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가 꼭 정치적이어야 할까?

플레이보이 2019.08.14 16:45

지난 5년을 돌아봤을 , 연애에 있어서 일정한 패턴이 있음을 알게 됐다. 상대와 섹스를 하고 서로에게 헌신하며 다른 사람은 만나지 않는, 어느 정도 친밀한 사이가 되고 나면 나는 항상 상대에게 물어본다. “ 음모를 어떻게 가꾸면 좋겠어?”라고. 그와 대화의 꽃을 피우려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음모는 내가 생각하는 그다지 자극적인 대화 소재가 아니다. 다만 파트너와 함께하는 시간 동안 내가 상대의 선호에 맞춰 음모를 관리하겠다는 의미로 그의 의견을 묻는 것이다. 그가 풍성한 것을 좋아한다면 1970년대 포르노 스타처럼 음모를 가꿀 것이고, 깔끔한 것이 취향이라면 제모 서비스를 받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음모를 섹스 그리고 나와 파트너의 성적 만족과 동일시한다. 그것은 섹슈얼리티의 상징이자 란제리나 무드 혹은 섹스 토이와 같이 파트너를 흥분시키는 하나의 비밀병기인 것이다. 나는 파트너에게 음모를 어떤 식으로 가꾸면 좋겠냐고 묻는 것은 그에게 오럴 섹스를 어떻게 해주는 것을 선호하는지 묻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질문은 나의 성적 만족도에도 도움이 된다. 왜냐하면 파트너와 나체인 상태로 누워있는데 그가 원한다는 것이 훤히 느껴질 만큼 흥분시키는 것도 없으니 말이다. 파트너의 취향에 맞게 음모의 가꾸는 것은 과정 일부인 것이다.

한때 파트너와 사이, 이런 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 때문에 음모를 카멜레온처럼 바꾸는 것이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섹스 칼럼니스트인 나는 지금까지 여성에게 남성적 시선에 자신을 맞추지 말고 자신의 미적 기준을 따르라고 조언해왔던 사람이다. 그런 내가 남성에게 나의 음모와 관련된 결정을 내려 달라고 부탁하고, 내가 아닌 그의 미적 취향에 맞춰 몸에 뜨거운 왁스를 붓는다는 것은 위선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음모와 나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은 가부장적인 미적 기준의 내부화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 해야 같다. 어쩌면 글을 읽는 나의 동료 페미니스트의 눈살을 찌푸리게 있다. 그런 생각 또한 이해하고, 결정이 무엇을 암시하는지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 몸의 자주성을 남에게 줘버리는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계산된 놀이 하나 생각한다.”

이것은 요구가 아닌 협의이기 때문에 도리어 나에게 힘을 부여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이런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는데 파트너가 나에게 그곳을 제모했으면 좋겠다고 통보한다면, 그를 침대에서 쫓아내고 어떻게 하라고 얘기하기 전에 그의 음모나 깎으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사실 파트너에게 음모에 관해 물을 경우 파트너도 그의 것에 대한 의견을 묻는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고환 털을 다듬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데 결론은 항상 여성에게 유리하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커플 사이에 많이 할수록 성적 기호에 대한 대화도 시작할 있게 한다. 그러다 상대의 의견이 불편할 때엔 그에게 그렇다고 사실대로 이야기하고 조정하면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상대의 취향에 맞추는 편이다.

그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음모의 , 혹은 모양과 관련해 특별한 취향이 없었다. 그래서 사귀는 사람이 없을 때는 음모를 각양각색으로 가꾼다. 나의 음모는 항상 직접적으로 섹스와 연관이 있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다른 부위의 체모는 모두 제모를 한다. 물론 체모를 자연스럽게 자라도록 두는 여성도 지지한다. 나처럼 제모하는 편을 택하는 여성도 물론 지지한다. 당신의 체모를 어떻게 가꿀지는 당신 스스로 정하도록 하라!

반면 음모는 나의 섹슈얼리티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의 섹슈얼리티는 파트너와 내가 완전히 서로의 몸에 빠져 하나가 같은 경지에 올랐을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상대에게 음모 가꾸는 법을 일임하는 약간의 복종 같은 행위는 나를 흥분하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예정이다. 그것은 내가 좋아하는 파워 게임이고 그와 나의 관계를 더욱더 끈끈하게 해주는 일종의 섹시한 플레이기 때문이다. 킹크(Kink) 다른 은밀한 섹스 행위에 관한 대화처럼, 음모에 관한 대화는 내가 어느 정도 친밀감을 형성한 파트너하고만 나눈다. 아무에게나 아래쪽의 체모가 어떤 모양이었으면 좋겠는지 묻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모두에게 장려하는 것도 아니다. 모든 여성은 자신의 체모를 어떻게 가꿀지 스스로 결정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이 몸의 자주성을 남에게 줘버리는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계산된 놀이 하나라고 생각한다. 상호 합의에 의한 BDSM 관계에서의 복종자(Submission) 성적 흥분을 위해 파트너에게 주도권을 넘겨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음모의 형태에 대한 결정권을 파트너에게 넘겨주는 것이다. 선택은 여전히 나의 것이다. 그리고 나에겐 그것이 바로 내게 힘을 주고 엄청나게 섹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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