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선애·김성신의 북톡카톡] 식물은 평생의 친구가 되어 준다는 ‘지킬의 정원’

[홍선애·김성신의 북톡카톡] 식물은 평생의 친구가 되어 준다는 ‘지킬의 정원’

스포츠경향 2019-09-15 13:59:00 신고

intro

‘북톡카톡 시즌2’의 히로인 홍선애. 그녀의 직업은 프리랜서 아나운서다. 경제와 건강, 그리고 교양 분야가 그녀의 전문영역이다. 방송인으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지만, 카메라 앵글 밖에서의 홍선애는 어처구니없을 만큼의 고지식함과 독서에 관한 한 가장 순수한 열정을 가진, 조금 엉뚱한 청춘이기도 하다. 톡방의 주인장 김성신의 직업은 출판평론가다. 방송과 강연, 집필 등 온갖 수단을 통해 책의 흥미로움을 세상에 전하고 있다. 그는 늘 재미를 찾는다. 책에 관한 격의 없는 수다를 서평으로 기록해 보자는 ‘북톡카톡’ 칼럼도 그의 아이디어다. 책읽기가 연애보다 훨씬 재미있다는 아가씨 홍선애. 꽃중년을 자처하는 수다쟁이 아저씨 김성신. 두 사람의 즐거운 책 수다, 북톡카톡 백서른여섯 번째 이야기는 ‘지킬의 정원’(거트루드 지킬 글·그림 / 이승민 옮김 / 정은문고)이다.

성신:간혹 ‘오래된 새 책’을 만날 때가 있는데….

선애:‘오래된 새 책’은 박균호 선생님 저서 아니에요? 절판된 책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성신:맞아! 그런데 내가 말하는 ‘오래된 새 책’은, 저자가 아주 오래전에 썼지만 지금 나온 책을 뜻하는 거야.

선애:아주 간혹 오래된 책이 새로 출간되기도 하죠. 그중 어떤 책이 기억나세요?

성신:‘La Voyage d’Orient’ 우리나라에서는 2005년에 ‘르 코르뷔지에의 동방기행’이라는 제목으로 나왔지.

선애:르 코르뷔지에라면 현대 건축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잖아요. 어떤 책이죠?

성신:1911년 당시 스물네 살이던 르 코르뷔지에가 유럽의 여러 나라를 돌아 콘스탄티노플까지 갔던 여행에서 보고 느낀 것을 쓴 여행기야.

선애:그런 책도 있어요?

성신:우리나라에서는 2005년에 초역됐다가 지금은 절판되고 없어.

선애:헌책방에서라도 구해야겠어요. 소장 가치가 있겠어요.

성신:그런데 ‘동방기행’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어.

선애:어떤?

성신:르 코르뷔지에가 이 책을 탈고한 것은. 1914년이야.

선애:1914년이면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진 해잖아요.

성신:그렇지. 그래서 출간을 못하게 된 거지.

선애:그럼 전쟁이 끝나고 나왔나요?

성신:아니! 르 코르뷔지에가 이 원고를 잊었었는지, 아니면 시간이 지나 버려서 세상에 내놓기 적당치 않다고 판단했는지 확실치는 않지만, 그 당시에는 책으로 나오지 않았어.

선애:그럼 언제 나오는데요?

성신:그가 세상을 떠난 1965년에 이 원고가 책으로 나와. 그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이 원고가 나왔던 모양이야.

선애:쓰고 나서 무려 51년 만에 책이 된 거네요.

성신:그뿐만 아니야! 이 책이 프랑스에서 우리나라로 건너오기까지 또 40년이 걸렸어. 2005년에 처음으로 번역 출간됐으니까!

선애:그럼 르 코르뷔지에로부터 우리에게 오는 데까지 무려 91년이나 걸린 거네요. 엄청나네요.

성신:그렇지.

선애:말 그대로 ‘오래된 새 책’이군요.

성신:이와 비슷한 책을 최근에 또 발견했지.

선애:와! 어떤 책인데요?

성신:거트루드 지킬이 쓴 에세이 ‘지킬의 정원’.

선애:이건 쓴 지 몇 년이나 됐는데요?

성신:지킬 여사는 1843년에 태어나서 1932년에 세상을 떠났거든, 이 책은 73세가 되던 1908년 영국에서 나왔어.

선애:이 책이 한국에서는 최근에 나왔다고요? 그럼 우리에게 오는 데 111년이 걸린 거네요.

성신:그렇지!

선애:어떤 내용인가요?

