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택의 고전시평] 일본의 '적반하장', 위기의 본질을 깨닫자

[임영택의 고전시평] 일본의 '적반하장', 위기의 본질을 깨닫자

더팩트 2019-07-16 05:00:00 신고

일본의 수출 규제는 한국 소재·부품 산업의 허약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지만 이를 문제로써 인식하고 대응책을 잘 마련하면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다. 사진은 일본 맥주를 판매하지 않는 수원의 한 마트./수원=임영무 기자

소재·부품 산업의 허약성 노출...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더팩트 | 임영택 고전시사 평론가] 일본은 7월 4일부터 TV,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반도체 제조 필수 부품인 리지스트 및 반도체 제조 필수 소재인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의 한국 수출을 규제하고 있다. 6월 30일 북미 판문점 정상회담 다음 날인 7월 1일 규제를 발표한 시기도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기막히다. 일본의 초조함이 묻어나며 한반도 평화 흐름에 찬물 끼얹기 성격이 짙다.

작금의 사태는 일제 강점기 당시 강제 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 1인당 1억 원씩을 배상하라는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도화선이 되었지만 복합적 요인이 작용했다. 아베 정권은 끊임없이 극우보수화의 길을 걸으며 전쟁, 무력행사 및 군사력 보유를 금지한 평화헌법 개정을 통해 정치·군사대국으로 나아가려고 수시로 한국과 대결구도를 조장하여 국내 지지기반 결집 및 확충을 획책하고 있다.

아베 정권은 심지어 한국이 대북 제재 물품을 북한에 제공한 혐의가 있다는 근거 없는 이유를 대면서 수출 규제를 정당화시키려 안간힘을 쓰며 남한과 북한 모두를 적으로 돌리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일본이 북한에 미사일 관련 장비 등 대북 제재 물품을 수출하여 유엔으로부터 여러 차례 지적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또한 2018년 봄부터 급속히 진전하고 있는 한반도 평화의 길에서 일본이 철저하게 배제된 ‘재팬 패싱’에 대한 불안 심리도 한국을 향한 정치·경제 공세에 한몫하고 있다.

한국에 일본은 가깝지만 너무나도 먼 이웃이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총·균·쇠'에서 기원전 1만 700년부터 400년까지 일본을 주도했던 조몬인을 한반도에서 일본에 대거 진출했거나 초기에는 비록 소수였다 하더라도 정착한 뒤 인구가 급증한 세력이 조몬인을 대체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파했다. 신빙성이 높은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주장에 따르면 고대 한반도 거주민은 단지 일본에 문명을 전수하는데 그치지 않고 인종적으로도 현대 일본인의 조상인 셈이다. 그 이후 친연관계가 멀어지긴 했지만 일본은 왜구활동, 임진란, 갑오농민혁명 및 일제 강점기 등에서 한반도 역사에 씻지 못할 악행을 저질렀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독일이 주변국들에게 진정어린 사죄를 하는 것과는 달리 일본은 사죄는커녕 지금까지도 그들의 악행의 역사를 왜곡하고 은폐하기에 급급하다. 그래서 일본은 가깝지만 너무나도 먼 나라이다.

오랜 역사에서 한반도는 일본에 많은 이익과 혜택을 주는 대신 엄청난 피해를 당했는데 현대에도 한국은 일본의 배를 불려주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와 관세청의 수출입통계에 따르면 1965년부터 2018년까지 54년 간 한국의 대일 무역적자 누적액은 총 6046억 달러(약 708조 원)이며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8년 한국은 일본과의 소재·부품 교역에서 151억 달러(약 17조 7000억 원) 적자를 기록했다. 2018년 한국의 무역흑자가 82조 원이었고 대일 적자만 28조 원이었는데 대일 적자의 약 63%가 소재·부품 분야였다. 일본은 지금까지 한국과의 교역에서 엄청난 흑자를 보고 있으며 한국은 특히 소재·부품 분야에서 일본 의존도가 매우 높은데 이번 경제 보복도 이 부분에 초점이 맞춰 있어서 한국 경제에 타격이 크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 규제는 경제적 목적에 그치지 않고 정치적 계산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일본은 경제 보복으로 일본 내 정국을 주도하여 군국주의로 나아가며 위안부 및 강제 징용 배상 사안을 이미 완료된 일로 치부하고 문재인 정부를 흔들거나 길들여서 한반도 평화의 길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한다. 현 정부는 이전 보수정권처럼 일본에 굴종치 않고 자주적인 모습으로 일관해야 되며 소재·부품 분야에서 수입 다변화 및 자립화의 길을 실천해야 된다. 경제 자립을 도모하면서 단지 국가 재정만 투입하지 말고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당사자인 기업 투자도 함께 끌어내야 된다. 당사자인 재벌의 투자는 제쳐놓고 세금을 일방적으로 기업에 투입하는 것은 공정성과 형평성에 맞지 않는 처사이기 때문이다.

위기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위기危機 = 위험危險 + 기회機會’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나 한참 잘못된 해석이다. 위기는 사전적으로 ‘위태로운 시기나 고비’를 의미하지 위험과 기회를 합한 말이 결코 아니며 위기가 자연스레 기회로 연결되지도 않는다. 위기가 기회가 되려면 일차적으로 위기가 위기임을 간파하는 안목이 필요하다. 혹자는 위기를 누가 모르겠냐고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위기임에도 불구하고 무사태평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위기의 본질을 파악하여 시의적절한 대응을 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결합하면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다. 요컨대 위기가 기회가 되는 관건은 위기임을 알아채서 긴장하고 대안을 모색하려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대부분 이 단계에서 실패하여 위기를 기회로 연결시키지 못하게 된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 규제는 분명 한국 경제에 위기 요인이다. 하지만 이 계기에서 한국의 소재·부품 산업의 허약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점은 불행 중 다행이다. 드러난 문제를 문제로써 인식하고 대응책만 잘 마련하면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외교적 측면에서는 지금처럼 일본의 과거 악행에 대한 분명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고 보다 굳건한 자주적 태도를 견지해야 일본이 한국을 가볍게 여기기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맹자는 "내우외환이 있으면 살고, 편안함과 즐거움만 만끽하면 죽는다"고 했다.

thefact@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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