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born to be an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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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레스 2019-11-17 17:00:00 신고

피에트로 마룰로(Pietro Marullo)의 공연 <난파선-멸종 생물 목록> 프레스콜이 있었던 10월 1일은 기나긴 해외 출장에서 돌아온 날이었다. 새벽 비행기로 귀국한 터라 피로는 쌓일 대로 쌓인 상태. 그러나 신예 안무가의 화제작을 놓칠 수 없었기에 프레스콜 장소로 향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오길 잘했다’, 그뿐. 발레리나처럼 무대와 객석을 휘젓는 거대한 오브제와 6명의 무용수가 선보이는 자유로운 움직임은 8년 전 뉴욕에서 처음 현대무용을 보고 느낀 짜릿함 같은 것이었다. 하이라이트 20분만 공개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가 왜 유럽의 신성이라 불리는지 알 수 있었다.
예술 작품은 창작자를 닮곤 한다. <난파선-멸종 생물 목록>의 주제는 난민. 무겁다. 그렇기에 피에트로 마룰로도 진지한 사람이라 짐작했지만 빈티지 닥터마틴에 차이니스 재킷을 매치한 차림으로 등장해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우스꽝스러운 포즈를 거리낌 없이 소화하며 어색함이 감돌던 촬영장 분위기를 단숨에 유쾌하게 바꿔놓았다. “공연이 주는 느낌과는 사뭇 다르네요.” 지나가듯 던진 질문에도 “제가 유쾌한 사람으로 보인다는 건 당신이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죠. 저와 작품은 닮았지만 그 안에 관객이 각자의 모습을 투영할 수 있는 틈을 비워놓아요. 관객의 성격에 따라 작품이 달리 해석될 수 있도록. 제 공연에서 관객은 공동 창작자인 셈이죠” 라며 자신의 예술 철학을 담아 답하는 피에트로 마룰로. 그는 태생부터 아티스트다.
이탈리아 남부에서 태어난 피에트로 마룰로는 어릴 적 몸의 움직임에 매료돼 무용에 입문했다. 하늘로 뛰어올랐다가 다시 땅으로 착지하는 무용수들이 지구를 흔드는 것처럼 보였다고. 이내 벨기에로 건너가 무용을 공부했고 어느덧 ‘인시에미 이레알리 컴퍼니(Insiemi Irreali Company)’라는 무용단을 이끌 만큼 성장했다. 최근작인 <난파선-멸종 생물 목록>은 올 한 해에만 15건 이상 초청을 받았으며 이를 통해 유럽 현대무용 플랫폼 ‘에어로웨이브즈(Aerowaves-Dance Across Europe)’가 선정하는 ‘2018 올해의 안무가’에 이름을 올렸다. 빽빽한 이력에서 가장 놀라운 건 그가 지금까지 단 3개의 작품을 발표한 만 33세의 젊은 안무가란 점. 단숨에 스타 안무가로 부상한 것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피에트로 마룰로는 손사래를 치며 “라이징 스타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비결을 찾자면 유럽 그 자체랄까요? 유럽은 무용네트워크가 잘 구축돼 있거든요. 제가 그곳에서 태어나 활동했기에 좋은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해요.” 무대에 공연을 올릴 때마다 러브콜이 쏟아지니 이목을 모으는 게 익숙할 법도 한데 시종일관 호기심 어린 눈동자로 겸손한 태도를 보이는 그다.






<난파선-멸종 생물 목록> 프레스콜 장면.

마룰로와의 대화는 인터뷰라는 걸 잊게 할 만큼 순탄했고, 서로의 얼굴엔 끊임없이 미소가 번졌다. 웃음이 끊기는 순간은 오직 ‘작품’에 대해 말한 시간. <난파선-멸종 생물 목록>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 말을 멈추고 이내 심각한 표정으로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 꾹 다물었던 그의 입에선 이내 “작품을 대할 때면 진지해져요”라는 답변이 흘러나온다. “예술은 ‘난민’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해요. 특히 유럽의 정치나 경제계에선 난민을 이용해 사람들에게 더 큰 두려움을 심어주죠. 사실 우리 조상이 아프리카에서 온 난민일지 모르고 자손이 다른나라로 떠나 이민자가 될 수도 있는데 난민을 차별하게끔 유도해요. 저는 지금이 국가와 커뮤니티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한 과도기라고 생각해요. 한국도 예외는 아니고요. 이 시점에 변화의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자유를 가져오도록 돕는 게 예술의 역할 아닐까요?” 사뭇 진지한 답변에 예술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견해가 궁금해졌다. 한데 돌아온 반응은 “없어요. 예술은 해답을 제시하는 구글이나 정치가가 아니에요. 단지 무언가를 ‘상상’하고 ‘생각’하게 돕는 역할에 그칠 뿐이죠. 어떤 관객이 제 무용을 보고 충격을 받고 의문점을 느끼고, 그걸 바탕으로 무언가 실천한다면 예술의 역할을 다한 거라고 봐요.” 즉 다른 시각을 열어주는 게 예술이라는 말. 그의 공연을 보고 전율을 느낀 한 사람으로서 “그 소명을 다했네요. 제가 전율을 느낀 사람 중 하나니까요”라고 하니 “정말 좋네요”라는 솔직한 반응과 함께 뿌듯함을 내비쳤다.
마지막으로 현대무용 관람 팁을 알려달라 하자 “오늘 받은 질문 중 가장 어렵네요. 명확히 대답하기 어렵지만 역시 직접 체험해볼 것을 추천해요. 워크숍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해 현대무용수들과 어울려보면 온몸으로 현대무용을 느낄 수 있죠. 무용수를 무용수로 보지 않고 일반 사람으로 본다는 조건하에서요”라며 누구나 무용수가 될 수 있음을 당부했고, 대화는 자연스레 내년에 선보일 새 프로젝트로 옮겨갔다. “내년1월쯤, 현대 난민 캠프를 주제로 한 신작 를 발표할 예정이에요. 어릴 적 비눗방울 놀이를 자주 하곤 했는데, 동그란 방울이 ‘퐁’ 터지는 순간이 꽤나 인상 깊었죠. 원은 보호와 연결을 상징하는 동시에 분리의 역할까지 도맡아요. 원을 바탕 삼아 ‘경계’에 대해 더 깊이 파고들고 싶어요.”
“아시아에 처음 와보지만 낯설지 않아요. 그래서 제21회 서울세계무용축제 개막작 초청 제의를 받았을 때도 바로 수락했죠. 공연을 마친 후에도 좀 더 머물면서 한국의 모든 걸 눈에 담으려 해요.” 이 인터뷰 기사가 나갈 때쯤은 공연이 이미 막을 내린 뒤겠지만 첫인상이 좋은 만큼 더 성장한 그가 한국을 다시 찾을 날도 머지않은 듯싶다. 그의 두 번째 내한 소식이 들린다면 그때는 망설이지 말고 티케팅을 하자.

 

에디터 이효정(hyojeong@noblesse.com)
사진 김제원(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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