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안 해본)경험을 만듭니다

(당신이 안 해본)경험을 만듭니다

노블레스 2019-10-19 17:00:00 신고

서울 서교동에 위치한 놀공발전소(이하 놀공). 문을 열자마자 여느 회사와는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직원 열댓 명이 이곳저곳에 서넛씩 모여 자유롭게 회의를 하고 있다. 분위기? 떠들썩하다. 눈을 돌려보니 사무실 한편에 위치한 주방엔 과일과 과자, 주스, 커피 등이 쌓여 있다. 벽면의 장식장엔 보드게임 수십 개가 보인다. 책장엔 소설부터 철학 서적, 만화책 등이 수북하다. 그런데 여기가 회사냐고? 어엿한 회사다. 하지만 기존 일터와는 조금 다르다. 일하는 지향점이 달라서다. 이런 걸 어디서 봤더라? 구글이다. 언젠가 저녁 뉴스에서 소개한 구글 사무실에서다. 그때 이곳의 피터 리(Peter Lee) 공동대표가 말을 건다. “정리를 해도 잘 안 되네요.”
놀공은 뉴욕에서 20년간 게임 회사와 게임 학교를 세우며 화제를 일으킨 피터 리가 2009년 서울에 세운 회사다. 그는 “여기엔 사장이나 직원이 따로 없고, 개인이 바로 회사”라고 말한다. 또 “더 중요한 건 기존 회사처럼 무한 경쟁도 없고, 놀듯이 일하며 업무를 한다”고 덧붙인다. 그래서인지 이곳 직원들은 직책도 없다. 대신 ‘잠재력’이나 ‘잉여력’, ‘초자력’, ‘검색력’, ‘감화력’ 등의 담당 분야가 있으며 직함 대신 모두 이름 뒤에 상대를 공경한다는 의미에서 ‘공(公)’을 붙인다. 피터 리 대표도 피터 공으로 불린다.
도대체 무슨 회사일까? 피터 리는 “우리가 하는 일을 말로 설명하는 게 참으로 힘들다”라고 말한다. 그러곤 “교육과 문화 쪽 활동을 하며 ‘게임’이라는 방법을 통해 우리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을 한다고 할까요?”라고 답한다. 놀공은 기업으로서 HR 교육 지원을 한다. 또 기업 마케팅 기법을 개발해 지원하기도 하고, 게임 이론과 게임 프로그램으로 기업 가치를 구성원에게 알리는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그간 삼성과 현대, 미래에셋 등의 대기업과 게임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독일문화원과 함께 괴테의 <파우스트>를 게임을 통한 놀이 프로젝트로 개발하기도 했다. 쉽게 말해 놀이 프로그램을 창출해 필요한 소비자에게 맞춤형으로 공급하는 것.
이들의 대표작 중 하나인 ‘파우스트 되기(Being Faust)’는 괴테가 쓴 고전 <파우스트>를 체험형 오프라인 게임으로 만든 것이다. 이미 독일과 체코, 헝가리, 리투아니아, 중국, 홍콩, 일본, 필리핀 등에도 소개됐다. “파우스트는 악마(메피스토펠레스)와 거래를 하잖아요. 이 게임은 SNS에 등록된 친구를 팔아 돈을 얻는 것으로 시작해요. 참가자들은 이 가상의 돈으로 자신의 가치에 부합하는 <파우스트> 속 문장을 구매해 점수를 얻죠. 처음엔 친구를 팔 때 망설이지만 게임이 진행될수록 점점 빠르게 돈과 친구를 맞바꿉니다.”
하지만 이들은 단순히 프로그램 공급자를 표방하진 않는다. 프로그램 공급자가 되어버리면 수주를 받기 위해 피 터지게 경쟁해야 하기 때문. 그래서 아예 목표점을 ‘비경쟁’으로 삼았다. “놀공은 아티스트 집단이에요. 우리만 할 수 있는 걸 하죠. 그래서 경쟁하지 않아요. 그게 철학이고요. 그 때문에 홍보물도 만들지 않아요. 중요한 건 다른 회사에서 대체할 수 없는 우리만의 뭔가를 창조하는 것입니다.”
그럼 놀공의 이런 독특한 틀을 만든 피터 리는 어떤 사람일까? 그는 미국 뉴욕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한 후 게임을 ‘가장 순수한 매체’라고 여기며, 1999년 유대인 친구와 ‘게임랩(Game Lab)’이라는 회사를 세웠다. 당시 이들이 만든 ‘다이너 대시(Diner Dash)’는 미국 캐주얼 게임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며 회사를 크게 성장시켰다. 2006년엔 뉴욕에서 ‘컴 아웃 앤 플레이 페스티벌(Come Out & Play Festival)’이라는 ‘빅게임’ 페스티벌도 개최했다. 빅게임? 이는 사람이 많이 참여해 게임을 한다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다. 많은 사람이 모여 지하철에서 ‘마피아 게임’을 하고, 타임스스퀘어 한복판에서 줄넘기도 한다. 빅게임은 지금도 뉴욕과 캘리포니아 등지에선 연례행사로 열린다. 그런가 하면 2009년엔 비영리 게임 연구소를 설립, 몇몇 사람과 학업 과정 전체에 게임 이론을 적용한 ‘퀘스트 투 런(Quest to Learn)’이라는 공립 중·고등학교를 뉴욕에 세웠다. 이 학교는 일반 학교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기말고사를 ‘끝판왕(Boss Level)’이라 부르는 등 독특한 커리큘럼을 따른다. 이 학교는 2011년 시카고에도 개교하는 등 현지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한데 문제가 생겼다. 사업과 커리어는 나날이 승승장구했지만, 피터 리 자신은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은 것. 그는 미국 생활 당시 벌인 다양한 일이 자신의 능력으로 이룬 건지, 주변의 훌륭한 이들 덕분인지 늘 궁금했다. 그 생각의 끝? 바로 한국행이었다. “사실 미국에선 제가 할 일이 별로 없었어요. 이미 다 갖춰져 있거든요. 제가 한국에 온 이유도 그래서예요. 이곳엔 아직 ‘벽’이 많잖아요. 게임을 단순히 게임으로만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해 제가 바꿔나갈 수 있는 게 많다고 봤어요. 벽을 하나하나 깨부순다고 할까요? 그러면서 세상에 제 흔적을 새길 수 있다고 생각했죠. 또 하나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할 수 있는 회사와 문화를 만들어보자는 결심 때문이었어요. 규모보단 환경과 작업에 집중하며 성장하는 회사를 만들고 싶었죠. 그게 놀공이에요.”




