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의 한 끗을 브랜딩하다

‘불편함’의 한 끗을 브랜딩하다

ㅍㅍㅅㅅ 2019-11-18 11:01:53 신고

최근 경험한 가장 인상적인 브랜드

추상적인 질문을 구체적인 질문으로 가다듬어 보는 것은 더 질 높은 인사이트 얻어내는 좋은 방법 중 하나입니다. ‘좋은 브랜드는 무엇인가?’라는 어쩌면 주관적이고 추상적인 질문에 좀 더 삶의 결을 묻혀 ‘최근 3개월간 경험한 가장 인상적인 브랜드는 무엇이었나요?’라는 질문으로 바꿔 더 현실적인 영감을 얻는 것과 같은 이치죠.

최근 경험한 가장 인상적인 브랜드는 무엇이었나요?

이에 개인적인 답은 ‘에어팟’이었습니다. 애지중지 사용하던 뱅 앤 올룹슨 이어폰을 분실한 후 다음 옵션으로 선택한 것은 음향과 음질의 초점이 아닌 ‘선 없음’이 가져오는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추종이었죠.

에어팟은 단순히 선 없는 이어폰이 아니었습니다.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의 모습을 만들어냈죠.

애플 에어팟의 선 없음(wireless)을 통해 노래를 감상하며 편하게 러닝하는 것. 사무실에서 더 효과적으로 업무를 보고 혹은 몰래 음악 및 라디오 등의 은밀한 유희를 즐기는 것. 이어폰의 “줄 없음”이 의미하는 건 단순 하나의 불편함 제거 그 이상의 삶의 모습을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저에겐 그동안 없던 삶의 단면들이었죠.

다시 돌아와서 ‘좋은 브랜드는 무엇인가?’의 대답은 어쩌면 기존 업계가 제공하던 제품의 불편한 한 단면을 들춰내고 제거해 소비자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의 지평을 열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에어팟을 통해 즐길 수 있었던 것은 단순 듣기의 편함이 아닌. 러닝의 재미, 업무의 효율, 오피스에서의 일탈과 연결되었듯 말이죠.

 

불편함의 한 끗에 주목하다

어쩌면 제품의 사소한 불편한 한 끗을 제거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의 지평을 넓혀주는 것은 사업 전략에 있어 매우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습니다. 업계가 메인으로 주목하는 한 가지 방향성(가치)을 밀어붙이면서 어쩔 수 없이 파생되는 불편함이 있습니다. 물론 기존에는 사소한 것이었겠죠. 소비자가 감내하고 수용하는 사소한 불편함의 세부를 역으로 뒤집어 보면 나름의 강력한 브랜딩 메시지를 추출할 수 있는 것이죠. 측면공격이라 할까요.

기성의 유통업계에서 주목하지 않았던 새벽 배송을 실천한 것은 마켓컬리였습니다. 철저히 공급자 입장에서 결정되었던 불규칙한 배송 시간을 새벽으로 고정해 고객에게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 줄 수 있었죠. 고객이 주목하지 않았고 감내한 찰나의 불편함을 지적하고 혁신한 사례였습니다.

최근 애용하는 모바일 앱 중 하나는 튜터링입니다. 튜터링은 외국어 회화 스타트업인데, 온디맨드 방식(모바일 플랫폼)을 활용해 수강생과 외국어 튜터를 24시간 연결해 줄 수 있습니다. 정해진 시간의 전화 & 화상 수업이 아닌 원하고 싶은 시간에 앱에 접속해 대화 가능한 튜터와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입니다.

회화 시장의 불편함은 정해진 시간, 정해진 튜터로 인한 수업의 경직성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을 온디맨드 방식의 모바일 테크를 활용해 국내에서도 24시간 자유롭게 대화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주었죠.

