 바라보며 고요한 낭만에 젖을 수 있다.




9 망망대해를 담을 수 있는 프레임의 포토 존.
10 해안 덱 나무 난간에 자리한 제부도 로고.
11 바다의 아름다움을 다각도로 볼 수 있는 그늘 의자.

900m의 해안 덱 끝에는 제부도 해수욕장이 펼쳐진다. 오른쪽에 기암절벽이, 왼쪽에 매바위가 자리해 절경을 자랑하는 이곳에 독특한 형태의 예술 공간 ‘아트파크’가 있다. 6개의 컨테이너를 불규칙적으로 쌓아올려 제부도의 바다 경관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망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전시, 휴게, 이벤트 등 다양한 공간 기능을 제공하는데, 현재 1층에서는 힐링, 상상, 탐험, 자연의 바다 네 가지 큐레이션 테마의 ‘바다책방’이 팝업 형태로 열리고 있다. 2층으로 올라가면 넓게 뚫린 창을 통해 바다와 갯벌을 그림 액자처럼 감상할수 있다.
제부도는 분명 달라졌다. 자연이 만들어낸 신비로운 바닷길과 넓은 갯벌은 그대로지만, 인간의 손을 빌려 만든 예술적 공공 조형물이 군데군데 들어앉았다. 조형물은 자연경관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수려한 풍경과 어우러져 마음에 잔잔한 울림을 주고, 새로운 영감을 샘솟게 하며, 여행의 낭만을 차오르게 한다.




12 제부도의 풍경을 색다르게 경험할 수 있는 흔들의자.
13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산책할 수 있는 해안 덱.




14 바다색을 테마로 한 안내판을 세운 제비꼬리길 시작점.
15 6개의 컨테이너로 만든 색다른 예술 공간, 아트파크.

 

에디터 문지영(jymoon@noblesse.com),최별(choistar@noblesse.com)
사진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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