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브릭스 2019-11-04 11:22:38 신고

여행 매거진 BRICKS Life

책과 책방 특집호 - 이 계절의 책 #2

책방 페브레로에서 고른 이 계절의 책 :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한수희 글 / 서평화 그림

 선선한 바람이 부는 여름의 끝에서 책방의 손님들은 ‘가볍게 읽을 책이 없나요?’라는 질문을 마치 짠 듯 해왔다. 웃고 있지만 지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가볍게 읽을 책 몇 권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 질문과 맞물려 나는 당시 쉼에 대한 관심으로 달마다 연재하는 매거진에 〈지치지 않고 오랫동안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한 책 3권〉이라는 주제를 썼다. 가을을 맞이하기 전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지금까지 직장에서 버티던 힘이 서서히 고갈되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고, 프리랜서 친구는 더 이상 애쓰며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을 했다. 짧지만 강렬한 여름이 지나고 우리는 지친 몸을 달랠 시간이 필요한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쉬다가도 불안한 마음에 벌떡 일어나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초조해 하는 데서 벗어나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고 그저 편히 누워 읽을 수 있는 책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는 그렇게 내 손에 들어와 시시각각 변해가던 지친 마음을 다독거려 주었다. 저자는 직업의 특성상 집에서 글을 쓰고 집안일도 하며 보낸다. 쳇바퀴가 돌아가듯 늘 같은 일상을 보내면서도 좋은 날과 그렇지 않은 날 모두를 덤덤하게 담은, 마흔이 넘어서도 좋아하는 일을 해나가는 이 이야기가 무척 건강하게 다가왔다.

 저자는 이 나이가 되면 지금껏 무리하며 살아왔다는 걸 바로 깨닫게 된다며 지금은 그걸 알기에 “한 바퀴 더 달릴 수 있을 것 같을 때 멈춘다.”라고 했다. 오랫동안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선 전력을 다한 만큼 휴식도 필요하다, 지금 비축해둔 에너지는 다음 작업을 할 때 더 많은 힘이 된다, 그런 말이 오랫동안 남았다.

 요즘은 사람들을 만나면 무리하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처음엔 복잡한 마음을 달래보고자 이 책을 읽었다. 그런데 시간을 내어 주변을 산책하고 화분에 물을 주기도 하며, 글을 쓰다 동시에 빨래를 널기도 한다는 책 속의 밋밋한 일상이 지금의 나와 다르지 않아 나는 곧 이 책에 애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운이 좋아 글 쓰는 일을 시작했고, 밥벌이로는 힘들더라도 어느 정도 나의 삶에 비집고 들어와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 나이가 들어서도 건강한 손목을 가지고 언제나 원목 테이블에 앉아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좋아하는 일이 말 그대로 일이 되고 무리를 하는 순간, 시련은 반드시 오기 마련이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도 마음이 너덜해지는 순간이 온다. 그래서 잠시 일에서 벗어나 있으면, ‘지금 이래도 되는 걸까?’ ‘일이 많이 들어올 때 더 열심히 더 많이 해야 하는 게 아닐까?’ 불안해진다. 

 저자는 자신을 몰아세우지 않는다. 지금까지 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멍하니 티비를 보며 머리를 식히는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이것을 ‘중요하지 않지만 필요한 시간’이라고 말한다. 집에서 일을 할 때 빨래가 끝났다는 알림에도 방해를 받는 나와 달리 저자는 오히려 중간에 집안일도 할 수 있으니 아주 좋다고 한다. 이 건강함, 닮고 싶다.

 지금 느끼는 이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오히려 일과 일상의 균형을 망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나에게 정말 필요한 힘은 더욱 힘든 순간이 왔을 때 오히려 계속 해나갈 수 있는 힘, 즉 기본기를 갖추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내가 나를 지치게 만들지는 말아야지. 그래서 과감히 자리에서 일어나 산책을 나가기도 한다. 물 한 잔 마시며 숨을 고르기도 하고 원고 앞에서 잠시 시간을 두기도 한다. 다가오는 마감일을 알면서도 미루고 미루다 찝찝한 마음으로 하루를 망치는 것보다 잠시 시간을 두고 다른 일을 하다 다시 그 일에 집중을 하는 하루, 휴식 할 때는 절대 일 생각은 하지 않고 쉴 때 제대로 쉬는 저자의 무리하지 않는 이야기.

“잠은 충분히 자고, 욕심 부리지 않고 하루에 중요한 일 두어 가지만 처치하며, 마감일은 스스로 이틀 정도 앞당겨 둔다. 오늘 다 끝내고 내일은 노는 게 아니라, 오늘도 즐겁게 일하고 내일도 즐겁게 일하는 시스템을 만든다.” - 79p

 오랫동안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자신만의 루틴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하던 일이 막히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산책을 나서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여행을 간다. 애쓰지 않고도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꾸준히 일하기 위해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장거리를 뛸 준비를 한다.

 나는 언제나 무조건 열심히 하고 ‘잘’해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한계는 뛰어넘어야 하는 것인 줄 알고 살았다. 하지만 꾸준함에는 멀리 보는 시야가 중요했다. 이제 무리하지 않고 살고 싶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뙤약볕에 그을린 몸과 정신을 더욱 단단히 여물게 한 뒤 다음 계절을 맞이하고 싶다. 언제나 만 원 남짓한 책으로 다른 이의 삶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글/사진 정유진

김해 매거진 북큐레이팅 연재 및 글 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김해 지내동 페브레로

https://www.instagram.com/febbook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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