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아와 허남훈, 고즈넉한 가옥에서 만난 두 사람

김모아와 허남훈, 고즈넉한 가옥에서 만난 두 사람

엘르 2019-11-18 15:00:00 신고

‘커플의 소리’ 김모아 작가와 허남훈 감독.

‘커플의 소리’ 김모아 작가와 허남훈 감독.

언덕길에 자리한 이화루애.

언덕길에 자리한 이화루애.

흔히 우리네 인생을 여행이나 영화에 비유한다. 그러나 이를 실제 삶에 적용해 실천할 생각은 잘 하지 못한다. 보편적인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매 순간 생생히 느끼고 반응하며 살기란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한다. 1년간 캠핑카를 타고 전국을 집 삼아 살았던 ‘밴라이프 프로젝트’를 비롯해, ‘이렇게 살아보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차곡차곡 현실로 실현하고 있는 프로젝트 팀 ‘커플의 소리’ 의 김모아 작가와 허남훈 감독. 10월 한 달간 머물게 된 집, 이화동에 자리한 복합문화공간 ‘이화루애’를 가득 채운 그들의 소리에 집중했다.

오가는 이들이 창밖으로 영상을 볼 수 있게 했다.

오가는 이들이 창밖으로 영상을 볼 수 있게 했다.

이화동의 풍경.

이화동의 풍경.

다섯 권의 책이 진열된 전시장.

다섯 권의 책이 진열된 전시장.


이 집에서 한 달간 살아볼 예정이라고. ‘#다른동네 살아보기’, 새로운 프로젝트인가 모아 일상과 여행의 경계를 허무는 게 우리 삶의 가치관이고, 그걸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예술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서울의 거주지를 벗어나 여행하듯 다른 동네에 살아보기로 했고, 첫 번째로 이화동에 머물게 됐다.
왜 이화동이었나 모아 서울인데 의외로 외국 여행자들이 많이 온다. 여행으로 느껴질 만한 서울의 다른 동네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었다. 우리가 지켜나가고 싶은 결이 좀 맞는 곳? 남훈 산책할 수 있는 성곽 길도 있고, 한국의 브로드웨이 대학로도 있고(웃음). 재미있는 거 같다. 낯선 동네에서 살아본다는 자체가 여러 가지 생각을 환기시킨다.
밴라이프 이후, 한 곳에서 살기 힘들어진 것 아닌가 남훈 그렇기도 하다. 반면 집이 너무 편하다. 밴라이프 프로젝트가 끝나자마자 평소 이상적이라 생각했던, 너무 살고 싶었던 집을 구해서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만족스럽지 않더라. 안 쓰는 공간도 많고. 그래서 과감하게 다른 곳으로 옮겼다. 좀 더 작은 집으로 옮겨 살고 있는데, 더욱 편하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밴라이프를 시작했던 것도, 나중에 진짜 오래도록 있고 싶은 곳을 찾기 위해서였다. 지난 1년은 제주를 오가며 살았더니 짐 싸고 풀기가 너무 자연스러워졌다.
1년간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살아본 경험은 어땠나(관련 프로젝트에 대한 김모아 작가의 연재 칼럼은 elle.co.kr에서 만날 수 있다) 남훈 좋았다. ‘제주에서 살아보기’는 많이들 하지 않나. 진짜 사는 게 아니라, 과연 서울에서 오가는 게 어떨까 궁금했다. 제주의 사계절, 좋은 날씨와 궂은 날씨도 다 봤다. 모아 여행인 듯, 삶인 듯 모호하게 제주를 오가면서 ‘여기 살면 이런 것이 좋겠다’ ‘불편하겠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좀 보이더라. 제주 여름보다 가을이 좋다는 것도 알게 됐고, 제주 사람들이 외지인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 거기 정착한 사람들이 몇 년이 되면 헛헛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는 자연의 색감도 알게 됐다. 밴라이프도 그렇고, 1년이 참 짧더라. 남훈 이곳에서의 한 달도 짧을 것 같다. 진짜 여행을 왔다 생각하고 머물러 보려고 한다. 한국에서 살아도 늘 여행하듯 최대한 이방인처럼 살려는 게 우리의 마인드다.
이곳에서 ‘생활연작 #일상이영화가되는순간’을 만들어나갈 계획이라고 모아 여행과 일상의 경계를 허물고 삶이 예술이 되면 좋겠다는 얘기를 하다가,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 자체가 영화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우리 일상에도 충분히 아름다운 순간이 많은데, 다 놓치고 살지 않나. 그런 생활의 단면을 엮어서 짧은 영화로 차곡차곡 기록하고 있다. 남훈 생활연작 프로젝트는 문학을 영상이랑 섞어보는 시도이기도 하다. 김작가가 쓰는 글이 내레이션으로 읽히면서, 문학을 들을 수 있게 하는 것? 보통 인스타그램 사진 아래 글을 쓰지만, 좀 더 우리만의 스타일로 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했다.
이곳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계획하고 있는 것은 남훈 이 집에 들어오면서부터 전시 준비, 아침에 일어나서 생활하는 것까지 모든 걸 기록하고 있다. 음악을 연주하는 것도 담아보고, 이곳의 일상을 영화적으로 표현해 보려 한다. 가장 중요한 건 전시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대화 나누고, 우리 작업에 대해 직접 피드백도 받아보고 싶다.
‘커플의 소리’를 잘 모르는 이들의 숱한 질문을 받게 될 텐데 모아 ‘이게 뭐예요?’ 하는 질문들(웃음). 누군가 ‘그래서 너네는 뭘 하는 거야?’라고 묻는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무엇’을 찾아가고 싶은 거다. 우리가 받은 영감을 예술적 형태의 결과물로 만들어가면서, 계속 좀 더 나은 질문을 하면서. 그러다 죽기 직전에는 정말 현명하고 좀 더 나은 질문을 하면서 가고 싶다고, 그 과정이 바로 우리의 작업이라고 최근에 둘이 대화하면서 생각했다. 남훈 대학교에 갈 때 전공을 선택하지만 그게 평생 직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지? 이렇게 사는 게 맞을까? 끝없이 질문을 하다 보면, 김작가의 말처럼 우리가 죽는 순간에 스스로에게 진짜 좋은 질문을 할 수 있고, 정답에 가까운 답을 낼 수 있지 않을까. 모아 우리 이름이 ‘커플의 소리’이지 않나. 말하고 싶고, 대화하고 싶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걸로 소리를 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실 거의 외치는 중이다(웃음). 살면서 어떤 정해진 틀을 따르고 싶지 않다. 가장 효율적인 것을 두고 그렇게 살라고 사회가 지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주체적으로 살고자 계속 질문을 던지고, 뭔가를 해내고 찾아가는 이런 과정이 작게나마 어디론가 번질 수 있지 않을까?

