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하자니 매출이 줄고, 들어주자니 이익이 줄고…"

"거부하자니 매출이 줄고, 들어주자니 이익이 줄고…"

이데일리 2019-07-16 06:00:16 신고

경희의료원이 49%를 투자해 모 의약품도매업체와 공동설립한 팜로드 홈페이지.(사진=인터넷 캡쳐)
[이데일리 강경훈 기자] 병원 운영자나 재단이 일부 의약품 도매업체와 공동으로 설립한 ‘병원직영도매’업체가 유통시장 교란을 넘어 신약개발을 막는 주범이라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갑’의 위치에서 통상보다 높은 마진을 요구해 제약사에게 돌아가야 할 이익을 대신 취함으로써 제약사들의 연구·개발(R&D)을 축소시킨다는 것이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한 대학의료원이 지분 49%를 소유한 A도매사는 거래 제약사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통상적인 유통마진(약 15% 내외)보다 마진율을 높이겠다며 이를 거부하면 앞으로 이 의료원이 운영하는 서울시내 대학병원에 약을 납품할 수 없게 된다고 통보했다. 전화를 받은 제약사 관계자는 “도매사가 원하는 수준의 마진(약 35%)을 맞추려면 영업이익이 그만큼 줄어들고 그렇다고 거부를 하면 해당 매출 자체가 날아갈 판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속앓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행 약사법상 병원을 운영하는 사람이나 재단, 친인척 등 특수관계인은 해당 병원에 의약품을 납품하는 도매업체의 지분을 50%를 초과해 보유할 수 없다. 의약품 도매업체 단체인 한국의약품유통협회 관계자는 “이 말은 해당 병원 재단은 최대 ‘50%-1주’까지 도매업체의 지분을 소유할 수 있다는 의미”라며 “2대 주주라고 해도 병원을 운영하는 주체라 실질적인 도매업체 소유자라고 해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거의 대부분 병원들이 이런 직영도매업체를 소유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세브란스병원·연세암병원·강남세브란스병원·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용인세브란스병원을 운영하는 연세의료원은 안연케어의 지분을 49% 소유하고 있고, 가톨릭의료원은 비아다빈치의 지분을, 인제대의료원은 화이트팜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최근에는 경희의료원과 이화의료원도 지난해 도매업체와 손을 잡고 병원직영도매업체를 설립했다. 의약품유통협회 관계자는 “정확한 실태를 파악할 수는 없지만 종합병원부터 70~80병상 규모의 중소병원까지 모두 다 이런 형태의 직영도매업체를 운영한다고 보면 될 것”이라며 “해당 병원에 약을 납품하려면 이 업체를 통해야 하고 그러려면 그들이 원하는 조건을 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병원직영도매가 현행법상 불법은 아니지만 병원에 납품을 원하는 제약사 입장에서는 영업이익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 부담으로 작용한다. 한 중소 제약사 대표는 “직영도매업체가 마진을 10% 높이겠다고 하면 업체 입장에서는 그만큼 이익이 줄어들게 된다”며 “그만큼 R&D에 대한 투자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병원직영도매업체의 마진율은 통상 마진의 두세 배에 이르는 30~40%에 이르고, 대체품이 많은 약은 많게는 40% 이상의 마진을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며 “회사 입장에서 어느 정도 이익이 나야 R&D에 투자를 하고 일자리를 늘릴 수 있지만 이런 식으로 마진을 높이면 R&D 투자는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병원이 지분을 소유한 도매상은 해당 병원에 의약품 납품을 할 수 없도록 하는 약사법 개정안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이렇게 하면 오히려 시장원리를 무시하게 돼 적정한 방향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있다”며 “병원직영도매 때문에 제약사의 R&D 여력이 줄어든다는 것은 의약품 유통과정에 대한 다양한 변수를 고려하지 않은 논리비약일 뿐 자체분석으로는 제약사의 R&D 여력이 줄어든다는 결과는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병원직영도매에 대한 입장차가 모두 다르다 보니 한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는 것. 유통협회 관계자는 “병원과 손잡고 새 도매업체를 만드는 업체도 모두 협회 소속 회원사들이라 유통질서를 흐리지 말자는 원론적인 입장 외에는 강경한 방지책을 마련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제약사도 리베이트를 줄 수 없는 상황에서 도매상이 알아서 문제를 풀어주는 형태라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목소리가 있다. 한 대형 제약사 관계자는 “취급 품목이 적거나 규모가 작은 제약사는 영향을 받을 수 있겠지만 대형 제약사는 마진을 줄이더라도 납품할 수 있게 해 주면 고마울 따름”이라며 “어차피 마케팅 비용으로 나가야 할 비용으로 생각하면 마진 줄이는 게 무슨 대수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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