전략의 다른 말은 선택입니다. 브랜딩 전략 역시 제품이 갖는 많은 특징 중 하나를 선별해 소비자 머릿속에 인식시키는 활동이죠. 쉽게 말해 제품이 고객에게 제시하는 단 하나의 매력 포인트를 짚어주는 것입니다.

하고 싶은 말이 아무리 많다 해도 메시지에는 우선순위를 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포인트를 정해줘야죠. 그 포인트가 정밀하고 실감 날수록 가치는 고객에게 깊게 인지될 수 있습니다. 그 관점에서 기성 제품과 서비스가 제공하는 사소한 페인 포인트를 찾아보는 것 역시 좋은 접근입니다.

사업의 방향이든 브랜딩 전략이든 고객이 기성 브랜드에 느끼는 페인 포인트, 즉 불편함의 사소한 한 단면을 건드려보는 것은 신생 브랜드에 있어 의미 있는 출발지점일 수 있죠. 더 좋은 것, 더 가성비 있는 것. 등의 상대적인 메시지보다 소비자의 은근한 불편함을 건드려주는 절대적인 메시지가 더 임팩트 있는 방법입니다.

 

불편함에 의미를 부여하면 철학이 된다

브랜드가 고객이 제품에 느끼는 신뢰의 표상이라 정의해보면 불편함을 제거해주는 브랜드 미션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브랜딩 전략일 수 있습니다. 그 방향성이 올바르다면 시간의 축적을 통해 나름의 철학이 만들어질 수도 있는 것이죠. 지금은 신화가 된 수많은 브랜드의 시작은 그 당시 고객 불편함의 한 끗을 지적한 브랜드인 경우가 많습니다.

예술적 오브제가 된 샤넬의 블랙 미니드레스 역시 그 기원은 당시 여성들의 복장 자율화였습니다. 대담하고 자유를 갈망한 가브리엘 샤넬은 당시 사교계 여성들이 즐겨 입는 불편하기 짝이 없고 거추장스러운 코르셋류의 치장을 극도로 싫어했습니다. 실용적이고 단순한 직감적인 멋을 통해 여타의 사교계 여성과 자신을 구분 짓고 싶어 했죠.

틀에 짜여 자신의 행동을 단속해야 했던 여성의 모습을 세련된 방식으로 해방시켜준 것이 바로 블랙 미니드레스였습니다. 꾸민 듯 안 꾸민듯한 이포트리스(effortless)한 프렌치 시크 패션의 대서막이었습니다.

샤넬의 블랙 미니드레스는 그 당시 여성의 신체를 자유롭게 했다.

‘불균형한 발에 새로운 균형을 창조한다’는 개념에서 유래한 뉴발란스는 1906년 미국 보스턴에서 발에 장애가 있거나 경찰, 소방관, 우체부 등 종일 서서 일하며 발에 무리가 가는 사람들을 위해 아치 서포트를 만드는 것에서부터 시작한 브랜드입니다. 신발이 가진 효용은 물론 기존 신발이 껴안은 나름이 불편함을 제거하고 초점을 둔 것이 바로 ‘새로운’ 균형이었던 것이죠.

닭이 얇은 발가락으로 큰 몸을 지탱하는 것에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아치 서포트는 뉴발란스만의 새로운 메시지가 되었습니다. 불편함을 주목해 자신의 브랜드 철학을 덧입힌 사례였죠. 특정 고객의 불편함을 해소하고자 했던 뉴발란스만의 브랜딩 미션은 결국 하나의 철학으로 굳어졌고. 여타 브랜드가 넘보지 못하는 나름의 성역을 구축해냈죠.

불편함을 제거해준다는 브랜드의 도덕적이고 인류 지향적 메시지는 시간이 축적될수록 그 메시지에 합당한 제품을 꺼내놓을 수만 있다면 나름의 철학을 구성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게 만약 하나의 철학으로 굳어진다면 제품은 하나의 오브제로 굳어지겠죠.