성신:정원가로 사는 동안 영국을 비롯해 유럽과 미국에 무려 400개의 정원을 만들었다고 하지. 그런데 워낙 뛰어난 작품이 많기도 하고, 아무튼 영국의 정원은 지킬 등장 전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해.

선애:영국은 ‘정원의 나라’라고도 하잖아요. 거트루드 지킬은 영국에 그런 명성이 생기도록 공헌한 인물이군요. 그런데 왜 이 유명한 사람의 책을 우리는 지금에야 볼 수 있는 걸까요?

성신:한국인은 그동안 정원을 가꿀 만한 정신적인 여유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게다가 지금은 절반 이상의 국민이 아파트에서 사니까.

선애:지금도 그런 마음의 여유를 가진 사람은 없잖아요. 그렇다면 왜 지금은 나올 수 있게 됐죠? 뭐가 달라진 거죠?

성신:촛불혁명으로 우리는 단지 권력의 부도덕함만을 심판한 것이 아닌 거야. 물질만능주의나 효율지상주의 같은, 비인간적인 삶의 방식을 성찰하고 반성하는 과정도 더불어 있는 거지.

선애:사회학적으로 보면 그렇게 연결되는 거군요. 그러니까 사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통해 인간을 인간스럽게 만드는 것들을 우리가 다시 찾게 됐다? 정원도 그런 것 중에 하나다?

성신:그렇지! 그렇게 해석할 수 있겠지.

선애:납득이 되네요. 그러고 보니 제 주위에서도 정원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어요. 아파트 베란다에서 다들 화초라도 키우고 싶어 하죠. ‘지킬의 정원’ 같은 책을 보면 막 사고 싶어지는 것에도 이런 사회적 배경이 있는 거고요.

성신:원래 결핍이 욕망을 만들잖아.^^

선애:결핍을 감각하는 수준이 높아진 것이군요. 그래서 욕망의 수준도 높아지는 것이고요. ‘지킬의 정원’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어요?

성신:지킬은 원래 화가였고, 자수 전문가였기도 했는데, 서른 후반부터 고도 근시 때문에 시력이 극도로 나빠져서, 자신의 예술적 영역을 정원으로 옮겼다고 해.

선애:핸디캡을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하는 데 활용한 것이군요.

성신:그렇지. 눈의 초점 거리가 불과 5㎝밖에 되지 않았다고 하거든. 그래서 청각이 아주 예민해졌는데, 어느 정도냐면…,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 소리로 가까이에 무슨 나무가 서 있는지 거의 매번 맞힐 수 있었다고 해. 같은 나무라고 해도 나뭇잎 질감이 더 단단해지고 마르기 때문에 봄철 소리와 가을철 소리가 한참 다르다는 거야.

선애:그런 이야기가 이 책 속에 들어 있다는 거죠? 아름다운 정원과 아름다운 인생이야기가 감동적으로 어우러진 책이지 않을까 짐작이 가네요.

성신:정확한 짐작! 정원을 가꾸고 창조하는 이야기지만, 인간이 아름다움을 예민하게 감각하는 이야기로도 읽히고, 그런데 결국 인생의 행복을 어떻게 만들고 누리는지, 그런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거든.

선애:진정으로 좋은 삶을 살기 위한 사람의 태도에 관한 책으로도 읽을 수 있겠네요.

성신:꽃 한 묶음을 보려고 무려 7년을 기르는 인내. 아무리 배우려고 애써도 어차피 다 알 수는 없으니, 그저 끝까지 배워 가면 된다고 마음먹는 여유. 살아서 늘 성장해 가는 모든 것들을 예쁘게 여기는 마음….

선애:맞아요. 좋은 삶은 철학과 태도의 문제죠. 얼마나 가졌느냐의 문제가 아니라요.

성신:식물과 친해지면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

선애:가령 어떤?

성신:관심을 가지되 집착하지 않는 법 같은 것! 인간관계의 제1원칙이잖아.

선애:ㅎㅎㅎ그러고 보니 식물도 지나치게 관심을 가지면 죽죠. 물이나 영양제를 너무 많이 주게 되니까요. 손을 탄다고 하죠?

성신:모든 사람의 관계가 그렇잖아. 얼마나 가깝냐가 아니라, 얼마나 적당한 거리냐가 관계의 지속성을 만드니까. 우리가 정원으로부터 그리고 식물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자연의 순리지.

선애:그러니 어려서부터 정원에서 식물들을 보고 가꾸며 그런 마음을 가지면 얼마나 좋겠어요.

성신:세상을 이롭게 할 훌륭한 인격이란 그렇게 갖추는 거지!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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