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울뿐인 변화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호칭만 바뀌고 가치관이 바뀌지 않으면 관계만 어색해지기 때문입니다. 실질적인 변화 없이 조직 내 질서만 해친다는 불만도 터져 나옵니다. 결국 몇몇 기업은 직급 호칭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평적 호칭 문화를 도입하려는 기업은 여전히 많습니다. 특히 사내 분위기를 다져가는 스타트업에서 이런 시도를 자주 찾아볼 수 있습니다.
20년차 개발자가 8비트 컴퓨터로 프로그래밍을 처음 접했다고 말하자 3년차 후배 개발자가 놀라워하는 모습에서 세대가 다르다는 것이 느껴졌으나, 두 개발자 사이에 세대 차이는 있어도 단절은 없었습니다. 인터뷰는 자연스럽게 ‘호칭 문화’를 중심으로 진행됐습니다.
대학 입학 몇 달 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한 김 씨는 여러 회사를 경험했습니다.
신입 개발자 시절에는 실력 있는 선배들이 모인 기업에 가고 싶었다고 합니다. 후배가 많아질 연차가 된 뒤로는 서로 배우는 문화를 가진 회사를 찾아다녔다고 하네요.
선배 입장에서도 수직적인 환경이 나보다 어린 사람한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니까 안 좋은 거거든요. ‘나는 선배니까 후배보다 항상 많이 알고 뛰어나다’는 확신을 허물 때 더 많이 성장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임 씨는 “호칭이 관계에 주는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 정훈 님의 말을 들으니 생각이 달라졌다”면서 의견을 더했습니다. 그는 수평적 호칭 문화 덕에 동료 간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해지고, 연차가 낮은 직원들도 자기 일에 더욱 책임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나이도 적고 경력도 길지 않지만 다른 분들이 짠 코드에 가감 없이 피드백을 합니다. 대기업에 비하면 조직이 작아서 마케팅, 기획, 디자인 등 내 전문분야가 아닌 영역에도 의견을 낼 수 있어요. 그만큼 책임감도 생기니 일할 때 동기부여가 잘 되는 것 같아요.”
“저는 경력이 실력을 담보한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회사에서는 당연히 경력에 맞는 실력을 요구하고 대우를 하죠. 어디 가서 ‘20년차 개발자예요’라고 말했을 때 부끄럽지 않은, 연차에 걸맞은 사람이 되는 게 목표입니다.”(김정훈 씨)
김가영 기자 kimga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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