좋아하는 창가 자리에 앉은 김모아 작가.

좋아하는 창가 자리에 앉은 김모아 작가.

오래된 가옥을 수리해 만든 이화루애의 공간들. 스테이폴리오를 통해 머물 수 있다.

오래된 가옥을 수리해 만든 이화루애의 공간들. 스테이폴리오를 통해 머물 수 있다.

전시는 어떻게 꾸렸나 남훈 오래전부터 이런 오프라인 전시를 하고 싶었다. 북, 뮤직, 비디오 3개의 카테고리를 갖고 작은 공간이지만 나름 섹션을 분리해 놨다. 음악 같은 경우는 우리가 정식 싱글로 발매한 ‘Ring Ring Ring’ 한 곡만 반복되게 해놨는데, 헤드폰으로 잠시나마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북 공간에는 세 권의 책이 있는데, 그간의 작업을 사진집 형태로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있는 아날로그로 만들어놓았다. 그 옆에 있는 쓰여지지 않은 두 권의 책은 일종의 방명록처럼, 오가는 사람들의 생각이 담길 예정이다. 사람들의 손때 묻은 흔적 그 자체가 기록물이 될 거다. 모아 언뜻 작게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하나하나 오랫동안 공들여 준비한 작품들이다. TV에서는 생활연작 시리즈 40여 가지 영상이 나오고, 책을 펼치면 그 안에 우리가 했던 것들과 무엇을 말하는지 다 들어가 있다. 많은 것이 함축되고 응축돼 있는데, 감상자의 마음과 태도에 따라 이게 그냥 스칠 수도 있고, 오래 머물 수도 있는 전시란 생각이 든다. 음악도 그 한 곡을 오롯이 감상하려면 헤드폰을 끼고 3분 40초를 서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의도일 뿐, 어떻게 느끼고 가는지는 감상자의 마음에 달렸다.
사진집 편집과 제작부터 TV를 설치하고 포스터를 붙이는 일까지, 손수 준비한 전시를 바라보는 소감은 남훈 어제 혼자 전시를 준비하고 있는데, 영상 내레이션을 들으면서 울컥했다. 저런 생각을 했구나, 이런 이야기가 있었구나, 곱씹게 되더라.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모든 작업은 나중에 내가 보기 위해서다. 내가 간직하고 기억하려는 목적이 크다. 그런데 하드디스크에 쌓아둔 것이 너무 방대해서 들춰보기가 어렵다. 아날로그 시절의 문화가 진정 인간다운 문화라는 걸, 점점 더 느끼게 된다. 우리가 어릴 때는 사진 한 장 한 장 뽑아서 앨범을 만들고, 명절에 다같이 둘러보고 그러지 않았나. 책이나 영상으로 기록해 놓는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의미 있다. 모아 이번 한 달간의 기록도 나중에 책으로 묶여질 거다. 남훈 과거에는 책 하나 내고, 영상 하나 만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지금은 아니다. 발전된 풍요로운 기술을 아날로그 작업에 최대한 이용하려고 한다. 이후에도 다른 공간에서 전시를 계속 이어가면 좋겠다. 모아 우리끼리 그런 얘기를 한 적 있다. 나한테 집은 허감독이야. 둘 다 아주 쉽게 짐을 싸서, 어디에 가든 잘 지내고 잘 먹고 잘 잔다. 우리한테는 함께 나누는 시간과 그 켜가 중요하지, 공간이 중요한 사람들이 아니란 걸 알게 됐다.
공간을 이동하며 살아 보니 오히려 공간이 중요하지 않게 됐다는 건가 모아 그렇다. 공간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채우면 되니까. 이번 전시도 마찬가지다. 찾아오는 이들의 시간으로 채우는 게 가장 큰 목적이다.
