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의 '역설'… 밥 짓는 노동의 소중함

불편함의 '역설'… 밥 짓는 노동의 소중함

베이비뉴스 2019-07-15 14:00:00 신고

새벽같이 출근을 할 때 가장 큰 문제는 아이들 아침밥이었다. 주말에 국을 한 솥 끓여놓고, 카레를 양껏 만들어 냉동실에 얼려놓고, 밑반찬 몇 가지를 만들어 놓아도 일주일을 버티긴 힘들었다. 그마저 엄마, 아빠가 출근하고 나면 아이들은 엄마의 ‘노오력’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맘에 드는 반찬 하나 달랑 꺼내 먹고 나가기 일쑤였다. 퇴근 후 설거지통의 빈 그릇들이 단촐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내가 애들 잘 먹이지도 못하면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런담.' 자괴감이 슬슬 밀려오다가도 다행히 맘의 위로가 되는 것이 있었다. '학교에서 점심밥이 잘 나오니까'라는 생각. '학교에서 급식이라도 주지 않으면 어쩔 뻔했어.'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지금은 너무도 당연한 학교급식이지만, 조금만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는 모두 도시락을 주렁주렁 들고 다닌 세대였다. 그리고 그 도시락은 엄마의 새벽 노동이었다.

내가 학교에 다니기도 훨씬 전부터 엄마는 시동생 네 명의 도시락을 싸면서 하루를 시작했다고 한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내 막냇삼촌 저녁 도시락까지 포함해 매일 다섯 개의 도시락을 싸고 나서야 엄마는 출근을 했다.

막냇삼촌을 졸업시키니 다음에는 내가 자라 중학교에 갔고,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야자’를 한다고 도시락 두 개씩 들고 학교에 다녔다. 그리고 내 뒤를 이어 동생이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렇게 나이 오십이 넘을 때까지 엄마의 도시락 싸기는 이어졌다. 내가 아이들 밥 걱정을 할 때마다 “그건 일도 아니”라며 수백 번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온 엄마의 ‘도시락 역사’는 그랬다.

정말이지 돌아보면 아이들 도시락을 싸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맞벌이 여성들에게는 혁명과도 같은 일이었을 것이다.

1997년 최초로 학교급식이 시작되고, 2002년 초등학교부터 시작된 무상급식이 중고등학교로 확대된 것이 2011년이라고 한다. 우리 세대에게 아이들 도시락 싸준 경험은 없지만, 가끔 아이들이 체험학습을 가는 날 김밥을 싸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고, 옛날 우리 엄마들은 매일 도시락을 어떻게 쌌을꼬' 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리는.

지난 3~5일 학교급식 노동자를 비롯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총파업을 했다. 이후 교육청과 교섭이 재개됐지만 파행만 거듭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진은 지난 5일 총파업 집회 현장. ⓒ베이비뉴스 지난 3~5일 학교급식 노동자를 비롯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총파업을 했다. 이후 교육청과 교섭이 재개됐지만 파행만 거듭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진은 지난 5일 총파업 집회 현장. ⓒ베이비뉴스

그런데 또 그런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었는데, 바로 얼마 전 학교비정규직 (급식) 선생님들이 파업을 한 사흘간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정상적인 급식이 나왔다고. 그래서 그 선생님들이 파업을 했는지 아닌지 확인할 길은 없었지만, 그날 많은 부모들이 도시락을 쌌다고 들었다.

당연히 여겨지던 아이들의 점심밥 제공이 멈추던 그날, 부모들이 느꼈을 당황스러움은 밥 짓는 노동을 하는 이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

밥 짓는 일을 멈추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 우리 아이들의 입으로 들어가는 밥을 만드는 이들의 노동을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가치 있게 대했나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노동, 아이들이 아프면 치료해주는 병원에서 만나는 노동보다 아이들의 밥을 짓는 노동이 덜 중요한 이유가 전혀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그녀들의 부재로 비로소 느끼게 된 소중한 날이기도 했다.

아이들은 자신들을 둘러싼 것들, 자신이 경험하는 것들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면서 자란다. 그래서 나는 생각해본다. 지난 3일부터 5일까지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손을 놓은 사흘간이, 아이들에게 밥에 대해, 밥 짓는 노동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참교육의 시간이 됐기를. 그동안 숨겨져 있거나 평가절하된 그녀들의 노동의 가치를 생각해보는 날이었길 바란다.

교실에서 만나는 선생님뿐 아니라 우리에게 맛있는 밥을 만들어주는 그분들도 다 같은 ‘선생님’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그분들 덕에 엄마들이 일평생 허덕이며 해온 도시락 싸기 노동을 덜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줘야겠다. 그래서 엄마도 너희들에 대한 죄책감 없이 일터에서 노동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줘야겠다.

누군가가 일손을 놓으면 불편해진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그 노동 없이는 살아가기 힘들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것이 ‘파업’이라는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면서 우리 공동체가 얻을 수 있는 지혜다. 오늘 당장 아이들에게 가르치자. 밥 짓는 노동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밥 짓는 학교비정규직 선생님들이 얼마나 중요한 분들인지를.

*칼럼니스트 엄미야는 초등학교 5학년, 중학교 2학년 두 딸의 엄마다. 노동조합 활동가이자, 노동자 남편의 아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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