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성폭행당했어? 근데 왜 몸에 상처가 없어?" 편견에 사로잡힌 재판부

[단독] "성폭행당했어? 근데 왜 몸에 상처가 없어?" 편견에 사로잡힌 재판부

로톡뉴스 2019-12-06 18:12:56 신고

"몸에 상처가 없으니 강간당했다고 볼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자신의 의사에 반해서 강제로 성관계를 당했다면 외상(外傷)이 남아야 하는데, 그게 없으니 강간이 아니라는 논리다. 사람에 따라서는 원치 않는 성관계를 했더라도 상처가 남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재판부는 그런 가능성을 배제하고 '강간 무죄'를 판결했다.

또 이 사건 재판부는 "당시 상황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는 이유를 무죄의 근거로 삼았다. 성폭행 피해자들은 정신적 충격에 의해 사건 당시 기억의 일부가 날아가는 증상을 겪는 일이 있는데, 이런 점을 재판부가 가볍게 여겼다는 비판도 함께 나온다.

피해 여성 "아파트 옥상에서 성폭행" vs. 남성 "동의한 성관계였다"

영하 5도의 추위가 이어졌던 지난 2월 어느 날 새벽. 서울의 한 아파트 옥상에서 김모씨는 한 여성과 성관계를 가졌다. 그러나 이 성관계에 대한 두 사람의 기억은 완전히 다르다.

김씨는 "동의한 성관계"라고 주장했고, 여성은 "강간이었다"며 남성을 경찰에 신고했다.

피해 여성은 경찰 조사에서 "김씨가 자신의 머리채와 손 등을 억지로 잡아 옥상까지 올라갔다"며 "당시 소리치고 (김씨를) 밀치며 '미쳤냐'고 욕을 하는 등 성관계를 거부했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피고인 김씨에게 강간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강간 아니다" 판결하며 제시한 근거

이 사건은 서울북부지법 제13형사부(재판장 강혁성 부장판사)가 맡아 지난달 29일 선고했다. 피고인 김씨의 강간 혐의는 무죄였다.

무죄

재판부는 다음 근거를 제시했다.

①의사에 반해서 성관계를 가졌다면 외상이 있어야 할텐데, 그게 없다.

②피해자는 강간이 벌어질 당시 '어떻게 저항했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진술하지 못한다. 진술에 비어있는 공백이 있다.

이 판결에 대해 변호사들은 "문제가 많은 판결"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외상이 없으므로 강간이 아니다"는 논리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했다.

논란이 되는 근거 ①피해자에게 외상이 없다

법무법인 온세상 김재련 변호사는 "매우 가해자 중심적인 판결"이라며 "강간 혐의를 판단할 때 외상의 유무는 전혀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강제로 성폭행을 당했다 하더라도 사람에 따라 파열, 마찰 등과 같은 외상 증거가 남지 않고, 즉각 신고하지 않으면 증거 확보도 힘들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재판부가 보호법익을 잘못 판단했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강간죄의 보호법익은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침해"라며 "외상이 있든 없든 죄가 성립한다"고 말했다. 상처가 나지 않았더라도 원하지 않는 성관계를 가졌다면,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받은 것으로 봐야 하는데 재판부가 잘못 판단했다는 취지였다.

김 변호사는 "범죄 피해자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 위해 다칠 것을 각오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논란이 되는 근거 ②피해자의 기억이 완전하지 않다

이 판결을 비판하는 지점은 몇 가지 더 있다. 강혁성 부장판사는 무죄를 선고하며 "피해자의 진술에 비어 있는 공백이 적지 않다"는 점을 들었다. '범행 당시 피해자의 느낌과 감정', '저항 방법'에 대한 디테일이 부족하다고 했다.

하지만 수많은 성폭행 피해자가 범행 당시 상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김재련 변호사는 "갑자기 당한 사건에 당황하거나, 놀라게 되면 '성적인 피해를 입었다'는 그 사실 외에 세세한 내용을 일일이 기억하는 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재판부도 이 점을 감안하긴 했다. 강혁성 부장판사는 "성관계 피해자는 다른 범행에 비해 큰 정신적 충격을 입고, 당시 상황을 정확히 기억해내지 못한다"고 전제하면서도 "범죄를 판단할 때 피해사실에 대해서는 진술이 중요하다. 피해자의 진술로는 비어 있는 공백이 적지 않다"고 판시했다.

범죄 피해를 당해 기억이 불완전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기억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이유를 무죄 근거로 삼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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