경영자가 되어 기업을 운영해보는 게임 ‘모막’.

이렇게 ‘게임과 교육, 문화를 통해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취지로 세운 놀공은 현재 기업 창의 교육과 어린이 교육, 한국판 빅게임 페스티벌인 ‘더놀자페스티벌’, ‘놀공클래식’ 등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들의 사업 아이템을 ‘게임 기반의 학습’이라고만 보면 곤란하다. 기업, 성인 교육, 페스티벌 등에 이들만의 빅게임을 융합해 새로운 게임 프로젝트를 창조한다. 특히 기업 창의 교육의 경우 각 기업에서 교육을 의뢰하면 그에 맞춰 원점에서 게임을 만드는 식. 지금껏 구성원들이 직접 경영자가 되어 기업을 운영하는 게임 ‘모막(MoMAK)’과 팀별로 주어진 물건의 속성과 기능을 함께 분석하고 다른 물건과의 관계를 탐색하는 ‘팅커링 아카데미(Tinkering Academy)’ 등이 큰 사랑을 받았다.
“사람들이 우리가 만드는 경험을 통해 지금까지 못해본 말과 행동 등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해요. 실제로도 그런 피드백을 받고 있고요. 그것들이 쌓여 개인이 변하고, 사회가 변하고, 세상이 변한다고 봐요. 사람들이 우리 게임을 경험한 후 “내가 이럴 줄 몰랐는데”라고 말할 때 가장 기쁘죠. 덧붙여 개인적으로 전 사업가라기보다는 창작자예요. 새로운 걸 만드는 게 목표고, 죽을 때까지 현역이고 싶죠. 그래서 제가 계속 일할 수 있고, 직원들도 긴 시간을 보고 일할 수 있는 회사와 환경을 만들고 싶어요.” 어떤가? 놀공의 게임을 직접 경험해보고 싶지 않은가?
10월 12일부터 11월 18일까지, 서울 DDP 갤러리문에서 열리는 <오픈 큐레이팅>에선 북한의 장마당에서 모티브를 얻은 ‘수남, 장마당’이라는 놀공의 새로운 체험형 게임을 소개한다. 세상의 이름 없는 다양한 경험을 직접 해보고 싶은 이라면 꼭 한번 참여해보자.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사진 김제원(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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