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한테 ‘선배 대접’ 하지 말라는 20년차 개발자

소다 2019.11.09 19:00

기업 내 호칭 문화가 변화하고 있습니다. 2000년 CJ그룹이 ‘OO님’이라고 부르는 문화를 처음으로 도입했고 이후 SK, 삼성전자, 카카오, 네이버 등도 수평적인 호칭 문화를 적용했습니다.

허울뿐인 변화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호칭만 바뀌고 가치관이 바뀌지 않으면 관계만 어색해지기 때문입니다. 실질적인 변화 없이 조직 내 질서만 해친다는 불만도 터져 나옵니다. 결국 몇몇 기업은 직급 호칭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평적 호칭 문화를 도입하려는 기업은 여전히 많습니다. 특히 사내 분위기를 다져가는 스타트업에서 이런 시도를 자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명함 관리 앱 리멤버를 운영하는 ‘드라마앤컴퍼니’도 직급과 관계없이 서로를 ‘OO님’으로 부른다고 합니다. 최근 ‘세대 차이’를 주제로 인터뷰하기 위해 드라마앤컴퍼니 개발자 두 명을 만났습니다. 각각 3년차, 20년차인 이들은 일반적인 회사 선후배 관계와는 달랐습니다.

20년차 개발자가 8비트 컴퓨터로 프로그래밍을 처음 접했다고 말하자 3년차 후배 개발자가 놀라워하는 모습에서 세대가 다르다는 것이 느껴졌으나, 두 개발자 사이에 세대 차이는 있어도 단절은 없었습니다. 인터뷰는 자연스럽게 ‘호칭 문화’를 중심으로 진행됐습니다.


20년차 개발자 “근엄한 선배보다는...”
임성민 개발자(왼쪽), 김정훈 개발자/사진=권혁성 PD hskwon@donga.com
서버 개발자로 일하는 김정훈 씨(39)는 “수직적인 호칭 문화가 있는 회사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라고 말합니다.

대학 입학 몇 달 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한 김 씨는 여러 회사를 경험했습니다.

신입 개발자 시절에는 실력 있는 선배들이 모인 기업에 가고 싶었다고 합니다. 후배가 많아질 연차가 된 뒤로는 서로 배우는 문화를 가진 회사를 찾아다녔다고 하네요.

사진=권혁성 PD hskwon@donga.com
“호칭 문제를 별 것 아니라고 볼 수도 있지만 저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수직적인 분위기에서는 후배가 선배한테 자기 의견을 말하기가 불편하잖아요. 더 나은 방법이 있으면 후배도 편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말이죠.

선배 입장에서도 수직적인 환경이 나보다 어린 사람한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니까 안 좋은 거거든요. ‘나는 선배니까 후배보다 항상 많이 알고 뛰어나다’는 확신을 허물 때 더 많이 성장할 수 있는 것 같아요.”


3년차 개발자 “수평적 호칭 덕에 책임감 커져”
사진=권혁성 PD hskwon@donga.com
2017년 병역특례로 입사한 3년차 개발자 임성민 씨(23)는 수평적인 분위기가 익숙합니다.

임 씨는 “호칭이 관계에 주는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 정훈 님의 말을 들으니 생각이 달라졌다”면서 의견을 더했습니다. 그는 수평적 호칭 문화 덕에 동료 간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해지고, 연차가 낮은 직원들도 자기 일에 더욱 책임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나이도 적고 경력도 길지 않지만 다른 분들이 짠 코드에 가감 없이 피드백을 합니다. 대기업에 비하면 조직이 작아서 마케팅, 기획, 디자인 등 내 전문분야가 아닌 영역에도 의견을 낼 수 있어요. 그만큼 책임감도 생기니 일할 때 동기부여가 잘 되는 것 같아요.”

소통은 수평적으로, 실력은 연차에 걸맞게
드라마앤컴퍼니 제공
연차와 상관 없이 격의 없는 소통을 지향하는 김 씨이지만 자신에게 붙은 수식어 ‘O년차’의 무게를 지키는 것에 대한 고민은 많습니다. 그는 한 달에 한 번씩 사내에서 토크콘서트를 진행합니다. 특정 기술 키워드에 대해서 소개하고 지식을 공유하는 자리인데요. 자율 참여로 진행되는 김 씨의 토크콘서트는 자기계발에 관심 많은 개발자 사이에서 인기가 좋다고 합니다.

“저는 경력이 실력을 담보한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회사에서는 당연히 경력에 맞는 실력을 요구하고 대우를 하죠. 어디 가서 ‘20년차 개발자예요’라고 말했을 때 부끄럽지 않은, 연차에 걸맞은 사람이 되는 게 목표입니다.”(김정훈 씨)


김가영 기자 kimga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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