 

일할 때 가장 편한 여성 정장, 아르젠트

브랜드에 있어서 더 좋은 제품, 더 값싼 제품보다 의미 있는 방향은 더 다른 콘셉트입니다. 아르젠트(ARGENT)는 ‘일할 때 가장 편한 여성 정장’이라는 미션으로 2014년 실리콘밸리에서 설립된 여성 정장 브랜드입니다. 창업자 살리 크리스텐슨이 여성 정장에 주목한 방식은 편안함이었습니다.

실리콘밸리 IT 회사 출신인 그녀가 느끼는 정장의 가장 큰 단점은 불편함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입어야 하는 오피스웨어 특성상 편안함이 주가 되어야 하지만 정장의 목적상 편안함보다는 멋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죠.

하지만 의상의 자율화가 이뤄지는 유연한 오피스 트렌드에서 딱딱한 여성 정장이 설 자리는 매우 비좁았습니다. 종일 입는 오피스 패션의 특성상 굳이 불편한 정장을 찾을 이유가 없어져 버렸죠. 많은 정장 브랜드는 일거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업계가 제시하는 근본적인 불편함으로 초래한 위기의 상황에서 아르젠트가 제시한 해법은 입기 편한 여성 정장이었습니다.

아르젠트는 가장 편한 오피스룩에 집중했습니다.

구김이 잘 가지 않는 소재를 활용해 세탁에 편의성에 초점을 맞췄고, 커다란 안주머니를 의상의 곳곳에 활용해 휴대의 편의성을 혁신했습니다. 일상복보다 더 편한 정장의 모습을 그려내며 아르젠트는 여성 정장이 억누르는 여성의 불편한 이미지를 서서히 삭제시켜나갔죠.

그런 의미 있는 전략에 발맞추어 힐러리 클린턴, 구글, 아마존 등 각 기업의 TOP급의 여성 사업가들이 즐겨 입으면서 브랜드는 순식간에 바이럴 되었습니다. 불편함의 한 단면을 제거해 새로운 오피스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한 좋은 브랜딩 사례였습니다.

 

고객의 페인 포인트를 건드려라

기업의 브랜딩 메시지와 방향성을 결정하는 것은 앞으로의 2–3년, 길게는 10년 이상의 브랜드 콘셉트를 결정하는 꽤 무거운 일입니다. 그만큼 결정에 따른 부담이 큰 것도 사실이죠. 고객에게 정확하고 두드러지는 브랜드의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해선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무언가를 건드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게 바로 페인 포인트인 것이죠.

고객의 페인 포인트를 정확히 짚은 메시지의 콘셉트는 확고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목적성이 뚜렷하기 때문입니다. 고객의 불편함을 제거하고자 탄생한 브랜드의 경우 브랜딩의 방향성과 고객이 느끼는 기능적인 효익이 일치화하기도 하죠. 이유를 생각해보면 사실 그 브랜드는 특정 문제를 해결하고자 탄생했고,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메시지 방향 또한 그 문제에 초점을 두기 때문이죠.

물론 나이키의 “just do it”과 애플의 “Think different” 같은 멋있고 영감 넘치는 브랜딩 메시지가 부러울 때가 있겠지만 그 기업들은 메시지와 제품 간 소비자 인식을 일치화시키기 위해 천문학적인 금액을 쏟아부을 수 있는 여력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애매모호하고 정서적인 색채의 브랜딩 메시지가 더 멋있고 매력적인 이미지로 보일 수 있지만 결국 제시해주는 효용이 공허하다면 브랜드는 하나의 트렌드로 남을 것입니다.

좀 어색한 내러티브나 진정성이 결여된 브랜드 제안은 결코 소비자 마음에 가닿을 수 없습니다. 소비자가 원하는 혹은 무의식적으로 원하는 정확한 메시지를 결정하기 위해선 불편함의 한 부분을 짚어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브랜딩 전략일 수 있습니다.

원문: 밤은부드러워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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