‘여행하듯 살고, 살 듯이 여행하며’ 스스로 달라진 점이 있나 남훈 더 다양한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 여기 들어와서 며칠 사이에 그런 생각이 들긴 했다. 우리가 평소 상상만 하지 않나. ‘아, 저런 곳에서 살아보면 좋겠다’고. 어느 곳이든 진짜 살아 보면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을 거다. 막연히 생각했던 거랑 실제로 부딪히고 체험해 보는 건 정말 다르다. 그런 것들을 직접 경험하고 실험해 보고 싶다. 모아 엄청 신중하고 고민이 많은 사람인데, 여기까지 오면서 결단을 내리기 위한 과정이 많이 간결하고 빨라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그 이유가 우리가 무얼 원하고, 어떤 식으로 가고 싶고, 어떤 길을 선택해 살고 싶은지 조금이나마 분명해졌기 때문인 것 같다. 다음에 다른 걸 하고 싶을 때, 더 빨리 용기 낼 수 있다는 게 커다란 수확이다.
김모아 작가는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에 출연 중이다. 독립영화도 찍고 있는 걸로 안다. 한동안 연기를 쉬다가 다시 시작한 느낌은 어떤가 모아 나이를 먹고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마음의 각도가 벌어진 걸까. 어릴 때 현장이 무섭고, 내가 돋보이고 싶고, 뭔가가 되고 싶었던 마음과는 달리, 많은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가면 좋겠다는 목표를 나도 모르게 갖게 되더라. 늘 혼자나 둘이서 했던 작업이 많은데, 여러 명과 호흡하면서 없는 걸 새로 만들어가는 게 너무 즐겁다. 뭔가 부여잡고 욕심을 내기보다 퍼즐의 작은 블록이 잘돼서 자리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김작가는 <엘르> 홈페이지에 새 연재 ‘김모아의 감성 리뷰’도 시작했다. 이화루애에 가져온 책이나 영화가 있나 모아 이번엔 책을 안 가져왔다. 왜냐 하면 ‘쓰기’ 위해서. 작은 역할이지만 드라마를 찍고 있고, <엘르> 칼럼도 쓰고, 전시도 하면서, 이렇게 자극이 많을 때는 다른 자극을 받고 흡수하는 것보다 풀어내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남훈 요즘 드는 생각이…. 참 시간이 없는 것 같다. 어떤 만남이든 헤어질 때 시간 내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꼭 한다. 여기 와서도 한 달이란 시간이 정말 짧을 것 같다.
두 사람은 여전히 서로에게 좋은 여행 친구이자 동반자인가 남훈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서 겪는 갈등이나 문제는 우리에게도 있다. 중요한 건, 서로를 발견하고 이해하고, 서로에 대한 것을 곱씹는 것이다. 요즘 다들 SNS를 하지 않나. 많은 분들에게 제안하고 싶은 것은 친구나 애인, 아내, 남편이 며칠 전, 몇 달 전, 몇 해전 SNS에 써놓은 글을 다시 봤으면 한다. 그때 저 사람은 이런 생각을 했구나, 저런 생각을 했구나…. 100명, 200명씩 팔로하면서 정말 가깝고 중요한 사람들의 상태나 생각은 곱씹지 못하고 스쳐 지내는 날이 많다. 모아 허감독도 어떤 계기로 SNS에 내가 올린 글을 쭉 보면서 ‘그때 모아 생각이 이랬구나’ ‘나를 이렇게 생각했구나’ 곱씹고 알게 됐다고 한다. 살면서 100% 다 맞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가 오래 만났기 때문에, 어느 순간에는 ‘왜 이걸 이해하지 못해?’ 하고 같은 사람인 것처럼 혼동했던 것 같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우리가 정말 동반자가 되고 삶의 메이트가 되려면 서로의 방식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17년된 커플이지만 그 과정의 초기에 있을 뿐이다.

‘커플의 소리’의 첫 전시는 이화동 이화루애에서 10월 31일까지 이어진다.


사진 김상곤 에디터 김아름 디자인 전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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